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부모로서의 소명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부모로서의 소명

김성식 대전가정법원 기획법관

  • 승인 2021-05-03 08:18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김성식판사
김성식 판사
‘가정의 평화와 청소년의 밝은 미래를 열어가는’ 대전가정법원에서 전문법관으로 근무한 지 어느덧 6년이 되어간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함께 있는 가정의 달인 5월이면 입양특례법에 따라 생후 5개월 지수(가명)를 입양했던 어느 종교인 부부의 사건이 떠오른다.

혼인 기간 내내 아이를 원했지만, 불임 진단으로 낙담하다 겨우 용기를 내어 입양을 신청한 부부. 다행히 가사조사 결과, 부모로서 정서적·심리적 상태가 좋고 양육환경과 양육계획도 건전했다. 부부는 지수를 만난 것이 꿈만 같고 배 아파 낳은 자녀처럼 잘 기르고, 자신들이 지수를 입양한 이상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다짐했다.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어떻게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을 격려하고 응원할 수 있을까?



"방금 전 지수를 선택했다고 하셨나요? 비록 두 분이 입양을 준비하고 결심하시긴 했지만, 그것으로 지수가 두 분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잔뜩 긴장한 표정. '저게 무슨 말이지? 우리가 아이를 기를 능력이 부족하다는 건가? 부모로서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우리의 말을 못 믿겠다는 건가?'

"두 분이 입양을 고민하시고 결정하실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나요? 그 사이 셀 수 없이 많은 아이들이 입양기관에 위탁되었고 수많은 입양희망자 중 바로 두 분과 지수가 맺어질 확률은 과연 얼마일까요? 지수가 두 분의 자녀가 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고 두 분의 계획이나 노력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종교가 있던 이 부부는 이제야 제 의도를 눈치챘다.



"어떤 부부도 자신이 낳을 아이를 고를 수 없지요. 그건 절대자의 몫입니다. 단지 자신에게 맡겨진 아이의 부모로서 충실할 뿐. 두 분 역시 지수를 자녀로 선택한 것이 아닐지 몰라요. 저도 입양을 허가하는 판사의 역할만 하고 있을 뿐, 큰 그림을 볼 수 없습니다. 두 분은 특별한 섭리 가운데 지수의 부모로서 사명을 부여받은 것 아닐까요? 지수를, 두 분을 가장 잘 아는 절대자가 최선의 지혜로 이루어 준 소중한 가정인 것입니다."

아내가 먼저 울기 시작한다. 긴 불임기간 겪은 서러움과 아픔, 입양을 고민하며 느낀 걱정과 염려, 무엇보다 엄마로서 잘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그녀의 두 뺨 아래로 흘러내린다. 남편도 지수를 품에 안고 아내의 어깨를 감싼 채 울먹인다. 법정을 나서면서 연신 중얼거린다. "맞아. 우리가 맘대로 지수를 고른 것이 결코 아니지. 지수는 우리 소유가 아니야. 우리는 단지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도록 지수를 맡은 것일 뿐이야."

양부모의 학대로 꽃을 피우지 못한 가여운 ‘정인’이가 생각난다. 생후 2개월 만에 모텔 방 한구석에서 친부의 매정한 손길에 숨진 갓난아이, 10년 넘게 친부의 성적 학대를 견디다 못해 경찰에 신고한 후 오히려 절망감에 삶의 끈을 놓아 버린 우리의 아이가 있다. 또 한편으론 현직 교사로서 쌍둥이 자녀의 입시부정에 관여한 어리석은 아빠도 있다. 다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왜곡된 부모의 자녀사랑이다.

부모로서 자녀를 올바로 양육하고 사랑으로 돌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특히 이혼하며 미성년 자녀의 양육에 관한 갈등을 겪는 수많은 부모를 만날 때마다, 가정의 해체 속에 부모의 돌봄과 사랑을 받지 못해 비행의 길로 접어드는 보호소년의 좌절을 볼 때마다, 소명을 가지고 책임을 다하는 부모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된다.

분명 그 부부는 지수를 기르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을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라고 여긴다면 입양을 결정한 것을 후회할 수도 있겠지. 자신의 계획이 실패했다고 여겨 부모의 역할을 포기한 채 지수를 방임하거나 학대할 수도 있고.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지수의 부모로 삼은 절대자를 신뢰하면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 어찌 그런 긍지와 소명을 가진 부모가 끝까지 자녀를 사랑하고 돌보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절대자로부터 우리 아이들에 대한 부모로서 사명을 부여받았다. 한계와 부족함을 절실히 느낄지라도, 우리를 부모로 선택해 준 절대자의 섭리를 신뢰하는 이상, 우리는 맡겨진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이처럼 슬프고도 안타까운 뉴스가 더 이상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 5월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기대하면서.

/김성식 대전가정법원 기획법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시, 6대 전략 산업으로 미래 산업지도 그린다
  2. 강성삼 하남시의원, '미사강변도시 5성급 호텔 유치' 직격탄
  3. [특집]대전역세권개발로 새로운 미래 도약
  4. 대전시와 5개구, 대덕세무서 추가 신설 등 주민 밀접행정 협력
  5. 대전 출입국·외국인사무소, 사회통합 자원봉사위원 위촉식 개최
  1. 백소회 회원 김중식 서양화가 아트코리아방송 문화예술대상 올해의 작가 대상 수상자 선정
  2. 대전시 '제60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선수단 해단'
  3. 충남대·한밭대, 교육부 양성평등 평가 '최하위'
  4. 9개 국립대병원 "복지부 이관 전 토론과 협의부터" 공개 요구
  5. 대전경찰, 고령운전자에게 '면허 자진반납·가속페달 안전장치' 홍보 나선다

헤드라인 뉴스


대전의 자연·휴양 인프라 확장, 일상의 지도를 바꾼다

대전의 자연·휴양 인프라 확장, 일상의 지도를 바꾼다

대전 곳곳에서 진행 중인 환경·휴양 인프라 사업은 단순히 시설 하나가 늘어나는 변화가 아니라, 시민이 도시를 사용하는 방식 전체를 바꿔놓기 시작했다. 조성이 완료된 곳은 이미 동선과 생활 패턴을 바꿔놓고 있고, 앞으로 조성이 진행될 곳은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단계에 있다. 도시 전체가 여러 지점에서 동시에 재편되고 있는 셈이다. 갑천호수공원 개장은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사례다. 기존에는 갑천을 따라 걷는 단순한 산책이 대부분이었다면, 공원 개장 이후에는 시민들이 한 번쯤 들어가 보고 머무..

대전의 자연·휴양 인프라 확장, 일상의 지도를 바꾼다
대전의 자연·휴양 인프라 확장, 일상의 지도를 바꾼다

대전 곳곳에서 진행 중인 환경·휴양 인프라 사업은 단순히 시설 하나가 늘어나는 변화가 아니라, 시민이 도시를 사용하는 방식 전체를 바꿔놓기 시작했다. 조성이 완료된 곳은 이미 동선과 생활 패턴을 바꿔놓고 있고, 앞으로 조성이 진행될 곳은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단계에 있다. 도시 전체가 여러 지점에서 동시에 재편되고 있는 셈이다. 갑천호수공원 개장은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사례다. 기존에는 갑천을 따라 걷는 단순한 산책이 대부분이었다면, 공원 개장 이후에는 시민들이 한 번쯤 들어가 보고 머무..

‘줄어드는 적십자회비’… 시도지사협의회 모금 동참 호소
‘줄어드는 적십자회비’… 시도지사협의회 모금 동참 호소

연말연시 어려운 이웃에게 온정을 나누기 위한 적십자회비가 매년 감소하자,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회장 유정복 인천시장)가 27일 2026년 대국민 모금 동참 공동담화문을 발표했다. 국내외 재난 구호와 취약계층 지원, 긴급 지원 등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 대한 인도주의적 활동에 사용하는 적십자회비는 최근 2022년 427억원에서 2023년 418억원, 2024년 406억원으로 줄었다. 올해도 현재까지 406억원 모금에 그쳤다. 협의회는 공동담화문을 통해 “최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적십자회비 모금 참여가 감소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제과 상점가 방문한 김민석 국무총리 대전 제과 상점가 방문한 김민석 국무총리

  •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채비 ‘완료’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채비 ‘완료’

  • 가을비와 바람에 떨어진 낙엽 가을비와 바람에 떨어진 낙엽

  •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행복한 시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행복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