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가정행복증진법?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가정행복증진법?

고춘순 전주지방법원 부장판사

  • 승인 2023-11-27 08:47
  • 수정 2023-11-27 08:48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고춘순판사
고춘순 부장판사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능력과 성품을 갖춘 리더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진중한 약속들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에도 적잖은 기대감을 가져본다.

나는 2013년과 2014년, 그리고 올해 가사재판을 담당해 파탄에 이른 가정들과 함께 고심한 시간이 어언 3년 가까이 됐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분명 축복받을 일이지만, 한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갈등이 생기는 등 행복을 향한 여정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가정을 이뤄 살아간다는 건 교통사고의 위험을 안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회현상에 견주어 닮은 부분이 있고, 이 억지스러운 비유 속에 생각해볼 만한 부분을 담아 본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동차를 애용하고 있지만, 자동차 운전이 매우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점에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 그래서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자동차를 능숙하게 조작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린 상태로 전방을 주시하면서 신호등과 주변 차량의 상황을 살펴야 하고, 졸거나 술을 마신 상태에서나 난폭하게 운전하지 말아야 하며, 그러한 노력으로도 자동차 운행으로 인한 위험을 모두 방지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자동차 운행을 당연시하는 것은 자동차 운행이 주는 유익함이 막대하고 국가 경제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며, 이를 위해 자동차를 운행으로 인한 위험을 예방하거나 피해배상을 보장하는 여러 제도적 장치가 법률에 따라 마련돼 있다. 즉,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미리 충분한 교육훈련을 받고 시험에 합격하여 면허를 받아야 하고 책임보험에 가입해야 하며 무면허와 음주, 난폭운전 등은 처벌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결혼으로 이룬 가정을 운전하는 일에 잠재된 위험의 다양함이나 난해함은 자동차 운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서로 다른 성격과 욕구로 다른 생활을 해 왔던 남녀가 한집에서 살기 시작하는 힘든 변화를 겪으면서도 신혼 때는 그로 인한 어색함과 불편조차 깨닫지 못한다. 이제 각자의 생활을 정리하여 상대방의 생활과 조화를 이루어내야 하고 상대방의 원가족과 생소하고 어려운 관계도 생겨나며 수입과 지출을 함께 관리하는 경제적 공동체가 되는 등 남편과 아내의 역할도 만만치 않은데, 어느새 새로운 인격과 만나 부모가 된다. 이러한 변화와 새로운 역할은 그 자체로 각자가 결혼 전에 쌓아 온 경험과 상식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렵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하면 자칫 꿈꿔왔던 행복은커녕 부지불식간에 원망과 갈등으로 자라나 결국 파탄에 이를 수도 있기에 대부분의 가정에는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위험이 잠재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 많은 가정이 생겨나고 권장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싹튼 사랑의 결실이고 국가 존립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동차 운전의 경우와는 달리 가정의 운전에 내재된 위험을 예방하거나 그로 인한 불행을 대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안타깝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랑의 감정만으로 별다른 준비 없이 가정을 이루는 것은 아닌지, 혹여 무면허, 음주, 난폭 운전을 하여 파탄으로 달려가지나 않을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가정을 이룸에 있어서도 준비교육을 받도록 하고(일부 사회단체나 종교단체 등에 의한 임의적 교육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위험에 대비한 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마련할 기본적 책무는 가정을 존립의 기반으로 하는 국가에 있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예비부부 역시 남편과 아내로의 변화와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자세와 소양을 가장 중요한 혼수로 준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에 국가는 예비부부들에게 가정형성에 내재된 갈등요인을 예방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며 행복을 키워나갈 수 있는 기본적 자세를 갖추도록 하고, 부부의 대화법, 남편과 아내의 역할, 경제적 공동체 계획 및 운영, 원가족과의 관계 형성, 부모의 역할과 자녀양육 등에 관한 소양을 익히도록 하는 혼전 교육제도를 도입하고, 그럼에도 방지되지 못한 위험을 대비하는 공적인 보험제도 또한 마련해야 한다. 그 보험제도로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해 법원에 과태료나 감치재판까지 신청해야 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양육비보장보험(양육비 추심은 보험공사가 하면 된다) 등을 만들어 한부모 가정의 복지를 보장하면 좋겠다.

이러한 내용을 담아 가정의 행복을 증진할 수 있는 법·제도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국회의원 후보를 기대해 본다. 근래 실패한 사업가와 같이 지난 삶을 후회하는 사람이 과거로 돌아가 같은 삶을 다시 살아가는 구도의 소설들이 적지 않은데, 다시 사는 삶에서 지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는 이유는 실패의 경험에서 깨달은 바가 있고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무사히 행복에 도착한 가정, 책임감으로 버텨낸 가정, 길을 잃거나 전복된 가정 등을 운전한 선배들의 경험과 교훈을 축적한 '가정운전 내비게이션'이 이제 막 결혼을 준비하는 후배 가정운전자에게 전달될 수 있는 집단 피드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춘순 전주지방법원 부장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타임월드 매각 검토에 고용 불안…노조 “안정 보장하라”
  2. 천리포수목원, 꽃무릇 개화 시작…추석 절정 맞아
  3. 대전 한전 전력연구원 ESS 화재…배터리팩 28개 전소
  4. 행정수도 온통대전 충청 밥상머리 민심 관통 전망
  5. 최재근 일자리진흥원장과 전용석 대전신보재단 이사장 각각 임명
  1. 대전시 지역 첫 방산 소부장 특화단지... 'AX 클러스터' 시정동력 탄력
  2. 한화, 1R서 설악고 민주홍 지명…학교 첫 1라운더
  3. 허태정 "트램 흔들림 없이 추진" 정상 추진의지 밝혀
  4. 충남 천안·아산 7개 산업단지, 반도체 후공정 특화단지 지정
  5. [기고] 홍성관광의 새로운 길-천년 홍주에 맛을 입히다

헤드라인 뉴스


전국 유일 `식물의회` 대덕구의회 의장 선출 또 무산

전국 유일 '식물의회' 대덕구의회 의장 선출 또 무산

석 달째 '감투 싸움'으로 개점휴업 상태인 대전 대덕구의회가 21일 임시회를 열고 다시 의장 선출에 나섰으나 여야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또다시 무산됐다. 전국 227개 기초의회 가운데 아직까지 원 구성을 마무리하지 못한 곳은 대덕구의회가 유일하다. 민생 현안은 뒷전인 채 의장 자리를 둘러싼 여야 대치가 장기화하면서 주민들이 의회에 근조화환을 보내는 등 지역사회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21일 중도일보 취재결과, 대덕구의회는 이날 오전 제295회 임시회를 열고 전반기 의장 선출을 위한 표결을 진행했으나 단독 후보로 등록한 서미경..

[2026 추석] 나홀로 도파민 충전부터 충청 로컬 디저트 순례까지… MZ가 쇠는 명절
[2026 추석] 나홀로 도파민 충전부터 충청 로컬 디저트 순례까지… MZ가 쇠는 명절

<'혼추족' 10년, 명절 공식 깨지다> 1인 가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혼자 밥을 먹거나 혼영(혼자 영화 보기)을 하는 건 이제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그렇다면 '혼자 보내는 추석'은 어떨까. 어느덧 '혼추족'이 등장한 지도 벌써 10년이다. 가족 간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명절 디톡스'를 하거나, 짧은 연휴 동안 호캉스를 떠나는 등 '마이크로 휴식'을 즐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실제 '2026 설 연휴 인식 조사'에 따르면, 명절 계획으로 '집에서 휴식(44.7%)'이 '고향(본가) 방문(33.6%)'을 앞질러 1위..

세종 글로벌 진로탐험대, 예산 줄여 아시아권으로 간다
세종 글로벌 진로탐험대, 예산 줄여 아시아권으로 간다

세종지역 중학교 3학년 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글로벌 진로탐험대'가 복지부 보완 요청에 따라 체험 장소와 예산, 기간 등을 축소해 내년 1월부터 추진된다. 총예산은 260억 원에서 196억 원으로 축소 투입되며, 1인당 35만 원 정액제로 추진된다. 체험 권역은 미주·유럽 장거리 권역을 제외한 아시아와 국내로 제한을 두고, 체류 기간도 5박 7일에서 국외 4박 5일, 국내 3박 4일로 단축했다. 이로써 그간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학생 자부담 형평성과 체험 장소 문제, 안전 논란은 일부 불식될 것으로 전망된다. 22일 세종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지방의회법 제정을 촉구한다’ ‘지방의회법 제정을 촉구한다’

  • 미리 보는 2026 지상군페스티벌…유·무인 복합전투체계 실전 시현 미리 보는 2026 지상군페스티벌…유·무인 복합전투체계 실전 시현

  • ‘풍요로운 추석 명절 보내세요’ ‘풍요로운 추석 명절 보내세요’

  • 차례상 차리기 배우는 어린이들 차례상 차리기 배우는 어린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