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 어린이날 늑대 이야기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속으로] 어린이날 늑대 이야기

이성만 배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5-01 13:03
  • 신문게재 2023-05-02 18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이성만 교수
어린이날은 1954년 9월 UN이 제정한 이후 145개국 이상에서 기념하고 있지만 정해진 날짜는 없다. 우리의 어린이날은 5월 5일이지만, 튀르키에는 4월 23일, 중국이나 구소련 국가는 6월 1일이다. 독일은 구동독의 6월 1일과 구서독의 9월 20일을 통일 이후에도 기념한다. 미국과 여타 국가들은 어린이날의 역사를 따라 11월 20일을 어린이 권리의 날로 선언했다.

우리 모두는 어린이였기에 어린이날을 누렸다. 동요를 부르고 동화를 읽으며 꿈과 상상력을 키웠다.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동서양의 민담이나 동화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나쁜' 늑대 이야기다. 지금이야 대세가 '아기상어'이지만 옛날에는 '늑대인간'이었다. '울음 뚝! 늑대 온다!'가 일상사였다. 왜 우리와 친숙한 '개'가 아닌 위협적인 늑대였을까?

늑대는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서식했던, 인간의 가축을 넘어 인간까지도 공격하는 위험한 존재였다. 그러니 곳곳의 신화나 민담에 변신한 늑대인간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늑대인간은 고대부터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변신한 포식자의 최초 모티브는 길가메시 서사시라고 한다. 길가메시를 흠모했던 여신 이슈타르가 애정을 표시한다. 길가메시는 이슈타르가 옛 연인이던 목동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늑대로 변신시켰음을 알고는 거절했다. 이슈타르는 극도로 분노했지만, 반신(半神)인 길가메시를 함부로 죽일 수 없어 아버지인 아누 신에게 부탁하여 하늘의 황소를 지상에 풀어놓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인 리카온 전설에도 늑대인간이 등장한다. 펠라스고스의 아들 리카온은 제우스에게 희생된 소년의 유골을 제물로 바치는 바람에, 격노한 제우스는 리카온과 그의 아들을 늑대로 만들어버린다.

늑대인간을 향한 인간의 애정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노벨상을 수상한 키플링의 '정글북'(1985)의 모글리, 영화 '런던의 늑대 인간'(1981), '울프'(1994)의 잭 니콜슨, 아니면 최근의 '놈은 우리 안에 있다'(2021)가 떠오른다. 해리포터의 팬이라면 Fenrir Greyback이 떠오르겠다. 그는 어린 시절 해리의 스승이자 아버지의 친구인 리머스 루핀을 물어 늑대 인간으로 변신시켰다. 그런데 루핀은 숨어 있다가 보름달이 뜨면 고귀한 목적을 위해서만 자기 힘을 쓰는 '좋은' 늑대인간이다.



이야기 속의 이런 늑대가 인간의 자연 정복으로 멸종되었다가 근래에 다시 유럽 등지에서 출몰한다고 한다. 늑대는 양과 염소를 기르는 농부에게는 동화 속과는 달리 달갑잖은 손님일 수 있다. 하지만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자연의 이치다. 멧돼지가 이따금 우리의 논밭을 엉망으로 만드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듯, 늑대가 숲속을 벗어나 우리가 바라지도 않은 짓을 하는 것에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늑대가 사랑하는 고양이나 가축을 죽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당장 온 나라에 살포명령을 내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야생 맹수들은 아프리카의 대초원뿐 아니라 아시아와 북미 지역에서도 인간의 생활공간을 공유한다. 많은 관광객들이 캐나다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는 야생에서 늑대를 관찰할 수 있어서다. 거기서도 겁쟁이 야생 동물은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 발 달린 사냥꾼이 위협적인 존재다.

인간은 부단히 자연을 정복하고 문명화했다. '경작'되지 않은 땅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이는 인간이 경제적인 용도로 들, 숲, 초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또한 인간에게 부적합하고 돈벌이가 안 되는 것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종(種)의 다양성도 온전한 환경에서 그 자체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 오월은 푸르고 아이들은 자란다. 5월만큼은 아이들과 '늑대'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과 식물과 동물이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21세기형 늑대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키우는 시간이면 좋겠다.
이성만 배재대 명예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무죄판결 파기환송…유죄 취지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무죄판결 파기환송…유죄 취지

대법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이에 따라 이 후보는 서울고법에서 다시 재판받아야 한다. 서울고법은 대법원의 판단 취지에 기속되므로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5월 1일 이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지난 3월 28일 사건을 접수한 뒤 국민의 관심이 지대하고 유력 대권 주자인 이 후보의 피선거권 여부가 달려있다는 점을..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세계노동절 대전대회 세계노동절 대전대회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