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백수를 맞은 김희수 건양대 명예총장은 그 비워진 한 획을 지역을 향한 헌신으로 채워왔다. 1962년 영등포의 작은 안과의원에서 시작된 그 길은 건양대와 병원, 사이버대학으로 이어졌고 그 시간은 충청권 의료와 교육의 시간으로 남았다.
지역 사랑은 건물을 세우는 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누군가의 꿈이 자라고, 아픔을 이겨내고, 배움의 기쁨을 느낄 때 비로소 학교와 병원의 이름은 시민들의 기억속에 새겨진다.
'건양'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세 사람이 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제독이 된 건양대 졸업생, 건양대병원에서 두 차례의 암 수술을 받아 회복 중인 환자, 예순의 나이에 다시 학생이 돼 건양사이버대를 졸업한 만학도다.
중도일보는 김 명예총장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세 사람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마주 앉아 나눈 대화의 현장을 지면에 담았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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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4일 대전 건양대병원 명곡 김희수 박사 기념홀에 '건양의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고미선 중도일보 부국장, 서상규 해군 준장, 김희수 건양대 명예총장, 김영일 씨, 정주택 대전지방변호사회 사무국장. (사진=이성희 기자) |
서상규 준장은 1994년 건양대에 입학해 동아리 활동과 야학 봉사모임을 이끌며 해군 장교의 꿈을 키웠고, 고교 교장을 역임한 김영일 씨는 건양대병원에서 폐암과 대장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최근 새 삶을 시작했다. 정주택 대전지방변호사회 사무국장은 퇴근 후와 주말마다 건양사이버대학에서 배움을 실천해 인생 2막을 준비했고, 아내도 같은 사이버대에 만학도로 공부 중이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을 이어준 이름은 모두 '김희수'였다.
중도일보는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중·고교 설립과 대학 경영, 대학병원 개설이 수십 년 후 어떤 사회적 가치를 발휘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들 세 사람을 초대해 대화를 청했다. 거절하는 이 없이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서 김 명예총장까지 네 명의 만남이 6월 24일 성사됐다.
도서가 진열된 곳에서 둘러앉아 오후 2시부터는 대담이 이어졌다. 이번 만남을 기획한 본보 고미선 사회과학부장은 "오늘 이 자리는 99세 백수를 맞은 김희수 명예총장과 건양의 길을 걸어온 세 명이 건양대와 건양대병원, 건양사이버대를 대표해 만나는 자리입니다"라는 인사로 문을 열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삶이 건양에서 어떻게 교차했는지 설명하는 순서로 이어졌다. 서상규 준장은 야학과 봉사동아리, 학생자치 활동을 통해 리더십과 책임을 배웠고 그 경험이 해군 장교의 길을 선택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김영일 씨는 서울의 대형병원 대신 건양대병원을 선택했던 이유와 세 번의 암을 이겨낸 과정을 들려줬다. 정주택 씨는 국립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사이버대 학생이 된 경험과 배움이 삶에 어떤 즐거움을 주는지 설명했다.
세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질 때마다 김 명예총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때로는 미소를 지으며 당시의 기억을 보탰다. '당신에게 건양이란 어떤 의미입니까'라는 질문에 세 사람은 "출발점", "희망", "새로운 도전"이라고 각자의 삶을 담은 듯한 대답을 내놓았다.
서로 다른 삶은 한 사람의 꿈에서 시작됐다. 의사 한 사람의 꿈은 학교가 됐고 병원이 됐으며, 수십 년이 흐른 뒤에는 또 다른 누군가의 인생이 되어 지역사회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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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수 건양대 명예총장.(사진=이성희 기자) |
"의사는 병을 고치고 교육은 인생을 바꿔… 건양,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곳으로 기억됐으면…."
"오늘 여기 모인 '건양의 사람들'을 보니 제 마음에 남아 있던 아쉬움마저 감사로 바뀌는 것 같아요."
1956년 6월, 스무 살 청년 김희수는 인천항에서 미군 수송선에 몸을 실었다. 의사의 꿈을 품고 떠난 그 첫걸음은 훗날 농촌에 학교를 세우고, 논밭의 소외지역에 대학병원의 문을 열어 사람을 키우고 보살피는 삶으로 이어졌다. 99세 백수(白壽)를 맞은 김희수 건양대 명예총장의 발자국을 돌아보고 큰 나무로 성장해 그늘이 되어주고 비바람을 막아주는 학교와 병원에 관해 대화했다.
-건양중학교가 지난 2월 53회 졸업식을 가졌고, 건양고는 개교한 이래 41년간 6035명의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이들 학교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계시지요?
▲1978년 늦가을, 폐교 위기에 처한 중학교를 살려달라며 논산 양촌 고향 분들이 저를 찾아오셨을 때 제 나이가 50이었어요. 아무리 백세시대라 하지만 그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그래도 학교를 직접 보고 결정하자는 마음으로 내려갔어요.
직접 본 학교는 참담했어요. 비만 오면 양철지붕에 빗소리가 들리고 화장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죠. 이대로라면 아이들은 배움의 기회를 잃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농촌 학생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긴 것이죠.
의사는 한 번에 한 사람의 병을 고치지만 교육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그 사람이 다시 세상을 바꾸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건양중학교를 개교했을 때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보며 '좋은 일을 했구나' 하는 행복을 느꼈어요.
-건양대병원을 '내 인생의 완성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만수원 부지에 대학병원을 세우는 과정도 쉽지 않았지요?
▲중·고교를 세운 뒤에는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을 꼭 만들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고향 논산을 생각했지만 여러 여건을 살펴본 끝에 대전 서남부권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죠.
그때 부지를 찾다가 시민들이 즐겨 찾던 만수원을 보게 됐어요. 토지주를 설득해 1995년 절반 규모를 먼저 매입했고, 이후 전체를 매입해 병원을 세울 수 있었죠. 지금 생각해도 만수원은 제게 큰 기회를 준 고마운 장소예요.
공정률이 30% 남짓했을 때 외환위기가 닥쳤지만 미리 준비한 자금으로 공사를 이어갈 수 있었어요. 지나고 보니 IMF는 시련이 아니라 더 좋은 병원을 만들게 한 기회였던 것 같아요. 지역이 발전하려면 좋은 병원이 있어야 해요. 건양대병원이 지역민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됐길 바랍니다.
-건양대는 글로컬대학30 'K-국방산업 선도대학'으로 선정됐고 의료·보건 특성화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가슴 벅차고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농촌 출신이라고, 지역 대학이라고 학생들의 꿈까지 작아져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습니다. 충청권은 대한민국 국방의 중심인 만큼 일찍부터 국방 특성화를 추진해 왔고, 지금 그 결실을 보게 돼 기쁩니다.
오늘도 제자였던 학생이 해군 준장이 되어 다시 찾아왔잖아요. 그것만으로도 큰 보람입니다. 메디컬캠퍼스 역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어 구성원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학생들에게 새벽마다 빵을 나눠주고, 교정의 담배꽁초를 주우며 '꽁초 줍는 총장'이라는 별명도 들었어요. 수업에 집중하자며 휴대전화를 강의실 앞에 두자는 제안에도 학생들이 잘 따라줬죠. 모두에게 고마울 뿐입니다.
-건양사이버대는 11년 연속 학업유지율 1위를 기록했습니다. 설립 계기는 무엇인가요?
▲배움에는 나이도 시기도 없다고 생각해요. 젊었을 때 공부할 기회를 놓쳤더라도 배우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누구나 평생토록 성장할 수 있는 '평생학습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어 사이버대를 만들었어요.
저도 지금까지 일정표를 짜 운동을 하고 악기를 배웁니다. 어느 때는 너른 대지에 해바라기꽃이 핀 그림도 그리고 서예도 하고 골프도 치러 가고요. 제게 자꾸 나이를 묻는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배우는 데에는 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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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양'에서 각자의 삶을 써 내려온 인연들이 6월 24일 대전 건양대 역사박물관 명곡 전시관을 둘러보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상규 해군 준장(진), 김희수 건양대 명예총장, 정주택 대전지방변호사회 사무국장, 김영일 씨. (사진=이성희 기자) |
▲서울과 수도권으로만 몰리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우리 스스로 극복해야 해요. 덩치만 크다고 좋은 병원, 좋은 대학은 아니죠. 건양대병원은 다학제 진료와 첨단 장비, 신속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요.
암 치료는 장기전입니다. 길 위에서 허비하는 시간과 가족들의 부담까지 생각한다면 신뢰할 수 있는 가까운 대학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고 생각해요.
-오늘 '건양의 사람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오늘 만남을 보며 제 일백 년의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세운 병원에서 건강을 되찾은 환자, 건양대에서 꿈을 키워 해군 준장이 된 졸업생,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 만학도까지 모두 찾아와 주셨잖아요. 여러분이야말로 제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발자국입니다. 건양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러분이에요.
마음에 남는 아쉬움이 있다면,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기에 해야 할 일과 품어야 할 이웃들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는 거예요. 더 많은 이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전하고 기회를 제공하고 싶은데,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여전해 50살 때 중학교를 세운 때만큼 뜨겁거든요. 오늘 여기 모인 우리 '건양의 사람들'이 제 아쉬움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훌륭하게 자라주었으니 아쉬움마저도 감사한 마음으로 어우러졌어요.
-'김희수'가 남긴 학교와 병원이 앞으로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시나요?
▲지금처럼 지역사회에 필요한 존재가 되길 바래요. 규모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학교와 병원, 환자에게는 마지막 안심처가 되고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훗날 제가 세상에 없더라도 지역민들이 "건양은 참으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했던 곳이다"라고 기억해 준다면, 저와 아내 김영이의 일백 년의 여정은 그것으로 충분하고 행복할 거예요.
대담=고미선 사회과학부장(부국장)·정리=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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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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