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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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비나리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 승인 2023-01-02 08:35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송복섭 교수
새해다! 시간의 연속성에는 한계가 없음에도 굳이 기간을 정해 이름을 붙이는 일은 그렇게 해야만 시간의 실체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고 일주일은 7일로 구분하며 일 년을 24절기로 나누어 정한 것도 다 그런 연유다. 오히려 '시간은 연속하지 않으며 세상은 사물이 아닌 사건의 총체'라고 이론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는 주장한다. 시간이라는 막연한 개념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체험하는 삶과 사건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해석되는 대목이다. 새해란 곧 새로운 사건들의 시작이고 새로운 시작은 그 전해에 있었던 사건들에 대한 평가와 반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요즘은 쓰지 않는 말이지만 한동안 연말모임을 망년회(忘年會)라고 불렀다. 송년회(送年會)가 그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나누기 위해 모이는 모임이라면, 송년회로 순화되기 전 망년회는 일본식 한자어 표현이라는 유래와 함께 온갖 괴로움을 잊자는 뜻으로 베푸는 모임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얼마나 괴롭고 힘든 일이 많았으면 잊고자 하는 마음에 그리 불렀을까마는 그만큼 통절한 반성을 대변하는 표현도 없을성싶다.

지난 한 해는 우리에게 어떤 시간이었을까? 교수신문은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과이불개(過而不改)를 꼽았다. "진영 간 이념 갈등이 고조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패배자가 될 것 같은 강박에 사로잡혀 일단 우기고 보는 풍조가 만연하다"고도 했고, "여당이나 야당 할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는 더 잘못했다' 또는 '대통령 탓'이라고 말하고 고칠 생각은 없다"고도 했다. 그야말로 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음에도 이를 통해 배우고 반성해 다시는 그런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함에도 덮어버리고 잊으려만 하거나 남을 탓하는 일에 몰두하지 않았나 되돌아본다.

'귀가 순해진다'는 예순의 나이에 다가감에 따라 세상의 악다구니가 다 부질없다는 생각과 함께 그런 상황에 놓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싸움의 근원에는 욕심과 아집이 자리하고 남을 인정하거나 얘기는 들어주지 않으려는 편협한 마음이 똬리를 틀고 있다고 진단해본다. 언쟁으로 시작된 싸움은 주먹다짐과 전쟁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싸움이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이어지지 않는 데에 문제가 있다. 양측에 심각한 손해를 끼치거나 대를 이어 복수로 이어지는 일도 역사를 통해 깨닫는 대목이다.

싸움에는 전염성도 있다. '어린애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는 속담이 있듯이 대수롭지 않던 일도 차츰 큰일로 번지고 싸움판이 벌어지면 어느새 방관자가 참여자로 변하는 일도 생긴다. 세계대전도 처음에는 작은 사건들로부터 시작됐다. 싸움은 그 과정 중 양측이 큰 피해를 직면하면서부터 그만두기를 찾아 나서게 된다. 현명함은 애초에 싸움의 불씨를 만들지 않거나 작은 갈등을 찾아내어 빨리 진화하는 데에 있다.

지난해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끊임없이 반목하고 상대만을 변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며 말리는 이는 없고 오히려 싸움을 부추기는 언사들이 난무했다. 새로이 등장한 언론의 총아 유튜브는 증오를 재생산해 이를 돈 버는 사업수단으로 활용되는 도구가 됐다. 점잖게 나무라는 어른들은 보이지 않고 영혼의 안식을 담당하던 종교지도자들은 싸움판을 이끄는 선봉에 서기도 했다. 충혈된 눈으로 미움의 말을 쏟아내던 사람들은 무리를 이뤄 흡사 좀비 군단처럼 증오의 전염병을 퍼뜨리고 다녔다. 약자임을 가장한 일군의 노동자들은 합법을 가장한 교묘한 불법으로 떳떳하게 횡포를 부리고 다녔다.

새해에 새로운 소망을 빌어본다. 수도사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처럼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기를' 간절히 빈다. 정치인들은 싸우기보다 해결책을 찾는 데 열중하고 언론은 싸움을 부추겨 이득을 챙기기보다 감동을 주는 기사로 평화의 물결이 퍼지도록 소식을 나르며 사회는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는 일로 바빴으면 좋겠다. 싸움이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듯이 평화는 절대 약자의 언어가 아니다. 이리하여 새해 새 아침에 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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