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미란의 세상읽기] 한끼 1만원 시대

  • 오피니언
  • 세상읽기

[황미란의 세상읽기] 한끼 1만원 시대

  • 승인 2022-06-23 09:35
  • 수정 2022-06-23 11:09
  • 황미란 기자황미란 기자
d
오늘 점심은 산채나물밥이다. 다이어트라는 다부진 목표를 세우고 자발적으로 도시락족이 된지 벌써 2년 남짓. 손 많이 가는 홈메이드 도시락 대신 적당한 칼로리에 5대 영양소를 균형있게 담아낸 '시판 도시락'을 선택했다. 온라인 쇼핑몰을 뒤지고 지인들의 추천을 받고, 수없이 많은 고뇌와 미각을 희생양 삼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제는 도시락 유목민도 졸업했다. 체중감량이라는 당초 목표는 아직 미완이지만 점심값 절약이라는 부수적 효과는 흐뭇하다.

만만한 김치찌개에 식후 커피 한잔이면 만원을 훌쩍 넘겨버리는 탓일까? '한끼 1만원' 시대를 맞은 직장인들에게 이제 도시락은 강요된 선택이 됐다. 그들의 잦은 발걸음 덕에 편의점이 때아닌 호황이다. 작년부터 들썩이던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급기야 13년 9개월만에 최고치를 찍었고, 너도 나도 부자를 꿈꾸며 월급 쪼개 넣어둔 주식계좌는 바닥이 드러난 저수지 마냥 처참하다. 전쟁을 일으킨 푸틴을 원망하고 코로나 극복을 내세우며 대책없이 돈을 풀어 댄 정부를 원망해보지만, 별수 없다.

"장보기 겁난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푸념과 함께 짠물소비는 이제 생존전락이 됐다. 편의점 구독 쿠폰을 활용해 한끼를 해결하고, 대형마트에서는 양파 1개, 감자 1개 등 딱 필요한 만큼만 사고, 배달서비스 대신 발품을 판다. 서글픈 신조어도 생겨났다. 물가상승으로 인해 점심값 지출이 늘어난 상황을 뜻하는 런치플레이션(점심+인플레이션), 따로 장을 보지 않고 냉장고 속 재료만으로 음식을 해 먹는 다는 뜻의 '냉파(냉장고 파먹기)족', 아예 장보기를 포기했다는 '장포족'까지, 그 속에 담긴 현실이 처절하다.

고물가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은 경제 지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직격탄을 맞은 건 언제나 그렇듯 경제 취약층.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20%의 월평균 가처분소득 가운데 식품비가 차지한 비중이 42.2%에 달한다고 한다. 세금이나 의료보험료 등 비소비지출을 제외하고 남은 돈, 즉 근로자 손에 쥐어진 정말 먹고 사는 데 쓸 수 있는 돈 절반가량을 식비로 쓴 셈이다. 이는 소득 상위 20%의 평균 식비 비중(13.2%)의 3배가 넘는 수준이고, 전체가구 평균 18.3%보다도 훨씬 높다.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해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질을 수치화한 '경제고통지수'도 21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벼랑 끝에 선 서민들의 밥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국회는 24일째 멈춰서 있다. 법사위원장 자리를 서로 가져가겠다며 여야가 극렬히 대치하며 뜻하지 않은 휴가(?)가 생긴 탓일까? 매월 1200여만원의 월급을 따박따박 받으면서 국회의사당 대신 외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있다고 한다. 6월과 7월 중에만 58명이 해외출장을 갔다 왔거나 갈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는 국회 재적의원의 20%에 해당된다. 물론 이유는 있다. 외국 의회 관계자와 면담이 있어서, 입법 연구를 위해서…. 인사청문회부터 민생 입법까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자"는 성난 민심에도 아랑곳 않는 대범함. "먹고사는 문제가 얼마나 급한데 그게 현안이냐"며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을 두고 내뱉은 한 정치인의 발언이 민망하고 또 민망하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몰아닥친 '경제 재난'을 한방에 잠재울 수 있는 묘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일 안하는 국회', '흡혈국회'라는 낙인에 부끄러움조차 못 느껴서야 되겠는가.

"지금 국민들이 숨이 넘어가는 상황이다" 법 개정이 필요한 정책에 대해 초당적으로 대응해달라는 대통령의 출근길 발언, 그 당부가 제발 그들을 움직여 주길 바랄뿐이다.

편집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