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壽 김희수와 건양의 사람들] 제자·환자·만학도 마주한 김희수 "여러분이 저의 가장 아름다운 발자국"

[白壽 김희수와 건양의 사람들] 제자·환자·만학도 마주한 김희수 "여러분이 저의 가장 아름다운 발자국"

●한 사람의 꿈, 세 사람의 삶을 만나다
중도일보 특별한 만남 기획… 건양대·병원·사이버대에서의 기억 공유
"출발점" "희망" "새로운 도전" 건양의 의미 나누며 감사의 마음 전해

  • 승인 2026-07-02 18:44
  • 수정 2026-07-02 18:59
  • 신문게재 2026-07-03 11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올해 99세를 맞은 김희수 건양대 명예총장은 건양대 졸업생과 병원 환자 등 '건양의 사람들'과 만나 지역 의료와 교육 발전에 헌신해 온 지난 100년의 발자취를 돌아봤습니다. 그는 의술은 병을 고치고 교육은 인생을 바꾼다는 신념 아래 중·고교와 대학, 병원을 설립하며 지역 사회에 실질적인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 왔습니다. 김 명예총장은 자신의 설립 기관들이 앞으로도 규모보다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안식처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습니다.

백수(白壽)는 아흔아홉 해를 이르는 말이다. 한자 일백 백(百)에서 한 획을 덜어내면 흰 백(白)이 된다는 데서 유래했다.
올해 백수를 맞은 김희수 건양대 명예총장은 그 비워진 한 획을 지역을 향한 헌신으로 채워왔다. 1962년 영등포의 작은 안과의원에서 시작된 그 길은 건양대와 병원, 사이버대학으로 이어졌고 그 시간은 충청권 의료와 교육의 시간으로 남았다.
지역 사랑은 건물을 세우는 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누군가의 꿈이 자라고, 아픔을 이겨내고, 배움의 기쁨을 느낄 때 비로소 학교와 병원의 이름은 시민들의 기억속에 새겨진다.
'건양'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세 사람이 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제독이 된 건양대 졸업생, 건양대병원에서 두 차례의 암 수술을 받아 회복 중인 환자, 예순의 나이에 다시 학생이 돼 건양사이버대를 졸업한 만학도다.
중도일보는 김 명예총장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세 사람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마주 앉아 나눈 대화의 현장을 지면에 담았다. <편집자 주>

대담2
6월 24일 대전 건양대병원 명곡 김희수 박사 기념홀에 '건양의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고미선 중도일보 부국장, 서상규 해군 준장, 김희수 건양대 명예총장, 김영일 씨, 정주택 대전지방변호사회 사무국장. (사진=이성희 기자)
대전 건양대병원 명곡 김희수 박사 기념홀에 그의 삶을 닮은 세 사람이 찾아왔다.

서상규 준장은 1994년 건양대에 입학해 동아리 활동과 야학 봉사모임을 이끌며 해군 장교의 꿈을 키웠고, 고교 교장을 역임한 김영일 씨는 건양대병원에서 폐암과 대장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최근 새 삶을 시작했다. 정주택 대전지방변호사회 사무국장은 퇴근 후와 주말마다 건양사이버대학에서 배움을 실천해 인생 2막을 준비했고, 아내도 같은 사이버대에 만학도로 공부 중이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을 이어준 이름은 모두 '김희수'였다.

중도일보는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중·고교 설립과 대학 경영, 대학병원 개설이 수십 년 후 어떤 사회적 가치를 발휘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들 세 사람을 초대해 대화를 청했다. 거절하는 이 없이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서 김 명예총장까지 네 명의 만남이 6월 24일 성사됐다.

도서가 진열된 곳에서 둘러앉아 오후 2시부터는 대담이 이어졌다. 이번 만남을 기획한 본보 고미선 사회과학부장은 "오늘 이 자리는 99세 백수를 맞은 김희수 명예총장과 건양의 길을 걸어온 세 명이 건양대와 건양대병원, 건양사이버대를 대표해 만나는 자리입니다"라는 인사로 문을 열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삶이 건양에서 어떻게 교차했는지 설명하는 순서로 이어졌다. 서상규 준장은 야학과 봉사동아리, 학생자치 활동을 통해 리더십과 책임을 배웠고 그 경험이 해군 장교의 길을 선택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김영일 씨는 서울의 대형병원 대신 건양대병원을 선택했던 이유와 세 번의 암을 이겨낸 과정을 들려줬다. 정주택 씨는 국립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사이버대 학생이 된 경험과 배움이 삶에 어떤 즐거움을 주는지 설명했다.

세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질 때마다 김 명예총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때로는 미소를 지으며 당시의 기억을 보탰다. '당신에게 건양이란 어떤 의미입니까'라는 질문에 세 사람은 "출발점", "희망", "새로운 도전"이라고 각자의 삶을 담은 듯한 대답을 내놓았다.

서로 다른 삶은 한 사람의 꿈에서 시작됐다. 의사 한 사람의 꿈은 학교가 됐고 병원이 됐으며, 수십 년이 흐른 뒤에는 또 다른 누군가의 인생이 되어 지역사회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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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건양대 명예총장.(사진=이성희 기자)
●김희수 명예총장에게 듣다

"의사는 병을 고치고 교육은 인생을 바꿔… 건양,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곳으로 기억됐으면…."
"오늘 여기 모인 '건양의 사람들'을 보니 제 마음에 남아 있던 아쉬움마저 감사로 바뀌는 것 같아요."


1956년 6월, 스무 살 청년 김희수는 인천항에서 미군 수송선에 몸을 실었다. 의사의 꿈을 품고 떠난 그 첫걸음은 훗날 농촌에 학교를 세우고, 논밭의 소외지역에 대학병원의 문을 열어 사람을 키우고 보살피는 삶으로 이어졌다. 99세 백수(白壽)를 맞은 김희수 건양대 명예총장의 발자국을 돌아보고 큰 나무로 성장해 그늘이 되어주고 비바람을 막아주는 학교와 병원에 관해 대화했다.

-건양중학교가 지난 2월 53회 졸업식을 가졌고, 건양고는 개교한 이래 41년간 6035명의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이들 학교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계시지요?

▲1978년 늦가을, 폐교 위기에 처한 중학교를 살려달라며 논산 양촌 고향 분들이 저를 찾아오셨을 때 제 나이가 50이었어요. 아무리 백세시대라 하지만 그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그래도 학교를 직접 보고 결정하자는 마음으로 내려갔어요.

직접 본 학교는 참담했어요. 비만 오면 양철지붕에 빗소리가 들리고 화장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죠. 이대로라면 아이들은 배움의 기회를 잃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농촌 학생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긴 것이죠.

의사는 한 번에 한 사람의 병을 고치지만 교육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그 사람이 다시 세상을 바꾸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건양중학교를 개교했을 때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보며 '좋은 일을 했구나' 하는 행복을 느꼈어요.

-건양대병원을 '내 인생의 완성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만수원 부지에 대학병원을 세우는 과정도 쉽지 않았지요?

▲중·고교를 세운 뒤에는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을 꼭 만들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고향 논산을 생각했지만 여러 여건을 살펴본 끝에 대전 서남부권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죠.

그때 부지를 찾다가 시민들이 즐겨 찾던 만수원을 보게 됐어요. 토지주를 설득해 1995년 절반 규모를 먼저 매입했고, 이후 전체를 매입해 병원을 세울 수 있었죠. 지금 생각해도 만수원은 제게 큰 기회를 준 고마운 장소예요.

공정률이 30% 남짓했을 때 외환위기가 닥쳤지만 미리 준비한 자금으로 공사를 이어갈 수 있었어요. 지나고 보니 IMF는 시련이 아니라 더 좋은 병원을 만들게 한 기회였던 것 같아요. 지역이 발전하려면 좋은 병원이 있어야 해요. 건양대병원이 지역민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됐길 바랍니다.

-건양대는 글로컬대학30 'K-국방산업 선도대학'으로 선정됐고 의료·보건 특성화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가슴 벅차고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농촌 출신이라고, 지역 대학이라고 학생들의 꿈까지 작아져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습니다. 충청권은 대한민국 국방의 중심인 만큼 일찍부터 국방 특성화를 추진해 왔고, 지금 그 결실을 보게 돼 기쁩니다.

오늘도 제자였던 학생이 해군 준장이 되어 다시 찾아왔잖아요. 그것만으로도 큰 보람입니다. 메디컬캠퍼스 역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어 구성원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학생들에게 새벽마다 빵을 나눠주고, 교정의 담배꽁초를 주우며 '꽁초 줍는 총장'이라는 별명도 들었어요. 수업에 집중하자며 휴대전화를 강의실 앞에 두자는 제안에도 학생들이 잘 따라줬죠. 모두에게 고마울 뿐입니다.

-건양사이버대는 11년 연속 학업유지율 1위를 기록했습니다. 설립 계기는 무엇인가요?

▲배움에는 나이도 시기도 없다고 생각해요. 젊었을 때 공부할 기회를 놓쳤더라도 배우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누구나 평생토록 성장할 수 있는 '평생학습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어 사이버대를 만들었어요.

저도 지금까지 일정표를 짜 운동을 하고 악기를 배웁니다. 어느 때는 너른 대지에 해바라기꽃이 핀 그림도 그리고 서예도 하고 골프도 치러 가고요. 제게 자꾸 나이를 묻는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배우는 데에는 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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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양'에서 각자의 삶을 써 내려온 인연들이 6월 24일 대전 건양대 역사박물관 명곡 전시관을 둘러보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상규 해군 준장(진), 김희수 건양대 명예총장, 정주택 대전지방변호사회 사무국장, 김영일 씨. (사진=이성희 기자)
-지역 의료와 지역 대학이 수도권이 아니라는 이유로 낮게 평가받기도 합니다.

▲서울과 수도권으로만 몰리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우리 스스로 극복해야 해요. 덩치만 크다고 좋은 병원, 좋은 대학은 아니죠. 건양대병원은 다학제 진료와 첨단 장비, 신속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요.

암 치료는 장기전입니다. 길 위에서 허비하는 시간과 가족들의 부담까지 생각한다면 신뢰할 수 있는 가까운 대학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고 생각해요.

-오늘 '건양의 사람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오늘 만남을 보며 제 일백 년의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세운 병원에서 건강을 되찾은 환자, 건양대에서 꿈을 키워 해군 준장이 된 졸업생,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 만학도까지 모두 찾아와 주셨잖아요. 여러분이야말로 제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발자국입니다. 건양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러분이에요.

마음에 남는 아쉬움이 있다면,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기에 해야 할 일과 품어야 할 이웃들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는 거예요. 더 많은 이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전하고 기회를 제공하고 싶은데,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여전해 50살 때 중학교를 세운 때만큼 뜨겁거든요. 오늘 여기 모인 우리 '건양의 사람들'이 제 아쉬움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훌륭하게 자라주었으니 아쉬움마저도 감사한 마음으로 어우러졌어요.

-'김희수'가 남긴 학교와 병원이 앞으로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시나요?

▲지금처럼 지역사회에 필요한 존재가 되길 바래요. 규모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학교와 병원, 환자에게는 마지막 안심처가 되고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훗날 제가 세상에 없더라도 지역민들이 "건양은 참으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했던 곳이다"라고 기억해 준다면, 저와 아내 김영이의 일백 년의 여정은 그것으로 충분하고 행복할 거예요.

대담=고미선 사회과학부장(부국장)·정리=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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