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도시공간의 공공성 회복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도시공간의 공공성 회복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 승인 2022-11-07 08:41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믿기지 않는 참사가 다시 일어났다. 어떻게 이 시대에 선진국 문턱을 넘었다는 대한민국에서 그야말로 후진국형 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지 모든 국민이 망연자실한 상태다. 나라가 애도 기간으로 정해 국가적인 슬픔임을 인식하고 있으며, 지하철역 출구에 쌓이는 국화 송이와 손편지 글을 보며 고인을 애도하고 가족을 위로하는 애틋한 모습을 먹먹한 심정으로 바라보게 된다. 또다시 큰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야 하는 멍에와 함께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살펴서 고쳐야 하는 숙제도 남겼다.

관리와 예방이 부족했던 시스템을 지적하고 책임자 처벌로 호들갑이 예상되지만, 다른 한편으론 참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공간적 환경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건축법이 규정하는 최소 도로 폭은 4m지만 참사가 난 도로는 불법으로 설치된 구조물에 의해 실제는 3.2m라고 언론이 보고하고 있다. 원래 건축을 위해서는 도로경계선 외에도 일정 정도 띄어 지어야 하는 건축한계선 규정이 존재한다. 건축법은 '대지 안의 공지'라는 이름으로 쾌적한 거주환경 조성을 위한 채광, 통풍, 피난, 소화 활동을 위한 공간 확보를 규정하고 있다. 특히 대형건축물이나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건축물의 경우에는 통행이나 위급 시 피난 및 소화에 필요한 통로로서 대지 안의 공지가 필요하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참사가 난 골목은 폭 6m 세계음식거리 인파를 지하철이 있는 너비 30m 이태원로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만큼 넓혔어야 마땅한데도 수십 년을 그대로 방치돼온 것이다. 인접 호텔은 해당 법규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건축됐다는 이유로 이격거리 규정도 적용받지 않고 오히려 별도의 구조물을 거리로 돌출시킨 채 행정조치에 따른 과태료만 물며 영업을 계속해온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지역 도시계획도면을 열람해보면 호텔을 관통해 두 거리를 연결하는 8m 도로가 예정돼 있다. 즉, 문제를 파악해 대책을 마련해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집행을 못 하는 실정이다. 아마도 호텔철거와 토지보상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는 듯하다. 결국 이러한 물리적 상황이 이번 참사를 막지 못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공공공간으로서 도로의 공공성과 사유재산으로서 이기적 욕심이 충돌하는 영역인 것이다.

2000년부터 시행된 지구단위계획은 도시공간의 공공성을 강화할 목적으로 도입됐다. 토지이용을 합리화하고 기능을 증진하며 경관과 미관을 개선하고 양호한 환경을 확보해 해당 구역을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개발·관리하기 위함이라고 취지를 밝히고 있다. 지구단위계획 적용과 관련해 흔히 충돌하는 대목은 사유재산으로서의 토지이용을 공공이 제한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내 땅인데도 불구하고 도로변 일정 구간에는 건축물을 지을 수 없이 공익을 위해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토지 소유주가 교묘하게 규정을 위반하는 사례들을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해당 구간에 나무데크를 깔아 카페나 식당의 영업공간으로 사용하거나, 별도의 구조물을 설치하는 행위 등이다. 이러면 보행의 흐름을 가로막아 통행의 불편을 끼치거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게다가 간판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공공시설인 가로수를 훼손하는 행위도 종종 목격하게 된다. 당연히 처벌이 따르는 범법행위인데도 불구하고 버젓이 일어나고 있으며 지자체장은 혹여 선거에 영향이 있을까 봐 소극적으로 대응하다 보니 이 상황에 이른 것이다.



청주시 중앙동에는 번창했던 거리가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가 핫플레이스로 거듭난 '소나무길'이 있다. 가로정비사업에 초기 상가 주인들은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로 가로수 설치를 반대했다. 나무가 없이 정비된 거리는 여름철 뜨거운 햇볕을 가릴 수 없었고 건물과 간판만 즐비한 상가는 손님의 발길을 끌 수 없었다. 다시 소나무를 심어 분위기를 바꾸고 가게 앞 주차를 포기하여 차 없는 보행자 거리로 만듦에 따라 사람이 모이고 주변 거리로까지 활력을 전달하는 성공을 끌어냈다. 얼핏 각자의 이득을 제한하는 것이 손해일 것 같지만, 여럿을 먼저 배려함으로써 모두와 내 이익까지 배가되는 것이 도시공간이 바람직하게 작동하는 근본이다. 도시공간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보존할 때만이 모두가 편리하고 안전하며 즐거운 생활이 보장된다.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지역 9개 대학 한자리에… 대전 유학생한마음대회 개최
  2. "준비 안된 채 신입생만 받아"… 충남대 반도체 공동 연구소 건립 지연에 학생들 불편
  3. [편집국에서]배제의 공간과 텅빈 객석으로 포위된 세월호
  4. '복지부 이관' 국립대병원 일제히 반발…"역할부터 예산·인력충원 無계획"
  5. "광역교통망 수도권 빨대 효과 경계…지역주도 시급"
  1. '수도권 대신 지방의료를 수술 대상으로' 국립대병원 복지부 이관 '우려'
  2. ‘수험생 여러분의 꿈을 응원합니다’
  3. 태권도 무덕관 창립 80주년 기념식
  4. [건강]대전충남 암 사망자 3위 '대장암' 침묵의 발병 예방하려면…
  5. 설동호 대전교육감 "수험생 모두 최선의 환경에서 실력 발휘하도록"

헤드라인 뉴스


조선선박 600년만에 뭍으로… ‘태안 마도4호선’ 인양 완료

조선선박 600년만에 뭍으로… ‘태안 마도4호선’ 인양 완료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현존 유일의 조선시대 선박이 '마도4호선'이 600여 년 만에 수면 위로 올라왔다. 국가유산청 국립해양유산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지난 4월부터 태안 마도 해역에 마도4호선의 선체 인양 작업을 진행해 지난달 완료했다고 10일 밝혔다. 마도4호선은 10년 전인 2015년 처음 발견됐으나 보존 처리를 위해 다시 바닷속에 매몰했다가 10년 만에 인양됐다. 연구소에 따르면, 이 선박은 15세기 초에 제작된 조운선(세곡 운반선)으로, 전라도 나주에서 세곡과 공물을 싣고 한양 광흥창으로 향하던 중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불꽃축제, 대전 하늘에 수놓는다"...30일 밤 빛의 향연
"불꽃축제, 대전 하늘에 수놓는다"...30일 밤 빛의 향연

이장우 대전시장은 10일 주재한 주간업무회의에서 한화 불꽃축제 개최의 안전대책과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 확대, 예산 효율화 등을 지시했다. 이 시장은 대전시 한화 불꽃축제 개최와 관련해 "축제 방문자 예측을 보다 넉넉히 잡아 대비해야 한다"며 "예측보다 더 많은 방문객이 몰리면 안전과 교통에 있어 대책을 담보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화구단은 30일 한화이글스 창단 40주년과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기념해 대전 엑스포과학공원 및 엑스포다리 일원에서 불꽃축제를 개최한다. 불꽃놀이와 드론쇼 등 대규모 불꽃 향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이 시장은..

[대전 유학생한마음 대회] "코리안 드림을 향해…웅크린 몸과 마음이 활짝"
[대전 유학생한마음 대회] "코리안 드림을 향해…웅크린 몸과 마음이 활짝"

8일 대전시사회서비스원이 주최한 2025년 제9회 대전 유학생 한마음 대회를 방문했다. 대전 서구 KT인재개발원 실내체육관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마주한 건 엄청난 활기였다. 제기차기, 딱지치기, 투호 등의 한국 전통 놀이를 850명 가까운 유학생들이 모여 열중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와 아쉬움의 탄성, 그리고 땀과 흥분으로 데워진 공기에 늦가을의 추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후끈 달아오른 공기는 식을 틈이 없었다. 이어진 단체 경기, 그중에서도 장애물 이어달리기는 말 그대로 국제 올림픽의 현장이었다. 호루라기가 울리..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문답지 전국 배부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문답지 전국 배부

  • ‘보행자 우선! 함께하는 교통문화 만들어요’ ‘보행자 우선! 함께하는 교통문화 만들어요’

  • ‘수험생 여러분의 꿈을 응원합니다’ ‘수험생 여러분의 꿈을 응원합니다’

  • ‘황톳길 밟으며 가을을 걷다’…2025 계족산 황톳길 걷기대회 성료 ‘황톳길 밟으며 가을을 걷다’…2025 계족산 황톳길 걷기대회 성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