[중국 소수민족 취재탐방기] 고구려 후예로 밝혀진 소수민족 라후족

[중국 소수민족 취재탐방기] 고구려 후예로 밝혀진 소수민족 라후족

15. 소수민족 라후족(拉祜族)

  • 승인 2017-09-07 16:39
  • 김인환 시인김인환 시인


해발 1800미터의 고지대

어느 나라나 국경지대는 경비가 삼엄하다. 일반인들의 자유가 그만큼 구속되게 마련이다.

버마(이곳 사람들은 미엔띠엔이라고 부른다)와 국경지대(이곳에선 접경지대라고 칭한다)에 속하는 소수민족 라후족(拉祜族)촌. 완전무장을 한 군인들이 간혹 눈에 뜨이고 처음 보는 한국인인 필자를 호기심 반 경계심 반으로 검문을 한다.

이곳에 도착하기 까지는 쿤밍(昆明)에서 출발한 후 꼬박 4일 간이나 걸려야 했다. 자가용 승용차로 쉬지 않고 달린다해도 이틀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쿤밍에서 스마오(思茅)시 까지 버스로 10시간. 다시 스마오시에서 란창현(澜沧县)까지 4시간을 달려오고, 란창현에서 로후썅(糯福乡)까지 오는데 역시 4시간. 그런데 로후썅 까지는 시외버스가 있지만 이곳 라후족 마을 까지는 교통편이 전무하다.

이곳은 열대 특유의 산림지대로서 해발 1800m 이상의 고지대이기도 하다.

乡정부에 간신히 부탁을 해서 한 대 밖에 없다는 쌍용차를 타게 되었다.

어제 낮 12시에 로후썅에 도착한 후 교통편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외국인 등기도 할 겸 썅정부에 들어가 교섭을 하고 협조를 구하기까지 무려 3시간. 덕분에 예정에 없던 일박을 하게 되었고, 공무원들을 접대하는 일도 생겼다. 접대라 해보았자 따로 술집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30위안짜리 술 두 병을 산 것이 고작이다. 그런대로 체면은 세운 셈이다. 이곳을 찾은 최초의 한국인이라는 것에 그들은 무척 감동한 모양이다.

인사용으로 내 놓았던 한국담배 한 갑이 순식 간에 동이 났다. 네 명이서 돌아가며 던지는 질문에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다. 동석한 정부 인사는 수지(書記)와 썅장(鄉長)외에 간부 2명 등 모두 한족(汉族)이어서 소수민족과는 취재대상에서 예외된 사람이었지만, 그들로부터 소수민족 라후족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행정기관에서 書記는 鄉長보다 서열이 높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서기에게 술을 따르면서도 내일 가는 길에 차를 빌려준다는 것에 약속을 다짐받기도 했다.
특별히 한 대 밖에 없다는 자가용이라니 고마움도 표하고 싶고, 마음이 변할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들의 질문 가운데는 필자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은 없고 한국인의 생활에 대한 것과 한국경제와 고소득에 대한 부러움, 심지어는 공무원들의 대우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필자는 이럴 경우 항상 준비해 두었던 이야기로 종결을 짓는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내용이다.

자랑스러운 북경 올림픽을 치룬 나라이다. 올림픽 경기를 치루고나면 국가적으로 엄청난 변화와 발전이 올 것을 확신한다. 이것은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수치적으로 나타나 있는 사실이다. 일테면 일본이1968년 동경 올림픽을 마치고 큰 발전이 있었고, 20년 후인 한국 역시 88올림픽을 치루면서 고성장을 이루는 계기가 마련됐다. 다시 20년 뒤인 북경 올림픽이 거행되었기에 중국은 상당한 변화가 생기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엔 없는 무진장한 석유와 지하자원은 중국을 희망의 나라로 기대되는 최상의 조건이 된다.
대충 이런 정도면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무척 감동적으로 받아 드린다.


올드 미쓰 부 썅장이 동승

먼 곳에 출장을 나갔다던 승용차가 도착한 것은 이튿날 정오가 될 즈음이다.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 쓰고 나타난 쌍용차 「무쏘」. 이런 벽촌에서 만난 한국제 무게차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운전기사는 내리자마자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연거퍼 밥 세 그릇을 비우고 나서야 끄윽! 트림을 해댄다.

이미 전화로 전후사정을 알고 있었음인지 곧바로 운전석에 올라 떠날 차비를 한다.

필자의 배낭을 싣고 그들과 작별인사를 하는데 한 중년여인이 동승을 한다.

누구냐고 의아한 표정을 짖자 鄉長이 웃으며 다가와 의미있는 웃음을 보내며 툭! 어깨를 친다. “副鄉長 王샤오지에 (미쓰 王)인데 노처녀다. 잘 부탁한다. 너 혼자 보낼 수 없어 동승시키는 것이니 재밌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鄉長의 뒷 말이다.

나 혼자 충분히 갈 수 있다. 기사도 같이 있지 않느냐고 하니까 외국인 혼자 가기엔 문제가 조금 있는 지역이라며 차가 도착하는대로 톨려보내주면 된다고 차 속으로 밀어넣듯 그녀의 등을 밀어댄다. 차는 산길로 접어 든다. 울퉁불퉁 혐악한 길이다.

한 쪽으로 바라보기만해도 발바닥이 간질간질할 정도로 천 길 낭떠러지다. 副鄉長 미쓰 王은 미인이라기 보다는 복스러운 상이다. 웃을 때면 작은 보조개도 짓는다.

주저주저하면서 밝힌 그녀의 나이는 올해 41세. 왜 아직도 시집을 안 갔느냐고 하니까, 남자가 없어서란다.

눈이 무척 높구먼! 하니까, 절대로 그런 것은 아니고, 한 번 혼기를 놓치고 공무원 신분으로 이곳 저곳 전근을 다니다보니 이젠 혼자 사는 게 더 편하다며 독신녀 특유의 괴변을 늘어 놓는다. 그러면서도 한국인에 대한 호기심이 굉장해서 필자의 여행담을 듣고 싶다며 잠시도 쉴 기회를 주지 않는다.


물, 전기 귀한 고산지대

일반 승용차로는 엄두가 나지않을 정도로 험준한 길을 달리는 동안 두 번이나 검문이 있었다.

첩첩산중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울창한 산림지대 뿐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는데 숲 속에서 불쑥 나타난 군인들의 정지신호가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그때마다 부썅장 미스 王은 차에서 내려 신분증을 보여주기도 하고 무언가 한참을 얘기한 후 되돌아 왔다. 내 혼자서 출발했었으면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욕 좀 보았겠다. 싶었다. 거의 세 시간을 달린 후에야 도착한 난뚜안(南段)부락. 해발 1900m 정상에 옹기종기 라후족 집들이 모여 있다.

중국에 온 이후 처음 보는 건축양식이어서 이국적 분위기가 감돈다. 영화에서 본 베트남이나 버마지방의 가옥과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쪽 저쪽 산에는보이 茶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보이 茶농사가 주업임을 알 것 같다. 차가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이 먼저 몰려오고 아낙네들이며 노인들도 다가온다. 절반 쯤은 맨발이고 그들 특유의 전통복장 차림이지만 낡을 대로 낡은 모습들이다. 아이들 대부분은 언제 세수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흙먼지와 때가 절어있고 머리도 엉망이다.

주민들 가운데 유난히 키가 큰 40대 건장한 사나이가 서있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북경대학교 교수인 한준쿠이(韩俊愧)박사였다.

7개월 전에 도착하여 라후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한 박사. 1년 예정으로 라후족과 같이 생활하며 이들의 역사와 고유문화 등을 집중 탐사 중으로 이미 얼굴은 그슬릴대로 그슬려있었다. 라후족 집중 연구가로선 최초의 대학교수라는데 책임감이 무겁다는 그는 훗날 북경에 돌아간 후 지금까지도 수시로 안부를 전하는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촌장의 안내로 숙소를 정하고 기사가 되돌아가려 하는데도 미스王은 필자 곁에서 이것저것 보살피며 떠날 기색이 없다. 그러면서 하룻밤 묵고 갔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두 번 세 번 연달아 한다. 그러면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정말 그럴까하고 반색을 한다. 그러나 어차피 떠나가야할 사람이다.

그녀는 촌장에게 이 분은 한국에서 온 손님이다. 각별히 신경 써서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손을 쑥 내민다. 작별 인사를 하자는 모습이다.

손을 맞잡아 주니까 있는대로 힘을 다 주어 움켜쥐었다가 풀더니 순식간에 포옹을 해온다.

그녀의 큼직한 앞가슴이 필자의 가슴을 짓눌러 온다. 이 쪽에서 더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전혀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당하는 일이었다.

“일 마치고 돌아가실 때는 꼭 乡정부에 들렸다 가세요”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차에 올라타 버린다.

촌장집에서의 저녁식사는 푸짐하고 또 맛이 있었다. 대부분의 소수민족촌에 가면 염장처리된 돼지고기 위주의 식사여서 힘들었는데 이곳에는 고산지대라서인지 온갖 산채가 구미를 당기게 한다.

운남성 전역에 걸쳐 오랜동안 가뭄이 계속된 탓에 전기사정이 좋지 않았는데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전기가 들어오는데 그것도 서너시간 정도 지나면 다시 암흑세계다. 그래서 집집마다 호롱 불을 켜 놓는다. 야간활동은 아얘 엄두도 내지 못한다.

내 어린시절 저녁 때가 되면 으례히 주요일감은 호롱불을 켜기 위해 호롱을 닦는 일이었다. 방과 부엌에 쓰는 5~6개의 호롱을 닦는 일이 그렇게도 힘들고 싫었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첫 날 저녁에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땀과 먼지에 범벅이된 몸을 씻기 위해 두 통이나 되는 물을 혼자서 다 써 버렸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에서야 이게 얼마나 이들을 힘들게 하는 일이었는지 알고는 미안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물이 귀한 지역이다보니 내가 써 버린 물을 길어오려면 산 밑 쪽으로 내려가 길어와야 했으므로 산 길 두시간 이상의 중노동이었다. 슬그머니 물통을 들고 나서려니까 촌장이 한사코 말려서 결국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그 후부터 아예 샤워는 못 하는 일이 되었다.

이때부터 중국식 샤워법을 배우게 되었다. 즉 수건에 물을 적셔 얼굴부터 닦고 온 몸을 물수건으로 닦아내는 방법이었다. 아이들의 지저분한 얼굴도 짐작할만 하다. 분명히 아침마다 물수건을 적셔 깨끗이 닦아내지만 고산지대의 바람과 날아오는 흙먼지를 피할 길이 없을 터였다.

3월 중순인데도 아침부터 폭염이 계속된다. 그런데도 라후족 여인들은 보기에도 답답한 전통복장을 두 겹, 세 겹 껴입고, 머리에는 두건을 두르는가하면 무릎에서 발목까지 알록달록한 색상무늬의 천을 칭칭 감고 다닌다.


북경대학 한 박사에게 듣게 된 라후족 역사

라후족 촌에 와서 틈틈이 한 박사로부터 라후족에 대한 많은 얘기를 듣게 되었다.

라후족의 라후라는 말은 호랑이를 잡는 민족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 박사가 말문을 연다.

고구려가 당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약 20여 만 명이 당나라로 끌려 갔는데 중국 내륙 지방에서.고구려 유민으로 살아온 이들을 언어학, 역사학, 민족학적으로 하고 있다는 한 박사의 말로는 아직도 상당 부분이 고구려 사람으로 생존해 있다면서 한국의 학자들과도 연계하고 싶어 한다.

기원 전 37년예 개국하여 서기 668년에 멸망하기까지 약 700여년 동안 만주와 한반도 북부지역을 지배해오던 고구려. 고구려가 망한 것은 약 1400년 전의 일이었다.

당시 수 나라의 공격을 잘 막아내던 고구려는 당나라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멸망의 길을 걷게되는 역사는 이미 우리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즁국에 유민으로 끌려온 이후 주로 고산지대에 흩어져 살고 있다. 1953년 중국 정부가 라후족 자치현을 지정하기 전 까지는 수렵생활을 하며 원시인 비슷하게 살아왔다고 한다. 다시 말해 1953년에 와서야 비로소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얘기가 된다.

주로 고산지대에 분포되어 있는데 미얀마(중국어로 미엔띠엔)에 30여 만 명,태국에도 일만 오천여 명,라오스에 이만여 명,월남에도 육천여 명 등이 흩어져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머릿 수건, 색동, 선 두른 두루마기 등이 옛 고구려 복장과 거의 같은 모습이라는 것과 손님 접대 하기를 좋아하고 낯선 사람이 찾아와도 누구나 자기 집으로 안내하고 식사대접을 하는 인정 많은 민족이다. 라후족은 나뭇잎을 이용해서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 소리,자연의 소리,바람의 소리 등도 묘사하고 있다. 청춘남녀가 연애할 때도 나뭇잎읖 불면서 서로의 정을 주고 받는다. 라후족들은 성인이 되면 누구나 나뭇잎 연주자가 되어있다.

라후족 조상의 고향은 흰눈이 내리는 곳

라후족의 구전에 의하면 “우리들 조상은 흰눈이 내리는 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전쟁에 패망한 후 포로로 끌려와 처음에는 청해성에서 살고있다가 남쪽으로, 남쪽으로 밀려내려와 이 곳 고산지대로 오게 되었다는 것. 이들 조상들의 고향 이얘기는 고구려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아직도 널뛰기를 하는 여인들의 습관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이 내용은 훗날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라후족의 언어도 우리네와 비슷한 게 너무 많았다.

(나도 너도)라는 우리나라 말은 (나터 너터)라고 표현하고 있고, (나는 서울로 가요)라는 말은(나래 서울로 까이오)라고 한다. (나에게 와요)라는 말은 (나게 라웨요)라고 한다.

문법적으로 볼 때도 유사점이 너무 많다.

한국어가 (주어+주격 조사+목적어+동사+종지부가 라후족 말과 어순이 똑 같다.

의문문의 경우도 한국어가 (주어+부사격조사+목적어+목적격 조사+동사+종지사 의문사가 똑 같다. 부정문 역시 한국어가 (주어+주격조사+형용사가 라후어와 똑 같다. 이밖에도 조사의 존재가 한국어와 라후족어가 어순이 똑 같다.

주격조사는 한국어가 (나는 한국사람이요)일 때 라후족어는 (나래 가오리처 퍼웨요)이다. 목적격 조사인 경우도 한국어는 (나는 너를 사랑하니다)가 라후족어로는 (나래 너타 하웨요)이다.

목적격 조사, 소유격 조사, 강조 조사(부사),호격 조사 기타 조사들도 똑 같이 사용되고 있었다.

한국어와 비슷한 말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언어학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음 주에 계속>

김인환 시인



김인환 시인은 시집<님의 마음에:1968년> (비가 내리는 :1970년) (다시 한밤에 돌아와:1973년) (시음집:1978년:한국 최초의 음반시집) (바람의 노래:1992년)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98년) (낙엽이 되어보지 못한 그대는;2013년) 등의 시집과 방송칼럼집 (내일을 향하여), 시론집으로 (마두금을 어디서 찾나) 등이 있다. 1972년 부산 최초의 시 전문지를 발간한 바 있으며 MBC, KBS, 한국경제 등에서 30여 년 간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부산 크리스천 문인협회 회장, 중국 광동성 한인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 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국제 펜클럽, 대전 펜클럽 회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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