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고교학점제, 과연 장밋빛일까?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고교학점제, 과연 장밋빛일까?

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장

  • 승인 2021-06-21 08:13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성광진 소장
성광진 소장
‘교과교실제'는 2009년부터 교육부가 추진해온 핵심 교육정책이다. 교과마다 특성화된 전용교실을 갖추고 학생들이 수업시간마다 교실로 이동하며 공부하는 학교운영방식이다. 전국의 모든 중·고등학교에서 점진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동수업을 하기 위한 교과별 교실과 교사연구실, 홈베이스, 미디어스페이스 등의 학생지원시설을 구축하기 위해 전국의 중등학교에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었다.

12년이 지난 결과는 어떠할까? 해방 이후 이어져온 학년 중심의 학교운영체계와 학생 생활을 지도하는 담임교사제가 흐트러지면서 학교현장에 혼돈만 가져왔다. 교과교실제를 뒷받침할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가운데 시행해 나타난 실패는 고스란히 고교학점제로 이어질 것이다.

2025년부터 모든 고등학교에서 학점제가 전면적으로 시행하면, 올해 초등학교 6학년 학생부터 이 제도의 영향을 받는다. 미국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과목의 강의실을 찾아다니며 수업을 받는 장면을 보게 되는데 이러한 그림이 그대로 도입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가장 큰 변화는 교과 선택이다. 국어, 영어, 수학, 통합사회, 통합과학, 한국사 같은 공통과목을 지금과 같이 학생이 공통으로 수강해야 하지만 일반선택과목, 융합선택과목, 진로선택과목이 있어 학생들이 각자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수 경로를 예로 본다면 수학(공통)을 수강하고 다음 학기나 학년에서 일반선택과목으로 '미적분/확률과 통계' 등을 수강하고 다음 단계로 융합 또는 진로선택과목으로 '인공지능수학/심화수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또 지금 고등학교는 주당 34시간의 수업단위를 바탕으로 6학기 3년 동안 총 204단위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교육부는 204단위의 학점을 192학점으로 줄일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되면 주당 시간표에서 2시간 정도가 줄어들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학생들은 고정된 교실에서 교사를 기다리지 않는다. 학급시간표가 없고 학생들은 각자의 강의 시간표를 가져야 한다. 학생들은 어떤 과목을 선택하느냐가 진학의 틀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교과 선택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학생부 종합전형의 대학입시에서 학생들의 과목 선택이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가의 경우, 개인별 성취를 기준으로 하는 평가제가 도입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선택 과목의 경우 절대평가제가 도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0명 정도의 소인수 과목이 개설될 경우 현재의 서열에 따른 상대평가 9등급제를 실행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과목 선택의 폭을 넓혀 다양한 교육을 추구한다는 것이 목적이지만 벌써부터 현장교사들의 걱정이 많다. 현장 학교에서 다양한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제도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교과목을 세분화해 과목 수를 크게 확대해야 한다. 문제는 학기마다 학생들의 수요를 예측하기가 힘들고, 교사 수급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결국, 기간제 고용의 강사 풀이 나타날 것이고 비정규직 교사들이 많이 배출되는 상황이 될 것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대학입시다. 선택과목의 경우 성적에 따른 서열형 등급이 아니라 성취 기준에 따른 도달 정도를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성적을 입시 자료로 활용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입시에 활용되면 교사들은 성적 부풀리기의 압력에 시달릴 것이다. 학생들은 성적 잘 주는 과목이나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과목으로 몰리면서 평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우려가 크다. 또 수업별로 성취기준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문제 제기로 인해 성적에 대한 불신이 나타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들은 학교의 성취도 평가에 대한 불신으로 자신들만의 선별 도구를 강화하려 할 것이다. 논술이나 심층면접 등 대학의 선발권이 강화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학점제의 취지는 온데간데 없고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이 더욱 득세할 수 있다.

이 제도의 도입은 학생의 미래 진로와 관련한 과목에 선택권을 부여하여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래 사회는 급격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누구도 그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하기가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사회는 평생 여러 직업을 가져야 하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새롭게 갖출 수 있도록 교육도 평생교육 시스템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고등학교에서 과목 선택권을 부여하여 학생의 미래 진로를 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은 너무 안일한 생각이다. 고등학교 수준에서는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인간 교육이 필요하다. 거기에 문화, 예술, 체육활동으로 감성과 건강을 키워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그러한 교육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미래 진로를 대비하는 학점제는 의미도 없을 뿐 아니라, 학교 현장에 새로운 혼돈만 가져올 것이다.

왜 그동안 교육부가 추진하는 핵심 교육정책은 실패만 거듭하는가? 현장교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기 때문이고, 현재의 대학서열 체제에서는 어떤 교육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사 이런 식이라면 교육부가 없어지는 것이 도리어 교육을 살리는 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전례없는 늑대 포획 계획에 커지는 수색방식 논란
  2. 민주당 세종시의원 10개 선거구 '본선 진출자' 확정
  3. 이춘희→조상호 향해 "헛공약·네거티브 전략" 일침
  4. 지역 학원가 '동구 글로벌 드림캠퍼스' 운영 방식 항의서한
  5. 김도경 초대회장 “회원들의 든든한 울타리, 대전경제 새역사 쓰겠다”
  1. 취업 후에도 학자금 상환에 허덕이는 청년들…미상환 체납액 역대 최대
  2.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 '피엑스프리메드'에 1억 원 시드 투자
  3. 양승조·용혜인, '산업혁신·기본사회·민주분권' 결합한 정책협약 체결
  4. [사설] 행정수도 특별법 '법안소위' 이제 끝내야
  5. [지선 D-50] 與 대전시장 경선 허태정 승리…이장우와 4년만의 리턴매치

헤드라인 뉴스


2029년 `서울 청와대→세종 집무실` 대통령 시대 요원

2029년 '서울 청와대→세종 집무실' 대통령 시대 요원

문재인·윤석열 전 정부에서 시작된 '청와대 이전' 움직임이 이재명 새 정부에서 어떻게 완성될지 주목된다. 문 전 대통령은 광화문 시대를 준비했으나 좌절됐고, 윤석열 전 정부는 용산 시대를 열었으나 결국 얼룩진 역사만 남겼다. 이재명 새 정부는 올 초 도로 청와대로 컴백한 만큼, 2030년 임기까지 판을 바꾸는 과감한 시도를 할지는 미지수다. 수도권 정치권 등 기득권 세력들은 여전히 대통령실의 지방 이전에 극렬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의 14일 긴급 브리핑이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편의점 업계 비닐봉지 가격 인상·발주량 제한에 편의점주들 `예의주시`
편의점 업계 비닐봉지 가격 인상·발주량 제한에 편의점주들 '예의주시'

편의점 업계가 매장에서 쓰는 비닐봉지 가격을 인상하거나 발주량을 제한하고 나섰다. 중동 전쟁으로 비닐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급격히 오른 데 따른 조치인데, 편의점주 등은 고정 지출이 커지진 않을까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낸다. 14일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세븐일레븐은 최근 매장에서 점주들이 쓰레기를 담을 때 사용하는 비닐봉지 가격을 최대 39% 인상했다. 세븐일레븐이 점주에게 제공하는 비닐봉지는 50매 묶음으로 총 네 종류다. 검정 비닐봉지 큰 사이즈는 77원에서 106원으로 37.7% 인상했으며 작은 사이즈는 57원에서 78원으로..

학교에서 또… 계룡 교사피습에 도교육청 예방 체계 미흡 지적
학교에서 또… 계룡 교사피습에 도교육청 예방 체계 미흡 지적

충남 계룡 교사 피습 사건이 발생하면서 교육현장의 위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형태는 다르지만 과거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 바 있어 충남교육청의 시스템 구축이 미흡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 충남 학생인권조례도 교사 신변보호에 제약이 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1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인 13일 오전 8시 40분께 계룡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와 상담을 하던 학생이 미리 준비한 흉기로 교사에게 해를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교사는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고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학생은 중학..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세월호 참사 12주기,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12주기, ‘잊지 않겠습니다’

  • 대전오월드 인근에서 목격된 ‘늑구’ 포획에 나선 경찰들 대전오월드 인근에서 목격된 ‘늑구’ 포획에 나선 경찰들

  • 대전시 선관위, 지방선거 50여일 앞두고 투표참여 캠페인 대전시 선관위, 지방선거 50여일 앞두고 투표참여 캠페인

  • 초여름 날씨에 등장한 반팔 초여름 날씨에 등장한 반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