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78강 남귤북지(南橘北枳)

  • 문화
  • 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78강 남귤북지(南橘北枳)

장상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1-07-06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제 78강: 南橘北枳(남귤북지) : 남쪽에서 자라는 귤이 북쪽 땅으로 옮기면 탱자가 된다.

글 자 : 南(남녘 남) 橘(귤나무 귤) 北(북녘 북) 枳(탱자나무 지)로 만들어 졌다.

본 고사의 출처는 안자춘추(晏子春秋)에서 볼 수 있다.

비유로는 환경이나 문화가 달라지면 사람의 언행이나 사고방식도 다를 수 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명재상 관중(管仲)의 보좌로 제후국의 패자(覇者)가 된 후 약 백 년이 지나 안영(晏?)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했다. 그는 작은 키(약140센티)에 총명하고, 탁월한 재능의 소유자였으며 청렴결백하여 재상이 된 뒤에도 밥상에 고기반찬을 올리지 않고, 아내가 비단옷 입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리고 조정에 들어가서는 품행을 조심하고, 군주에게는 기탄없이 간언(諫言)을 드렸다.

당시 제(齊)나라와 초(楚)나라는 강대국이었으며 서로를 견제하는 입장에 있었다.

어느 날 두 나라가 화평(和平) 문제로 제나라에서 초나라로 사신이 가게 되었고, 제나라에서는 재상인 안영을 사신으로 보내게 되었다.

한편 초나라 왕은 제나라 사신의 기를 죽여 외교권을 선점하기 위해 안영을 골탕 먹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안영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인물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제나라 돌아가는 정세를 파악하고 싶기도 했다. 드디어 사신은 도착하였고, 초나라 왕은 제나라 사신인 안영의 인사를 받고나서 그의 키가 무척 작은 것을 보고 멸시하는 태도로 시비를 걸었다.

초왕이 "제나라에는 쓸만한 인물이 없는 모양이지요?" 그러자 안영은 "천만에요. 인물이 넘쳐나 누구를 대신(大臣)자리에 앉힐까 임금이 고민하실 정도입니다." 초 왕이 "그렇다면 왜 당신과 같은 키가 작은 사신을 보냈는지 모르겠소!" 초 왕은 키가 5척(150cm 내외)도 안 되는 안영을 내려다보며 이죽거렸다. 그러자 안영은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초왕에게 태연하게 응수했다.

"저희 제나라에는 다른 나라에 사신을 보낼 때 꼭 지키는 법도가 있사옵니다. 그건 다름 아닌 사신이 가는 나라의 크기에 따라 사람을 골라 보내지요. 작은 나라는 키가 작은 사신을 보내고, 큰 나라에는 키가 큰 사신을 보냅니다. 물론 저는 대신들 중에서 키가 가장 작아 초나라에 뽑혀 왔습니다."

안영의 답변에 그만 초왕의 입이 떡 벌어지고 기가 막혔다. 그리고 초왕은 안영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구실을 찾기 위해 그를 대궐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 때 초왕 일행이 저자거리를 지나는데 못 보던 옷차림을 한 사내가 오랏줄에 손이 묶인 채 질질 끌려가는 게 아닌가? 초왕은 포졸을 급히 불러 세웠다.

"여봐라! 무슨 죄를 지었기에 사람을 포박해서 개 끌듯 끌고 가느냐?"

관리가 말하길 "전하, 이놈은 남의 집을 제 집 드나들 듯하면서 물건을 마구 훔친 절도 죄인입니다."

그러자 초 왕이 "그래? 그런데 죄인의 옷을 보니 초나라 사람이 아닌 거 같은데!"

"예, 제나라에서 온 사람입니다." 그러자 초왕이 "그럼 그렇지!"하며 이번에는 안영의 기를 꺾을 좋은 구실이 생겨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초왕은 안영을 보면서 "제나라에는 남의 재물을 함부로 훔치는 도둑들이 득실거리는 모양지요?"라고 하자 안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훈계하듯이 초왕에게 말했다.

"보아하니 초나라는 왕실에서부터 저자 사람들까지 살진 돼지처럼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에만 열중할 뿐 책을 안 읽는 거 같아 앞날이 심히 걱정스럽습니다"라고 하자 초왕은 "그런 걱정은 없소이다!" 초왕은 기분이 나쁜지 안영에게 쏘아붙였다.

그러자 안영은 "전하께서는 남귤북지(南橘北枳)를 잘 모르시는 것 같아 감히 드린 말씀입니다." 이에 초왕은 답변이 궁해 헛기침을 몇 번하다가. "그건 당연하지요!"하고 초왕은 얼떨결에 안영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말았다.

그러자 안영은 천천히 초왕에게 "전하, 강남에 귤이 있는데 그것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고 마는 것은 토질 때문입니다. 저 사람도 제나라에서 살 때는 착했으나 여기 와서 초나라의 나쁜 풍토에 물들어 도둑질을 배운 게 틀림없습니다."

안영의 반격에 초왕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초왕은 안영과 더 이상 대적해 봐야 본전도 못 찾을 거 같아 그만 화해(和解)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소문대로 그대의 재치 넘치는 언변과 지략(智略)에 경탄을 금할 수 없소이다. 우리 그만하고 대궐에 돌아가 대취하도록 술이나 마십시다."

그리하여 초왕은 안영을 만나본 뒤로 제나라를 함부로 넘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현실을 상찰(詳察)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많은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 하고 이해 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권력을 잡고 대궐(靑臺)만 들어가기만 하면 남을 멸시하고, 절대 권력자로 둔갑하여 국민은 안중에 없고 이른바 황제역할을 한다, 또한 평소에는 더 없이 온순하던 사람도 여의도(國會)에만 들어가면 비겁할 정도로 강(强)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弱)하고,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강해진다.

이러한 현상도 대궐과 여의도가 강북에 있기 때문에 남귤북지가 되어버린 것인가?

이는 자기를 지켜주는 주인에게는 참으로 충직한 개가 타인에게는 무서운 맹견이 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의지가 덜 발달된 인간일수록 권위에 복종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기의 약점을 감추고 위기를 지키려고 한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자기주장이나 철학이 확고한 사람은 비겁하지 않다. 과거의 충신들과 의사(義士) 열사(烈士)들은 그렇지 않았다. 항상 소신도 없고 비겁한 자들에게서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靡辭無忠誠, 華繁竟不實(미사무충성 화번경부실) / 말이 유창하면 충성이 없고, 꽃이 화려하면 열매가 없다.

후한 시대 孔融의 '臨終詩'에서 볼 수 있다.

낯간지러운 아첨과 아양 뒤에는 반드시 거짓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혹 코로나 재난지원금도 뒤에 있을 어떤 큰일(大事)을 속이려는 국민에 대한 아양은 아닐까?

장상현/ 인문학 교수

2020101301000791400027401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대전 서부경찰서 멈춤봉투 눈길
  2.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3. 대전·충북 회복기 재활의료기관 총량 축소? 환자들 어디로
  4. 충남도, 국비 12조 확보 위해 지역 국회의원과 힘 모은다
  5. 경영책임자 실형 선고한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상소…"형식적 위험요인 평가 등 주의해야"
  1. 충남도의회, 학교 체육시설 개방 기반 마련… 활성화 '청신호'
  2.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3. 대전동부교육지원청, 학교생활기록부 업무 담당자 연수
  4.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5. 충남권 역대급 더운 여름…대전·서산 가장 이른 열대야

헤드라인 뉴스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전국 4년제 대학 중도탈락자 수가 역대 최대인 10만 명에 달했던 지난해 수도권을 제외하고 충청권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학교를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권에선 목원대와 배재대, 대전대 등 4년제 사립대학생 이탈률이 가장 높아 지역 대학 경쟁력에서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종로학원이 발표한 교육부 '대학알리미'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전국 4년제 대학 223곳(일반대, 교대, 산업대 기준, 폐교는 제외)의 중도탈락자 수는 10만 817명이다. 이는 집계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인데, 전년인 2023년(10..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출시 3개월여 만에 80만 개가 팔린 꿈돌이 라면의 인기에 힘입어 '꿈돌이 컵라면'이 5일 출시된다. 4일 대전시에 따르면 '꿈돌이 컵라면'은 매콤한 스프로 반응이 좋았던 쇠고기맛으로 우선 출시되며 가격은 개당 1900원이다. 제품은 대전역 3층 '꿈돌이와 대전여행', 꿈돌이하우스, 트래블라운지, 신세계백화점 대전홍보관, GS25 등 주요 판매처에서 구매할 수 있다. 출시 기념 이벤트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유성구 도룡동 엑스포과학공원 내 꿈돌이하우스 2호점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 ▲신제품 시식 ▲꿈돌이 포토존 ▲이벤트 참여..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충남 서산의 한 중학교에서 남성 교사 A씨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개월간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일부 피해 학생 학부모들은 올해 학기 초부터 해당 교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복된 부적절한 언행과 과도한 신체접촉을 주장하며, 학교에 즉각적인 교사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학교 측은 사건이 접수 된 후, A씨를 학생들과 분리 조치하고, 자체 조사 및 3일 이사회를 개최해 직위해제하고 학생들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했으며, 이어 학교장 명의의 사과문을 누리집에 게시했다. 학교 측은 "서산교육지원청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