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9와 아홉수

  • 오피니언
  • 세상읽기

[세상읽기] 9와 아홉수

  • 승인 2022-01-26 10:43
  • 신문게재 2022-01-27 18면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휴대전화를 찾아 시간을 확인한다. 운전 중 건널목 앞에 멈춰서서 파란 신호등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며 브레이크에서 발을 뗄 준비를 한다. 전화가 오면 '070' 스팸 전화인지, 아는 번호인지를 먼저 살핀다. 실내 환기를 위해 공기청정기를 켜면서 미세먼지 수치가 얼마나 되는지 체크해본다. 이렇듯 삶은 숫자로 가득하다.

나는 0부터 9까지의 숫자 중 특히 '3'을 좋아한다. '1'은 외롭고, '2'는 조금 부족한 듯하고, '3'은 완성된 느낌이다. '삼총사', '삼세번', '삼 세판'에도 '3'이 쓰이고, 가위바위보도 3개의 손모양으로 놀이를 한다. 출발 시점을 카운트할 때 또는 어떤 일이나 동작을 맞출 때도 보통 '셋'에서 시작한다.



나라마다 문화권마다 좋아하는 숫자를 알아보니 각양각색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양사상의 영향으로 나처럼 '3'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음양사상에서는 숫자 '3'이 양을 나타내는 첫 번째 수 '1'과 음을 나타내는 첫 번째 수 '2'가 합해진 조화로운 숫자라고 여겼다. 이웃나라 중국인들은 '8'을 유난히 좋아한다. 이유는 '돈을 번다', '재산을 모은다'는 뜻을 지닌 '발(發)'과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인 데, '8'이 들어가는 주소나 전화번호, 자동차 번호에 거액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기도 한다. 2008년 열린 베이징 올림픽은 8월 8일 저녁 8시 8분에 개회식을 하기도 했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종교적인 영향으로 숫자 '7'을 선호한다. 기독교에서 하느님이 6일 동안 만물을 창조하고 7일째 되는 날 쉬었다는 이유에서다. 또 '7'은 하늘의 완전함을 나타내는 수인 '3'과 땅의 완전함을 나타내는 수인 '4'가 합해진 수로, 하늘과 땅이 합해져서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여겼다.



반면 '13'이라는 숫자는 매우 싫어한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한 날이 바로 '13일의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이날을 특히 불길하게 여겨왔다. 1년 중 '13일의 금요일'은 1~3번 정도 나올 수 있는 데 올해는 다행스럽게도(?) 5월에 한 번뿐이다.

아라비아숫자를 발명한 인도인들은 '9'를 좋아한다. '9'는 한자리로 적을 수 있는 가장 큰 수이며 '완성', '완벽함'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도 '8' 다음으로 좋아하는 숫자가 '9'다. '九'가 길다거나 장수한다는 의미를 가진 '주(久)'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홀수 중 가장 큰 수인 '9'는 상서롭다고 여겨 황제와 관련된 숫자이기도 하다. 음력 9월 9일은 양수가 겹쳤다는 중양절로 전통 명절이기도 하며, 이날 결혼을 많이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숫자 '9'가 들어간 나이를 '아홉수'라고 해서 결혼·이사·이직 등을 피하고, 일이 잘 안풀린다든지 건강을 조심해야 한다든지의 말들을 한다. 환갑을 앞둔 59세에는 생일잔치까지 꺼린다.

특히 '9'가 3번 반복된 1999년에는 전세계가 세기말 불안에 휩싸이기도 했다. 1999년은 새 천년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지만, 한편으로는 Y2K로 불리던 밀레니엄 버그와 노스트라다무스가 세계 멸망을 예언했다고 알려져 있어 더욱 주목을 받았던 해이다. 연도가 '00년'이 '2000년'이 아닌 '1900년'으로 오기된다던가, 아예 '2000년'이라는 연도가 인식이 안돼 전기·전력 등에 의존하는 시설들을 중심으로 연도 숫자 오류로 대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평온하게 21세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무성했던 소문들은 한때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나는 올해 한국 나이로 49세, 흔히 말하는 '아홉수'다. '구미호'도 못 피해 간 '아홉수의 저주'(?)에 빠질까 전전긍긍하기 보다는, 다시 오지 않을 40대의 마지막 한 해를 즐겁고 행복한 일들로 채우고 완성해 우주 만물의 원리를 깨닫는 시기인 '지천명'을 웃으면서 맞이하고 싶다.

현옥란 편집부 부장

현옥란-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부산 수영구, 고령운전자 면허 자진 반납 시 50만원 지원
  2. 대전·충남 행정통합, 가속페달…정쟁화 경계도
  3. [다문화] 이주배경인구, 전체 인구 5% 돌파
  4. [대전 다문화] "가족의 다양성 잇다"… 2025 대덕구 가족센터 성과공유회
  5. [대전 다문화] 한·중 청소년·가족정책 교류 간담회
  1. [세상보기]섬세한 도시
  2. [대전 다문화] 동구, '행복동행 다(多)동행' 멘토링사업 수료식
  3. [지방자치 30년, 다음을 묻다] 확대된 재정, 책임만 남았다
  4. 2026년 어진동 '데이터센터' 운명은...비대위 '철회' 촉구
  5. 천안신방도서관, 2026년에도 '한뼘미술관' 운영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가속페달…정쟁화 경계도

대전·충남 행정통합, 가속페달…정쟁화 경계도

대전·충남 통합특별시 출범 지원을 위한 범정부적 논의가 본격화되는 등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가속페달이 밟히고 있다. 일각에선 이를 둘러싼 여야의 헤게모니 싸움이 자칫 내년 초 본격화 될 입법화 과정에서 정쟁 증폭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경계감도 여전하다. 행정안전부는 24일 대전·충남 통합특별시 출범과 관련해 김민재 차관 주재로 관계 부처(11개 부처) 실·국장 회의를 개최하고, 통합 출범을 위한 전 부처의 전폭적인 특혜 제공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이날 회의에서 대전·충남 통합특별시 출범을 위한 세부 추진 일정을 공..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윤석열 탄핵에서 이재명 당선까지…격동의 1년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윤석열 탄핵에서 이재명 당선까지…격동의 1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과 조기대선을 통한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 두 사안은 올 한해 한국 정치판을 요동치게 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는 연초부터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국면에 들어갔고,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이어졌다. 결국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면서 대통령 궐위가 확정됐다. 이에 따라 헌법 규정에 따라 60일 이내인 올해 6월 3일 조기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임기 만료에 따른 통상적 대선이 아닌, 대통령 탄핵 이후 실시된 선거였다. 선거 결과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꺾고 정권..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대통령 지원사격에 `일사천리`…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대통령 지원사격에 '일사천리'…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의 배를 띄운 것은 국민의힘이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다. 두 시·도지사는 지난해 11월 '행정통합'을 선언했다. 이어 9월 30일 성일종 의원 등 국힘 의원 45명이 공동으로 관련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 여당도 가세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충청권 타운홀미팅에서 "(수도권) 과밀화 해법과 균형 성장을 위해 대전과 충남의 통합이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전면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전·충남 통합 및 충청지역 발전 특별위원회'(충청특위)를 구성..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성탄 미사 성탄 미사

  •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 6·25 전사자 발굴유해 11위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 6·25 전사자 발굴유해 11위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