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2026년의 변화 앞에서도 변치 않을 기다림의 하모니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2026년의 변화 앞에서도 변치 않을 기다림의 하모니

이은미 꿈나래교육원 교사

  • 승인 2026-01-29 17:20
  • 신문게재 2026-01-30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clip20260128140435
이은미 꿈나래교육원 교사
얼마 전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압도적인 영상미도 인상적이었지만, 마음에 남은 것은 이야기 속에서 서서히 만들어지던 낯선 연대였다. 승패를 가르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끝내 하나의 방향을 선택해 가는 과정이 조용한 울림으로 남았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 한 해를 함께 살아낸 꿈나래교육원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대전교육연수원 부설 공립위탁형 대안교육기관인 꿈나래교육원에는, 저마다의 이유로 본래 다니던 학교라는 익숙한 자리에서 잠시 비켜나온 아이들이 모여 있다. 교실에 오래 머물지 못했고, 규칙 앞에서 자주 멈춰 섰으며, 관계를 맺는 일에 서툴렀다. 그러다 보니 한 번쯤은 이방인으로 불렸을 법도 하다. 우리는 흔히 그러한 모습을 '문제'라고 부르지만, 아이들과 매일 숨 쉬며 깨달은 것은 그 말이 결국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우리 어른들의 고백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날카로운 판단이 아니라, 잠시 멈춰 깊이 바라봐주는 따뜻한 시선이었다.



꿈나래에서의 하루는 늘 다채롭고 역동적이다.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고,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순간도 잦다. 쉴 새 없이 갈등이 생기고, 때론 누군가는 상처를 입는다. 그럴 때 교사로서 가장 어려운 선택은 개입을 최소화하는 일이다. 누가 옳은지 판단해 주는 대신, 아이들이 스스로 갈등을 마주하고 선택하도록 지켜보는 시간은 길고 불안하다. 그러나 그 틈에서 아이들은 조금씩 다른 길을 고르기 시작한다. 되갚아 주는 대신 먼저 멈추는 선택, 밀어내는 대신 한 발 물러서는 선택.

이러한 시간을 지나며 아이들은 하모니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모나고 아픈 구석을 견디며 비로소 생겨난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워간다. 가장 상처가 많았던 아이가 오히려 공동체를 단단히 붙들고, 가장 말이 거칠던 아이가 관계를 지켜내는 기적같은 순간을 꿈나래에서 수없이 만난다. 그때마다 이곳의 목적이 단순히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하는 것'에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꿈나래교육원은 아이들을 바꾸는 공간이라기보다, 아이들이 자신을 포기하지 않도록 곁을 지켜내는 자리다.



그 과정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지도, 감정을 대신 정리해 주지도 못한다. 다만 아이 곁에 머물며, 어떤 순간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삶으로 보여줄 수는 있다. 아이가 다시 관계 속으로 들어올 수 있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주는 일,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를 기꺼이 함께 견뎌 주는 일. 그래서 꿈나래에서의 교육은 가르침보다 동행에 가까운 순간들로 채워져 있다.

최근 수료식을 앞두고 문집과 영상을 정리하며 그 변화의 결을 다시 확인했다. 한때는 친구와의 갈등으로, 혹은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던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함께 지내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미움 대신 공감을 선택하며 조금씩 웃음을 되찾아갔다. 아이들이 이곳에서 배운 것은 어떠한 교과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상처를 딛고 다시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용기였다.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그 느린 배움이 언젠가 아이들 각자의 삶을 지탱해 줄 가장 단단한 뿌리가 될 것이라 믿는다.

2026년, 꿈나래교육원은 또 한 번의 변화를 앞두고 있다. 인문과 예술을 중심으로 한 교육과정 상의 변화뿐 아니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년제 운영을 새롭게 준비하고 있다. 교육의 방향과 구조가 달라지는 만큼 염려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염려는 어른의 몫으로 남겨두고,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기대를 건네고 싶다. 시스템이 바뀌더라도 기다림의 태도와 관계의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지켜낸 태도와 기억이 새로운 환경에서도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며,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2026년에 새로이 만날 아이들을 기다린다. 이은미 꿈나래교육원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박범계, 6·3 지방선거 불출마… "통합 논의 멈춰, 책임 통감"
  2. 2027학년도 충청권 의대 입학정원 118명 증가…지역의사제에 단계적 확대
  3. 박용갑, 택시운송법·조세특례 개정안 발의… 택시 상생 3법 완성
  4. 대전농협, '백설기데이' 홍보 캠페인 진행
  5. 금강환경청, 아산 인주산단에서 '찾아가는 환경관리' 상담창구 운영
  1. 이 대통령 “충남·북, 대전 통합 경제권·행정체계 고민해봐야”
  2. 천안시, 물총새공원 주차장 조성안 주민설명회 개최
  3. 첼리스트 이나영, '보헤미안' 공연으로 음악적 깊이 선보인다
  4. 황운하 “6월 개헌 위해 여야 국회 개헌특위 구성에 나서달라”
  5.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떨어진 기름값

헤드라인 뉴스


[르포] 방파제 테트라포드, 이런 원리로? KIOST 연구현장 가보니

[르포] 방파제 테트라포드, 이런 원리로? KIOST 연구현장 가보니

방파제 테트라포드(tetrapod)는 어떤 기준으로 설치될까? 지난 12일 오후에 찾은 해양수산부 산하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수리실험동에선 해양구조물과 장비 등을 설치·운영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일상 속 당연시 여겨온 해양 구조물들의 설치 배경엔 수백번, 수천번 끈질긴 연구 끝 최적의 장비 규격을 찾아낸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원들의 끈질긴 노력이 숨어 있다.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에 위치한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내 4005㎡ 규모의 수리실험동은 파도나 흐름을 인공적으로 발생시킬 수 있는 실험시설을 갖추고 있..

이 대통령 “충남·북, 대전 통합 경제권·행정체계 고민해봐야”
이 대통령 “충남·북, 대전 통합 경제권·행정체계 고민해봐야”

이재명 대통령은 13일 “충남·북, 대전까지 통합해서 하나의 거대한 경제권, 행정체계를 만들어볼 거냐는 한번 고민해보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충북 청주 오스코에서 ‘첨단·바이오 산업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의 중심, 충북’이라는 주제로 열린 ‘충북의 마음을 듣다’에서 충남과 대전의 행정통합이 “급정거를 한 상태”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도시들이 경쟁력을 올리려면 광역화가 시대적 추세가 됐다”며 “충청도 지금 대전, 세종, 충남·북으로 많이 나누어져 있는데, 지역 중심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지역연합..

2027학년도 충청권 의대정원 118명 증가…지역의사제에 단계적 확대
2027학년도 충청권 의대정원 118명 증가…지역의사제에 단계적 확대

지역의사제 도입으로 올해 치러지는 2027학년도 대입 전형에서 서울권을 제외한 지역 의대 모집 정원이 늘어남에 따라 충청권 7개 의과대학이 총 118명을 증원한다. 지역 거점 국립대인 충남대는 27명, 충북대는 39명이 늘어 각각 137명, 88명을 모집하고, 건양대와 순천향대 등 5개 사립 의대 역시 52명을 증원해 314명을 선발한다. 13일 교육부가 발표한 '2027학년도~2031학년도 의과대학 학생 정원 배정안'에 따르면, 2027학년도 지역 의대 32곳의 신입생 모집정원 증원 규모는 총 490명이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달..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떨어진 기름값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떨어진 기름값

  • 반갑다 야구야! 반갑다 야구야!

  • 내가 최강소방관 내가 최강소방관

  • ‘저희 동아리가 만든 자동차랍니다’ ‘저희 동아리가 만든 자동차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