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정치권력과 고고학은 거리가 멀수록 좋다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정치권력과 고고학은 거리가 멀수록 좋다

박양진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

  • 승인 2022-10-24 08:45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박양진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시사오디세이)
박양진 교수
북한의 평양시 강동군 문흥리의 대박산 기슭에는 이른바 ‘단군릉’이 있다. 한 변 길이 50m의 정사각형 평면과 높이 22m의 9단의 계단식 피라미드 형태인 이 무덤은 고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현대 건축물이다.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있는 고구려 장군총의 형태를 모방·확대해 1,994개의 화강석으로 1994년 북한이 개건(改建)한 것이다.

이 현대 단군릉의 내부 무덤 칸에는 단군과 그 아내의 유골이 안치돼 있는데, 이는 오랫동안 단군릉으로 알려져 왔고 이미 도굴된 적이 있는 강동군의 한 무덤에서 북한 고고학자들이 발굴했다고 1993년 10월 발표한 것이다. 이 무덤은 비록 고구려 시대에 유행했던 석실분 형태이지만, 그곳에서 출토된 인골은 '전자상자성공명법'이라는 과학적 측정 방법을 통해 5000년 전의 유골로 판정됐고, 따라서 단군과 그 아내의 뼈임이 현대과학에 의해 증명됐다고 북한은 주장한다.



평양 단군릉의 발견과 조사, 개건은 북한 정권의 전폭적인 지시와 지원으로 이뤄졌다. 북한의 김일성은 1990년대초 단군 관련 유적의 중점 조사를 고고학자들에게 지시했고, 1993년 '단군릉'의 발굴 현장도 직접 방문해 출토된 이른바 단군의 유골을 살펴봤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후 현대 단군릉이 완성되자 10월 개건 준공식을 거행했고 직후 김정일도 직접 이 현대 단군릉을 방문했다.

평양의 단군릉 발굴은 고고학이라는 학문의 힘을 빌려 신화의 주인공을 역사적 실존 인물로 바꾸었고, 그 증거로 과학적 연대측정법을 거론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건국 시조 단군은 5천 년 전에 실존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무덤 소재지가 평양임을 과학적으로 밝혀내 한민족 역사의 중심은 단군부터 현대 북한 정권에 이르기까지 평양에 위치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북한은 주장한다.



21세기에 들어와 북한의 고고학과 역사학은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 유역이 세계 최초의 국가 발상지, 고대 문명의 발상지의 하나임을 주장하면서 고대 성곽과 취락, 무덤, 청동기 등의 고고학 유적과 유물을 그 증거로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단군릉과 대동강 문명 등의 주장은 이미 학문적 연구 영역을 벗어나 북한 정권의 정치적 선전과 역사적 이데올로기의 일부가 됐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중국에서도 고고학과 고대사에 대한 정치적 개입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중국 최고의 권력 기관인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이 2020년 9월 제23차 단체 학습을 진행했는데, 시진핑 총서기가 참석해 중국 특색과 중국 풍격, 중국 기백의 고고학을 건설해 중화문명을 인식하고 우수한 전통문화를 홍보할 것을 주문했다. 2022년 5월의 제39차 단체 학습에서는 중화문명 탐원공정의 심화와 관련된 주제를 다뤘는데, 시진핑이 또다시 직접 회의를 주재하면서 중화문명 연구의 중요성과 중국고고학의 역할을 강조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정치인이나 집단이 고고학이나 역사학에 관심을 가질 때 전폭적인 각종 지원을 통해 학문이 일시적으로 발전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연구의 정치적 활용이라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서 자유로운 최소한의 학문적 논의와 토론, 평가가 불가능하게 된다. 또한 특정 주제나 지역에 대한 편향 지원은 건강하고 균형잡힌 학문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그 폐해가 앞에 거론한 사례만큼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정권이나 정치인이 고고학, 역사학 조사와 연구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가 적잖게 있었다. 백제의 무녕왕릉이 도굴되지 않고 우연히 발견돼 백제 문화의 우수성이 알려지자, 박정희 대통령은 그때까지 온전하게 잘 보존되고 있는 신라 왕릉 가운데 가장 큰 고분을 발굴해 신라 문화가 더 우수함을 보여주라고 지시했고, 그 결과 경주의 천마총과 황남대총이 발굴됐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는 신라 월성의 전면 조사와 복원이 추진됐다가 다행히 여러 이유로 지연됐다. 문재인 대통령 시기에는 가야 고고학과 역사에 대한 집중 지원이 그동안 부진했던 연구를 진작시키는데 일부 기여했지만, 졸속 추진과 전시 행정의 부작용도 발생했다.

고고학과 역사학 등의 학문은 정치적 어젠다와는 거리가 멀수록 바람직하며 우리 역사나 문화유산에 관심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적극적으로 지원하되, 연구 주제와 내용,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간섭하지 않는 기본자세가 필요하다.

/박양진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구미, 주민안전 무시한 보행자 보도정비공사 논란
  2. "아산페이 안 쓰면 손해"-연말까지 18% 할인 연장, 법인 10% 연장 할인
  3. 아산소방서, 전통사찰 화재 예방훈련
  4. 천안시, 청소년유해환경 개선 합동점검·단속 및 캠페인
  5. 삼성디스플레이, 취약가정에 1억5천만원 후원
  1. 아산시 음봉어울림도서관, '시선 너머의 이야기' 전시
  2. [대입+] 종로학원 2026 수능 가채점 정시 분석… 서연고 경영 280점대, 의대는 290점 안팎
  3. 천안법원, 음주 측정 거부한 50대에 '징역형'
  4. 천안법원, 지인 간 법적소송에서 위증한 혐의 50대 남성 무죄
  5. 천안시 서북구, 동절기 제설작업 대비 안전교육 나서

헤드라인 뉴스


서연고 경영 280점대… 수도권 의대 285, 비수도권 275점

서연고 경영 280점대… 수도권 의대 285, 비수도권 275점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가채점 결과를 토대로 한 정시 합격선 예측에서 서울 주요 대학의 경영·의학계열 합격선이 280~290점대에서 형성될 것으로 분석됐다. 올해는 문과 지원확대와 의대 정원 원복, 탐구영역 선택 변화 등으로 인해 정시 지원전략에서 문·이과 모두 경쟁 양상이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14일 종로학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어·수학·탐구(2) 원점수 합 기준으로 서울대 경영대학 합격선이 284점, 연세대·고려대 경영이 280점, 성균관대 글로벌경영이 279점, 서강대 경영학부 268점, 한양대 정책학과..

캡틴 손흥민과 조규성의 합작…한국 대표팀 볼리비아에 2-0 승리
캡틴 손흥민과 조규성의 합작…한국 대표팀 볼리비아에 2-0 승리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캡틴' 손흥민과 조규성의 활약에 힘입어 볼리비아와의 평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14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볼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2-0으로 승리했다. 홍명보 감독은 4-2-3-1 포메이션을 꺼내 들었다. 9월과 10월 A매치에서는 스리백을 시험했지만, 이날은 포백을 통해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했다. 손흥민을 원톱에 세운 뒤 2선에 황희찬과 이재성, 이강인을 배치해 공격 라인을 꾸렸다. 중원조합은 김진규와 원두재를 내보냈고, 포백라인은 이명재, 김태현, 김민재, 김..

대흥동의 `애물단지` 메가시티 건물…인공지능 산업으로 부활하나
대흥동의 '애물단지' 메가시티 건물…인공지능 산업으로 부활하나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설립을 앞둔 대전 중구 대흥동의 애물단지인 메가시티 건물이 기피시설이란 우려를 해소하고 새롭게 변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치권에서는 정부 부처 간 협력을 통해 미래 첨단 산업 및 도시재생과의 연계를 시도하는 모습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용갑 의원(대전 중구)은 국회의원회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 관계자를 만나 대전 중구 대흥동에 인공지능 산업 인프라를 조성하기 위한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요청했다고 14일 밝혔다. 대전 중구 대흥동에 위치한 메가시티 건물은 2008년 건설사의 부도로 공사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3~4학년부 4강전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3~4학년부 4강전

  •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5~6학년부 예선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5~6학년부 예선

  • ‘수능 끝, 해방이다’ ‘수능 끝, 해방이다’

  •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작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