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형사공탁의 특례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형사공탁의 특례

고춘순 청주지방법원 판사

  • 승인 2022-11-21 08:30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고춘순판사
고춘순 판사
공탁법의 개정으로 새로 도입된 '형사공탁의 특례'가 2022년 12월 9일부터 시행된다. 일견 공탁제도를 방법적인 측면에서 개선한 것에 불과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곱씹어 볼 만한 곡절과 의미가 적지 않다.

원래 형사사건에서도 피해배상금의 공탁은 민사사건의 변제공탁(채권자가 변제의 수령을 거절하는 경우)의 방법으로 어렵지 않게 해왔던 것이다. 범죄로 인해 정신적 피해가 큰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한 엄벌만을 탄원하면서 피해배상금을 공탁받는 것까지 반대하는 경우에도 법원은 피해배상의 긍정적 측면에 무게를 두고 공탁을 허용했었다.

그러한 공탁을 하려면 공탁신청서에 채권자(피해자)의 주민등록초본을 첨부해야 했는데, 그것을 스스로 발급받을 수 없는 채무자(피고인)는 법원에서 '피공탁자의 주민등록초본을 제출하라'는 보정명령을 받아 동사무소에 제출함으로써 발급받을 수 있었고, 법원은 형사공탁의 경우에도 피해자의 의사를 묻지 않고 그러한 보정명령을 해줬었다.

즉, 피고인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형사공탁을 할 수 있었고, 피해자는 법원에 '공탁금 수령 거절서'를 제출하면서 공탁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하지 말아 달라고 탄원하는 예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형사공탁 절차에서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피고인에게 노출되는 것에 대한 항의와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면서 법원은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해 피해자가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위의 보정명령을 해 주지 않게 됐고, 피고인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형사공탁을 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봉쇄되고 말았다.

그렇게 되자 법원의 선처가 간절했던 일부 피고인들이 피해자의 소재를 찾아 쫓아다니면서 형사합의를 종용하는 등 일면 피해회복의 노력이 그 선을 넘는 경우가 생겨났고, 정신적 피해가 커 피고인을 대면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피해자들에게 새로운 위협이자 2차 피해가 우려되는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이번에 시행되는 형사공탁의 특례는 공탁신청서에 피공탁자를 개인정보가 아닌 형사사건의 사건번호 등으로 특정할 수 있는 방법을 도입한 것으로, 기본적으로는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도 피고인에게 피해회복의 길을 마련한 것에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간의 곡절을 비추어 보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형사공탁이 또다시 가능해지고 피해자에게 무리하게 합의를 종용할 위험성도 낮아졌다는 점 또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의 말과 태도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여 어려운 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니 올바른 언행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는 형사사건의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에서도 어느 정도는 타당한 이치인데, 법원의 양형기준에 다수의 범죄에 관하여 '형사합의' 뿐만 아니라 비록 형사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더라도 '피해회복 및 합의를 위한 진지한 노력'이 형의 감경인자로 제시돼 있는 것이 그 한 예다.

형사공탁과 관련해서도 새로이 시행되는 형사공탁 특례가 '진지한 반성과 사죄도 없이' 피고인의 선처만을 바라는 제도로 악용되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나, 법원의 양형기준에 피해배상금을 공탁하기에 앞서 '피해회복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다했는지 여부'를 고려하라는 취지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법원은 마땅히 피고인이 일방적인 공탁을 하기에 앞서 피해회복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를 살피고 그 정상을 구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피해회복의 노력에 형을 감경받을 의도가 깔려 있는 형사사건, 특히 피고인과 피해자의 갈등이 심각한 사건,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나 피고인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경우 등에 있어서는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칫 피고인으로 하여금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이라는 미명 아래 피해자를 찾아다니며 합의를 종용하는 것을 은연중에 조장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형사사건에서 피해자와의 합의나 피해회복을 위한 진지한 노력 및 그에 이은 상당한 피해배상금의 공탁 등이 대체로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인 것은 분명하지만, 어디까지나 피해자의 안위를 해치지 않는 선(線)을 결코 넘지 말아야 하는 것이며, 이를 가늠하고 선도하는 것은 법원의 중요한 책무다.

법원은 새로이 시행되는 형사공탁의 특례가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에 대한 형을 양정하고 피해자를 보호함에 있어 어떠한 무거운 짐을 지운 것인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고춘순 청주지방법원 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시 공무원 숨진 채 발견..."건물서 추락 추정"
  2. '중수청·공소청·경찰청·통일부·외교부'도 세종행 초읽기
  3. 세종 장기초 특별한 요가 행사… "더욱 가까워졌어요'
  4. 지거국 경쟁률·합격선 동반 상승…'빅3 선도대학' 충남대, 2027 대입 변수 되나
  5. 안면도부터 제천까지… 개청 전부터 대전중수청 ‘수사범위 딜레마’
  1. “대전 안전재난문자, ‘주의하세요’ 넘어 구체적 정보 담아야”
  2. [2026 기초기본캠페인] “읽는 힘이 학습의 출발”…대전교육청, 초등 문해력 지원 촘촘히
  3. 충남대, BK21 대학원혁신평가 최상위권…연차평가 상승세
  4. 목원대 이희학 총장 취임…‘72년 전통에 AI 더한’ 비전 2030 제시
  5. [2027 수시로 간다-대학의 색, 미래의 선택] 한남대 ‘전통’ 넘어 첨단산업·글로벌 대학으로

헤드라인 뉴스


2차 공공기관 이전안 4분기 윤곽… 세종 유치 가능성은?

2차 공공기관 이전안 4분기 윤곽… 세종 유치 가능성은?

정부가 2027년 공공기관 2차 이전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세종시도 행정수도 기능 강화를 뒷받침할 공공기관 이전 대상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올 4분기 내 발표가 예고된 공공기관 이전은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이뤄질 전망이지만, 43개 중앙행정기관과 16개 국책연구기관을 품고 있는 세종으로선 이전 연계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시는 현재 입주한 공공기관 26곳에 더해 기관 간 집적화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유치 전략을 검토하며 실무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어떤 기관들이 세종에 추가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3일 세..

전세 밀어내는 월세… 충청권 아파트도 ‘월세화’ 가속
전세 밀어내는 월세… 충청권 아파트도 ‘월세화’ 가속

주택 임대차 시장의 '전세의 월세화'가 수도권을 넘어 충청권을 비롯한 지방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원룸이나 빌라 등 비아파트에서 주로 나타났던 월세 중심의 임대차 구조가 아파트까지 확산하는 모습이다. 충청권에서는 대전과 충남·북의 아파트 월세 거래가 이미 전세를 넘어섰다. 전세 물량이 줄어드는 가운데 대출 규제와 금리 부담까지 겹치면서 목돈이 필요한 전세 대신 월세나 반전세를 선택하는 수요가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3일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아파트 전월세 거래 114만 7423건 중 월세는 53만9028건으로 4..

`중수청·공소청·경찰청·통일부·외교부`도 세종행 초읽기
'중수청·공소청·경찰청·통일부·외교부'도 세종행 초읽기

법무부와 성평등가족부의 세종시 우선 이전에 이어 통일부와 외교부도 2029년과 2033년 세종 대통령실·국회의사당 완공 시점 사이에 추가 이전 대상에 오른다. 행정안전부 소속 중대범죄수사청(6대 범죄)과 경찰청, 법무부 소속 공소청(공소·영장 청구) 역시 행정수도 완성 취지에 따라 세종시에서 신청사를 연다. 앞서 언급한 '법무부·성평등부' 아전 관련 기사는 본보의 해당 기사 링크()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3일 오전 11시 정부서울청사에서 행정·공공기관 이전 및 공공기관 기능개혁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운동하기 딱 좋은 날씨네’ ‘운동하기 딱 좋은 날씨네’

  • ‘자전거 안전하게 탑시다’ ‘자전거 안전하게 탑시다’

  • 추석 앞두고 벌초 한창인 국립대전현충원 추석 앞두고 벌초 한창인 국립대전현충원

  • 수능 전 마지막 모의평가…집중하는 수험생들 수능 전 마지막 모의평가…집중하는 수험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