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키호테 世窓密視] 당신만 있어 준다면

  • 오피니언
  • 홍키호테 세창밀시

[홍키호테 世窓密視] 당신만 있어 준다면

눈물의 깻잎장아찌

  • 승인 2022-08-27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어이구 아파 죽겠네!" 바로 곁에서 들리는 다른 환자의 고통스러운 신음(呻吟)이었다. 병원의 5인용 다인실 병실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그러나 워낙 지근거리인지라 심지어는 숨소리까지 들렸다.

특히 심야에는 더더욱이나. 순간, 아들의 말대로 2인용 병실로 옮길 걸 그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또한 돈으로 연결되는지라 아내는 여전히 손사래였다. 아들이 힘들게 번 돈을 의식한, 엄마의 어쩌면 당연한 논리의 주장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부자는 마치 대궐처럼 넓은 1인용 병실도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렇지만 현실의 서민은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다른 환자의 힘에 겨운 숨소리가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휴대전화에 이어폰을 연결했다. 마침맞게(?) 양희은의 <당신만 있어 준다면>이 흘러나왔다.

= "세상 부귀영화도 세상 돈과 명예도 / 당신, 당신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죠 / 세상 다 준다 해도 세상 영원타 해도 / 당신, 당신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죠 /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세월 /

이젠 알아요 그 추억 소중하단 걸 / 가진 건 없어도 정말 행복했었죠 / 우리 아프지 말아요 먼저 가지 말아요 / 이대로도 좋아요 아무 바램 없어요 / 당신만 있어 준다면 / 당신, 당신, 나의 사람/ 당신만 있어 준다면 ~" =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것은 어떤 죄책감과 회한이 복합된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동안에도 고삭부리였던 아내가 모 대학병원에 입원한 건 지난 일요일이다.

이튿날 수술을 받았다. 노심초사하면서 병구완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문제는 24시간 아내와 함께 할 수 없다는 현실적 제한이었다. 직장에 나가야 하고, 귀가해서는 빨래도 해야 하는 등 졸지에 '홀아비'가 되고 보니 할 일이 태산이었다.

오래전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똑같은 고난의 시기를 경험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절감했지만, 사람에게 있어 건강처럼 중요한 건 또 없다. 쥐뿔도 없는 빈가(貧家)의 장손에게 시집온 지 어언 41년.

무능한 가장 때문에 입때껏 한 번도 호강 한 번 누린 적이 없는 가련한 여인은 그저 속절없이 늙고 병까지 들었다. 그렇지만 아내는 한 번도 이처럼 부족한 남편을 원망하거나 폄훼하지 않았다.

되레 두 아이를 보란 듯 잘 길러 주변의 칭찬과 부러움이 여전히 무성하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새벽 3시도 안 돼 일어났다. 밤새 아내는 또 얼마나 지독한 통증에 시달렸을까….

퇴원 때까지 금식이라는데 먹지 못하는 그 간절함은 뉘라서 알까… 달랑 둘이 살던 집에서 아내가 부재중이고 보니 무기력증에 빠지는 건 남편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뭐라도 한술 떠야 또 일을 나갈 수 있다. 그렇지만 식욕을 잃은 지 오래인지라 라면 따위로 대충 때우고 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냉동된 밥이 수북했다. 남편이 툭하면 지인과 밖에서 밥 내지 술을 먹고 오는 날에도 아내는 항상 내가 먹을 분량의 밥을 짓고 기다렸으리라.

그러면서 아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다시금 아내가 가여웠다. 해동한 밥에 물을 넣어 끓인 뒤 깻잎장아찌로 대충 배를 채우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깻잎장아찌 역시 어쩌면 오늘날과 같을 때 먹으라고 선견지명(先見之明)을 지닌 아내가 만들어 둔 '비상식량'이었을 게다. 깻잎장아찌를 먹는데 주책없이 또 눈물이 났다.

여보 ~ 세상 그 어떤 부귀영화도, 돈과 명예도 당신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더군요. 이대로도 좋아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아무 바람 없어요. 부디 하루빨리 훨훨 털고 일어나시구려! 당신의 빈자리가 너무 크구려.

홍경석 / 작가 · '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 저자

2022061101000656200020101
* 홍경석 작가의 칼럼 '홍키호테 世窓密視(세창밀시)'를 매주 중도일보 인터넷판에 연재한다. '世窓密視(세창밀시)'는 '세상을 세밀하게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건고추 100%로 속여 판 충북 옥천 식품업체 대표, 벌금 8억 7000만원 선고
  2. '읍면 공동주택' 1.2만 호 무산 여파… 세종시 후속 대책 추진
  3. 올 가을 행정수도특별법 결실 맺나… 연내 제정 기대감 커져
  4. 대전맹학교, 휠체어 리프트 갖춘 대형 전기버스 도입
  5. “건물 폭파하겠다” 방위사업청서 소란 피운 여성 도주…경찰 추적
  1. 중기부 이어 국정자원마저?… 대전, 또 ‘기관 이탈’ 위기감
  2. 대전시가족센터·대전오페라단 업무협약
  3. '한글 비문'에 담긴 광복의 기쁨… 대전 속 잊힌 독립 유산을 아시나요?(영상있음)
  4. [날씨] 광복절 연휴 첫날 충청권 흐리고 비…오후부터 곳곳 소나기
  5. 대전사랑메세나·동안미소한의원,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 위한 의료품 지원

헤드라인 뉴스


`한글비문`에 담긴 광복의 기쁨… 대전 속 잊힌 독립 유산을 아시나요?(영상있음)

'한글비문'에 담긴 광복의 기쁨… 대전 속 잊힌 독립 유산을 아시나요?(영상있음)

1945년 8월 15일 조국 독립의 감격은 대전 도심 곳곳에 깊은 역사적 족적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세워진 대전의 대표적 광복 상징물이 마침내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시 문화유산으로 결실을 맺었다.대전시는 제81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중구 보문산에 위치한 '대전 을유해방기념비(乙酉解放記念碑)'가 대전시 문화유산으로 정식 등록됐다고 밝혔다.을유해방기념비는 1946년 8월 15일 광복 1주년을 맞아 대전부민(시민)들이 십시일반 뜻을 모아 대전역 광장에 세운 약 3m 규모의 비석이다. 다른 지역의 해방기념..

올 가을 행정수도특별법 결실 맺나… 연내 제정 기대감 커져
올 가을 행정수도특별법 결실 맺나… 연내 제정 기대감 커져

행정수도특별법 연내 제정 가능할까. 앞서 범국민적 연대 조직이 닻을 올린 데 이어 전국적인 공감대 형성을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법안 제정을 실현할 긍정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시민사회의 협력과 전국 시·도지사들의 지지를 발판삼아 본격 법제화 행보에 돌입한 가운데, 올 가을 정기국회에서 '특별법 제정'이란 결실을 거둘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조상호 세종시장은 14일 서울에서 열린 제61차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총회에서 행정수도특별법의 연내 제정을 위한 전국적 지지를 요청하고 나섰다. 조 시장은 "올해는 20여..

충남대·공주대 통합대학 명칭 ‘충남대’로… 법적 대표주소 대전
충남대·공주대 통합대학 명칭 ‘충남대’로… 법적 대표주소 대전

통합을 추진중에 있는 충남대와 국립공주대의 통합대학 밑그림이 구체화 됐다. 통합대학은 '충남대학교'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법적 대표주소는 대전으로 정하되, 대전과 공주에 통합본부를 두고 캠퍼스별 특성에 따라 주요 행정기능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전망이다. 양 대학은 14일 세종공동캠퍼스 학술문화지원센터에서 양교 총장과 통합준비위원회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그동안의 통합 추진 경과와 주요 쟁점에 대한 협의 결과를 중간 발표했다. 이번 조정안에 따라 통합대학의 교명은 충남대학교로, 법적 대표주소는 대전으로 정해졌다. 통합본부는 대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백중사리 기간에 침수된 보령시 오천항 일대 백중사리 기간에 침수된 보령시 오천항 일대

  • ‘자동차 불법 튜닝 안됩니다’ ‘자동차 불법 튜닝 안됩니다’

  • 대전시-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당정협의회 대전시-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당정협의회

  • 대전 가장교 시멘트 떨어짐 현상…시민들 안전 ‘위협’ 대전 가장교 시멘트 떨어짐 현상…시민들 안전 ‘위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