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 그날의 기억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속으로] 그날의 기억

이성만 배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6-12 09:56
  • 신문게재 2023-06-13 18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이성만 교수
근래에 접한 충격적인 사건이라면? 하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이 아닐까. 이들 발생의 원인이 하나는 인위적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적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처참한 결과는 닮았다. 우리는 끔찍한 참상에 적잖은 충격을 받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무감각해지는 방관자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6.25 같은 전쟁을 상기하면 누구나 현재의 자신은 안전 하지만 그 어떤 부담은 갖게 마련이다. 우리에게 이런 심적 변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민 피로(Compassion fatigue)'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심리학자 찰스 피글리가 정리한 개념으로, 타인의 과도한 고통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란 뜻이다. 그에 기대면, 연민이나 공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시들어버리기도 하지만 다시 활성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접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피로를 느꼈을 테다. 처음 접한 잔학 뉴스라면 누구나 충격적이겠지만, 이후 또 다른 참상 이미지를 본다면 처음과 같은 극단적인 반응은 보이지는 않을 게다.



물론 연민 피로가 지속적이면 곤란하다.

"연민은 불안정한 감정이다.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들어버릴 것이다."



수전 손택이 <타인의 고통>(2003)에서 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둔감해지기도 하는 연민을 다시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한 실험에서 비디오 게임, 영화 등 디지털 미디어의 폭력을 통해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이나 폭력에 어떻게 둔감해 지는가를 밝히려 했다. 대학생 320명에게 20분간 폭력과 비폭력 비디오 게임을 하게 하여, 게임 방 밖에서 조교가 싸움에 휘말려 폭력에 신음하는 연출을 하게 했다. 피실험자들이 위기에 처한 조교 돕기에 걸린 시간은, 비폭력 게임 참가자는 16초, 폭력 게임 참가자는 73초였다. 결과적으로 폭력 이미지에 노출될수록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연민 피로로 이어져 현실 세계에서 피폭력자를 도우려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연민 피로가 사회적으로 더 많은 폭력과 혐오 발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튀르키예와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에 대한 연민 피로와 언론의 부정적 보도가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드러났다. 언론이 난민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와 메시지를 보도하면 독자는 난민에 대한 연민을 잃거나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폭력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새로운 사실은 미디어가 얼마나 빨리 연민 피로를 야기해서 혐오 발언과 인종 차별로 이어지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연민 피로는 역전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소셜 미디어에 기대어 공감을 이끌어 내기도 하는데, 시리아나 우크라이나 난민 위기를 좀 더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경우다. 언론은 난민 위기를 보다 긍정적인 시각에서 기사화하여 비극적인 이야기에 독자의 연민, 곧 "'공포'에 반응하지 않고, '용기' 내기로 결심"하는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또한 언론 기사가 개인이나 정책 입안자들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장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면 독자는 해결 불가한 상황의 수동적 관찰자가 아닌 능동적 실천가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북한은 별난 방식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지진은 예측이 어렵지만 전쟁은 그렇지 않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전쟁에서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언론 보도와 관련 행사를 만나는 달이기도 하다. 멀리는 6.25전쟁, 가까이는 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의 그날을 기억하게 된다. 헝클어지고 왜곡되기도 한 전쟁과 상흔에 대한 무뎌진 공감을 되살리고, 지금도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목숨을 바치는 그분들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성만 배재대 명예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아산시 '곡교천 탕정지구 연계사업' 밑그림 그려졌다"
  2. 롯데백화점 대전점, 성심당 리뉴얼... 백화점 중 최대 규모 베이커리로
  3. [라이즈 현안 점검] 대학 수는 적은데 국비는 수십억 차이…지역대 '빈익빈 부익부' 우려
  4. [행복한 대전교육 프로젝트] 대전변동중, 음악으로 함께 어울리는 행복한 예술교육
  5. {현장취재]김기황 원장, 한국효문화진흥원 2025 동계효문화포럼 개최
  1. "함께 걸어온 1년, 함께 만들어갈 내일"
  2. 농식품부 '농촌재능나눔 대상' 16명 시상
  3. 작은 유치원 함께하니, 배움이 더 커졌어요
  4. 충남경찰, 21대 대선 당시 선거사범 158명 적발… 직전 대선보다 119명↑
  5. 서머나침례교회, 관저종합사회복지관에 연말 맞아 이웃사랑 후원금 전달

헤드라인 뉴스


대법원 세종 이전법 발의했는데, 뒤늦은 대구 이전법 논란

대법원 세종 이전법 발의했는데, 뒤늦은 대구 이전법 논란

대법원을 세종시가 아닌 대구시로 이전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향후 논의 과정이 주목된다. 다만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이 주도한 데다, 11월에 혁신당 대전시당 위원장인 황운하 의원(비례)이 ‘대법원 세종 이전법’을 발의한 터라 논의 과정에 들어가기 전부터 여러 이견으로 대법원 지방 이전 자체가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혁신당 대구시당 위원장인 차규근 의원(비례)은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민주당 권칠승 의원과 함께 대법원을 대구로 이전하고 대법원의 부속기관도 대법원 소재지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내년 출산휴가급여 상한액 220만원으로 오른다
내년 출산휴가급여 상한액 220만원으로 오른다

직장맘에게 지급하는 출산 전후 휴가급여 상한액이 내년부터 월 220만원으로 오른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하한액이 출산휴가급여 상한액을 웃도는 역전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다. 고용노동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출산전후휴가 급여 등 상한액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는 출산 전과 후에 90일의 출산전후휴가를 받을 수 있다. 미숙아 출산은 100일, 쌍둥이는 120일까지 가능하다. 이 기간에 최소 60일(쌍둥이 75일)은 통상임금의 100%를 받는 유급휴가다. 정부는 출산·육아에 따른 소득 감소를 최소..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선사유적지 인근`... 월 총매출 9억 1000만원 상회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선사유적지 인근'... 월 총매출 9억 1000만원 상회

대전 자영업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회식 상권은 '노다지'로 불린다. 직장인을 주요 고객층으로 삼는 만큼 상권에 진입하기 전 대상 고객은 몇 명인지, 인근 업종은 어떨지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한다. 레드오션인 자영업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빅데이터 플랫폼 '소상공인 365'를 통해 대전 주요 회식 상권을 분석했다. 10일 소상공인 365에 따르면 해당 빅데이터가 선정한 대전 회식 상권 중 핫플레이스는 대전 서구 월평동 '선사유적지 인근'이다. 회식 핫플레이스 상권이란 30~5..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 풍성한 연말 공연 풍성한 연말 공연

  • ‘졸업 축하해’ ‘졸업 축하해’

  •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