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 칼럼] Thank you for your service

  • 오피니언
  • 중도일보 독자위원회

[독자위원 칼럼] Thank you for your service

김종엽 건양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 승인 2020-03-25 07:52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김종엽(건양대병원실장)
김종엽 교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는다. 사그라지기는커녕 이제는 지구를 몽땅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유럽과 미국을 강타하는 중이다. 도시는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숨을 죽였다. 텅 빈 식당가와 대중교통이 시민들의 불안감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티끌보다 더 작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렇듯 매우 공포스럽다.

이 전시상황에서 ‘레벨D 보호구’로 무장을 하고 최전방을 지키는 이들이 바로 의료진이다. 바이러스 침투를 막기 위한 비닐 소재의 가운은 공기가 통하지 않아 착용 후 10분이면 등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안경을 쓴 이들은 금세 렌즈에 습기가 차고, 얼굴에 맺힌 땀으로 안경은 흘러내려 코에 걸린다.

하지만 안경을 다시 올려 쓸 방법이 없다. 손에 혹여 묻었을지 모르는 바이러스 때문에 글러브를 낀 손으로 고글을 벗고 안경을 만질 수 없기 때문이다. 땀에 젖은 속옷과 흐려진 시야에 N95 마스크의 답답함이 체력 소모를 부추긴다. KF94 마스크보다 의료용 N95 마스크는 군대에서 화생방 훈련 때 썼던 방독면만큼이나 답답하다. 그저 쓰고 있는 것만으로도 5년 쓴 스마트폰의 배터리처럼 체력 저하가 눈에 띄게 빨라진다.

하지만 이제는 바이러스로부터 전신을 가려줬던 레벨D 보호구의 수량마저 부족하다. 결국 선별진료소 의료진은 코로나19 검사를 직접 수행하는 동료 의사에게 레벨D 보호구를 양보했다. 외과의사들도 1회용 마스크를 양보하고, 20년 전에 썼던 초록색 천의 면마스크를 꺼내 쓰고 수술방을 향한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불평하는 의료진은 없다. 평소 고된 업무로 이직률이 높은 간호사는 국가적 감염병 사태가 발생하면 더 힘들고 더 고생하는데도 이직률은 거꾸로 낮아지는 기현상을 보인다. 몇날 며칠을 밤새워 일하다 돌연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났던 내과 교수의 옆태를 대구·경북의 의료현장을 비추는 방송국 카메라를 통해 봤을 때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비로소 평소에는 잊고 살았던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의심환자를 돌보기 위해 음압 병실로 향할 때 어느 누가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미 발걸음은 환자를 향하는 게 의료진이다. 평소에 수다 떨고 웃으며 함께 일해온 동료지만, 격리 병실로 걸어 들어가는 동료의 뒷모습은 처연하기 그지없다.

자신의 등을 맡길 동료만 있다면, 1대100의 싸움도 희망이 있다고 했던가. 서로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는 자신이 누군가를 치료하는 의료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고 그 자리를 지킬 용기를 얻는지도 모르겠다. 전국에서 환자 곁을 지키고 있는 동료들이 참 자랑스럽다.

그런데 대구·경북 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집에 가는 걸 포기하고 병원 근처 호텔에 머무는데, 일부 시민들이 감염 우려가 있다며 지속적으로 항의하는 터에 결국 호텔에서 나오게 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다해 적군과 싸우다 왔는데, 돌아온 고향에서 살인자라는 주홍글씨로 참전용사를 대했다면 바로 이런 심정이었을까.

모 지자체는 원내감염이 발생한 의료기관을 비난함과 동시에 지역감염에 대한 책임을 물어 고소를 준비한다는 소식도 접했다. 고지전에서 한 번 밀렸다고 해당 군인들을 모두 군법에 회부한다는 생각이 가당키나 한가 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의료진을 더욱 주눅이 들게 하는 건 시민들의 이와 같은 시선과 이를 더욱 부추기는 정부의 행태다.

세계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의 비결은 엄청난 국방예산의 이유도 있겠지만, 복무자에 대한 국민의 예우와 존경에도 비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부러우면 진다지만, 지기 전에 좋은 건 서둘러 배워야 이길 수 있다. 미국인들이 군인과 마주치면 건넨다는 감사의 표현 "Thank you for your service.(복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장에서 체력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는 의료진에게도 잘잘못에 대한 지적보다 지금 이 순간 더 필요한 건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다. "고생이 많다","우리 모두를 위해 조금만 더 힘내 달라","우리는 당신들을 응원한다" 등 이런 응원과 격려가 의료진에게는 바이러스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가슴을 펴게 하는 소중한 백신이다.

끝으로 신종코로나를 처음 보고한 후 사망한 중국 우한 중앙병원의 의사 ‘리원량’을 애도한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

김종엽 건양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세계백화점 앞 6중 추돌사고…1명 숨지고 2명 중상 등
  2. 천안시, 11월 '단풍' 주제로 모바일 스탬프투어 운영
  3. 남서울대, '제5회 국제 한국어 말하기 대회' 개최
  4. 천안법원, 교통사고 후 허위 진술로 범인도피 도모한 연인에게 '철퇴'
  5. 김진명 작가 '세종의 나라'에 시민 목소리 담는다
  1. 대전문화방송과 한화그룹 한빛대상 시상식
  2. 천안법원, 투자자 기망한 60대 음식물쓰레기 처리업자 '징역 2년 8월'
  3. 전교생 6명인 기성초등학교 길헌분교 초대의 날 행사
  4. 한기대 '신기술.첨단산업분야 인재양성 콘퍼런스' 개최
  5. 천안시, 지역사회치매협의체 회의 개최

헤드라인 뉴스


"일본 전쟁유적에서 평화 찾아야죠" 대전 취재 나선 마이니치 기자

"일본 전쟁유적에서 평화 찾아야죠" 대전 취재 나선 마이니치 기자

"일본에서도 태평양전쟁을 겪은 세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80년이 지났고, 전쟁의 참상과 평화를 교육할 수 있는 수단은 이제 전쟁유적뿐이죠. 그래서 보문산 지하호가 일본군 총사령부의 것이었는지 규명하는 게 중요합니다."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후쿠오카 시즈야(48) 서울지국장은 5일 대전 중구 보문산에 있는 동굴형 수족관 대전아쿠아리움을 찾아왔다. 그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올해만 벌써 두 번째로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의 종결을 앞두고 용산에 있던 일본군 총사령부를 대전에 있는 공원으로 옮길 수 있도록 지하호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학생·학부모 10명 중 8명 "고교학점제 폐지 또는 축소해야"… 만족도 25% 미만
학생·학부모 10명 중 8명 "고교학점제 폐지 또는 축소해야"… 만족도 25% 미만

올해 고1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고교학점제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 시행 첫 학기를 경험한 응답자 중 10명 중 8명 이상이 '제도를 폐지하거나 축소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학생들은 진로 탐색보다 대학입시 유불리를 기준으로 과목을 선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종로학원은 10월 21일부터 23일까지 고1 학생과 학부모 47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5.5%가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6일 밝혔다. 반면 '만족한다'는 응답은 4.3%, '매우 만족한다'는..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 개장 한달만에 관광명소 급부상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 개장 한달만에 관광명소 급부상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이 개장 한 달여 만에 누적 방문객 22만 명을 돌파하며 지역 관광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6일 대전시에 따르면 갑천생태호수공원은 9월 말 임시 개장 이후 하루 평균 7000명, 주말에는 최대 2만 명까지 방문하는 추세다. 전체 방문객 중 약 70%가 가족·연인 단위 방문객으로, 주말 나들이, 산책과 사진 촬영, 야간경관 감상의 목적으로 공원을 찾았다. 특히 추석 연휴 기간에는 10일간 12만 명이 방문해 주차장 만차와 진입로 혼잡이 이어졌으며, 연휴 마지막 날에는 1km 이상 차량 정체가 발생할 정도로 시민들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과학기술인 만남 이재명 대통령 과학기술인 만남 이재명 대통령

  • ‘사랑 가득한 김장 나눠요’ ‘사랑 가득한 김장 나눠요’

  • 수능 앞 간절한 기도 수능 앞 간절한 기도

  • 국민의힘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 국민의힘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