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 왕실 언간 혹은 영화 '올빼미'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내일] 왕실 언간 혹은 영화 '올빼미'

백낙천 배재대 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 교수

  • 승인 2023-01-29 09:15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백낙천 배재대 인문사회학장
백낙천 교수
15세기에 한글의 창제가 왕의 주도로 이루어지면서 한글은 왕실을 중심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가령, 한글 창제 이후 첫 번째 한글 문헌인 <용비어천가>를 시작으로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 등이 간행되었으며, 뒤이어 불전 언해와 경서 언해의 편찬이 이루어지면서 한글의 사용 영역은 점차 확대되었다. 이후 행실도류를 비롯한 교화서 언해본의 간행이 더해지면서 한글은 서서히 문자 생활의 전면에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16세기 후반부터는 한글 사용의 범위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여 조선 후기에는 한자가 차지했던 공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한글이 사용되면서 그 위상이 높아지게 되었다. 물론 조선 시대 사대부 남성들의 문자 생활이나 그들의 공적인 영역에서는 한자와 한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그러면서 한문은 절대적인 문자 권력으로 자리하게 되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글은 창제 직후부터 조선 후기까지 왕실 여성과 사대부 집안의 여성들에 의해 그 명맥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그 사용 대상이 급기야 평민에까지 이르게 되면서 한글의 실용과 보급이 단계적으로 확대되었다.

이 중에서 왕실 여성들의 글쓰기는 한글을 통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한글이 반포된 이후 한글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계층이었다. 특히, 이들은 언문 교서나 한글 편지 곧 언간을 통해 한글의 실용과 보급을 확대해 나갔다. 즉, 언문 교서가 왕실 여성의 정치적, 사회적 의사 전달의 도구로써 주로 공적인 영역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한글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으며, 언간은 왕실 여성에서 사대부가 여성에 이르기까지 조선 시대 여성들의 사적 영역의 문자 생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였다는 점에서 그 확장성 확인할 수 있다.



얼마 전 영화 '올빼미'가 상영되었다. 영화의 상업적 흥행과는 별개로 소현세자의 죽음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에 영화적 추리·상상력을 더한 팩션이었기에 대중의 몰입감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이에 나는 대중적 화제성이라는 세간의 이목을 잠시 뒤로 하고 관련 실록과 필사 자료인 언간을 찾아 읽고 파란만장했던 17세기를 상상하였다.

광해군의 정통성을 둘러싼 소북파와 대북파 간 당쟁의 소용돌이와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의 아들인 영창대군의 비참한 죽음, 그리고 1623년 인조반정과 뒤이은 치욕의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으로 조선은 엄청난 파국으로 빠져들게 되었고, 결국 인조의 두 아들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오랜 세월 볼모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인조의 맏아들인 소현세자가 볼모로 청나라 선양에 머물다가 돌아오면서 천주교 교리서와 서구 과학 문명에 대한 지식과 문물을 가지고 오자 당시 조정은 서인을 중심으로 한 반(反)청의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지라 소현세자의 정치적 입지는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1645년에 소현세자가 급사하였는데, 영화 '올빼미'는 이 지점에 주목한 것이다.

나는 영화 '올빼미'가 준 영화적 반전과 화제성에 몰입하다가 문득 서가에서 <숙명신한첩>과 <숙휘신한첩>을 다시 찾아 읽었다. 인조의 둘째 아들인 효종은 인선왕후 사이에서 6명의 공주를 낳았는데, 이 중에서 숙명공주와 숙휘공주가 왕실 가족들에게 받은 언간을 모아 성첩(成帖)한 것이 각각 <숙명신한첩>과 <숙휘신한첩>이다. 이 언간 자료에는 인선왕후가 1630년에 봉림대군의 부인으로 간택되고 효종이 봉림대군 시절에 청나라에 볼모로 가서 숙명공주와 숙휘공주를 낳다 보니 두 공주에 대한 각별한 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언간을 통해 당시 왕실 여성들의 삶과 애환 및 그 시대의 맥락을 짚어나갈 수 있었던 시간을 누린 것은 영화 '올빼미'가 나에게 준 또 다른 선물임에 분명했다.

/백낙천 배재대 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건강]설명절 허리·다리 통증의 숨은 원인은?
  2. 줄지은 대전·충남 행정통합 반대 근조화환
  3. 대전 공유재산 임대료 경감, 올해도 이뤄지나... 60% 한도 2000만원서 3000만원 상향 검토
  4. 대전·충남통합 주민투표 놓고 여야 갈등 심화
  5. 이주 작업 한창 장대B구역 '빛이 머무는 순간' 헤리티지 북 발간
  1. 대전·충남 통합 변수...충청광역연합 미래는
  2. 충청권 상장기업, 시총 211조 원 돌파 쾌거
  3. 규모만 25조 원…대전·충남 통합 지자체 금고 경쟁구도 주목
  4. '왼손엔 준설 오른손에 보전' 갑천·미호강, 정비와 환경 균형은?
  5. 전남 나주서 ASF 발생, 방역 당국 긴급 대응

헤드라인 뉴스


대전시, 행정통합 주민투표 행안부에 요청

대전시, 행정통합 주민투표 행안부에 요청

대전시가 11일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에 대한 '주민투표'를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만든 행정통합 특별법안에서 기존 대전시와 충남도가 논의해 국민의힘이 발의한 법안에 담긴 정부 권한·재정 이양이 대폭 사라지면서 행정통합의 실효성에 의구심이 든다며 시민의 의견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지방분권의 본질이 사라지고 정치 도구와 선거 전략으로 변질해 행정통합이 충분한 숙의 과정 없이 추진되고 있다"며 "번갯불에 콩 볶듯 진행하는 입법을 즉각 중단하고, (행정안전부는) 주민..

대전 재건축 바람 부나…  곳곳에서 사업 추진 본격화
대전 재건축 바람 부나… 곳곳에서 사업 추진 본격화

대전 노후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재건축 바람이 불고 있다.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받으며 본격적인 추진 단계에 들어선 단지가 있는가 하면, 조합설립을 준비하는 대단지 아파트도 잇따르면서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1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법동2구역 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6일 재건축사업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받았다. 해당 사업은 대전 대덕구 법동 281번지 일원, 면적 2만 7325.5㎡ 규모에 공동주택과 부대복리시설을 조성한다. 이 사업은 기존 삼정하이츠타운 아파트 총 13동 468세대를 허물고, 총 6개 동 615세대를 짓는다. 사업장..

걷고 뛰는 명품 `동서 트레일`, 2026년 512km 완성
걷고 뛰는 명품 '동서 트레일', 2026년 512km 완성

걷고 뛸 수 있는 트레일(자연 탐방로)이 2026년 동서 구간으로 512km까지 확대·제공된다. 산림청(청장 김인호)과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이사장 서경덕)는 동서 트레일의 성공적인 안착과 체계적인 운영 관리를 위한 2026년 시범사업을 본격적으로 가동한다. 올해 사업 대상은 지난해 17개 구간(244km)에서 약 2배 이상 확대된 32개 구간에 걸친 총 512km. 신규 코스에는 충남 태안(2구간)과 서산(5구간), 홍성(10구간), 경북 봉화(47구간) 및 분천(51구간) 등이 포함됐다. 각 구간에 거점 안내소도 설치한다. 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한 주민투표 시행 촉구 결의안 전달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한 주민투표 시행 촉구 결의안 전달

  • ‘어려운 이웃을 위한 떡국 떡 나눠요’ ‘어려운 이웃을 위한 떡국 떡 나눠요’

  • 줄지은 대전·충남 행정통합 반대 근조화환 줄지은 대전·충남 행정통합 반대 근조화환

  • 대전·충남통합 주민투표 놓고 여야 갈등 심화 대전·충남통합 주민투표 놓고 여야 갈등 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