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봄이 오는 클래식, 종달새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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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봄이 오는 클래식, 종달새 노래

오지희 음악평론가

  • 승인 2024-04-29 11:13
  • 신문게재 2024-04-30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오지희 음악평론가
오지희 음악평론가
산천수목이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은 4월의 봄이 찬란하다. 봄을 향한 향긋하고 절절한 감성은 클래식음악 작곡가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어떤 계절보다도 싱그러운 봄을 가곡으로, 다양한 기악음악으로 표현했다. 따뜻한 바람, 만물이 소생하는 생생한 기운, 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는 봄이 주는 큰 선물이다.

그중에서도 봄의 친구 종달새는 섬세한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소재가 되곤 했다. '산너머 남촌에는' 김동환 시에서도 1절의 진달래 향기, 보리 내음새에 대응해 2절에 호랑나비 떼와 종달새 노래라는 지극히 서정적 가사가 등장한다. 이 아름다운 시는 김규환의 가곡으로 재탄생해 지금도 봄을 만끽하는 우리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클래식음악에서도 종달새 제목을 지닌 현악사중주곡과 종달새 가사가 들어있는 노래를 찾을 수 있다.

우선 하이든 기악곡 중에 '종달새'로 불리는 현악사중주곡이 있다. 하이든은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2개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네 악기로 구성된 현악사중주 장르를 완성한 고전시기 실내음악의 대가였다. 현악사중주곡 '종달새'는 하이든 후기 작품으로 고도로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여기서 '종달새'는 하이든이 직접 붙인 제목이 아니다. 1악장 초반 바이올린의 높은음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마치 종달새가 저 높은 곳에서 지저귀는 듯 들린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음악이다. 또한 4악장의 빠르고 상쾌한 음향은 이 종달새 저 종달새가 빠르게 하늘로 올라가고 내려오며 지저귀는 것 같다.

종달새는 시인에게 봄을 소개하는 친구이며, 시를 읽는 작곡가에게는 창작의 원천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문인 이재의 시조에서, 샛별 지자 종다리 떴다 호미 메고 사립 나니, 그리고 남구만의 시조에서도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시구가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아침 일찍 조잘거리는 종달새가 건강하게 구름 속으로 솟아오르는 그 경쾌한 움직임이 문인의 시상을 자극했음을 상상해본다. 또한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비극 '심벌린'에서도 들어라, 들어라, 창공에서 노래하는 종달새 소리를, 시구가 있다. 이 시구를 슈베르트는 제목이 '들어라, 들어라, 종달새 소리를'(D.889) 가곡으로 탄생시켰다. 가볍게 움직이는 피아노 반주와 높은 음역에서 들리는 두텁지 않은 음향으로 슈베르트는 분명 종달새 지저귐을 의식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더 나아가 보자. 낭만시기 고전주의 작곡가 브람스 가곡에는 '종달새의 노래'가 있다. 이 곡은 저 멀리 하늘에서 들리는 종달새 소리가 얼마나 황홀한지 감미롭게 노래한다. 눈을 감고 석양이 지는 노을을 배경으로 달콤하게 들리는 종달새 소리를 듣고 있자면 추억이 떠오르고 봄의 숨결로 퍼져나간다. 이러한 가사를 노래하는 브람스 가곡은 간결하면서도 고요하고 또 아름다워 선율악기인 첼로나 바이올린으로도 자주 연주된다. 마찬가지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기 영국 작곡가 본 윌리엄즈는 빅토리아 시기 영국시인 메레디쓰의 장시 '종달새의 비상'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탁월한 새의 몸짓과 울음을 단악장의 바이올린 협주곡 안에 생동감 넘치는 바이올린 소리로 드러냈다. 실제로 종달새는 솟구치듯 높이 솟아오르고 그곳에서 날갯짓하며 정지하고 있다가 다시 자기 자리로 내려오곤 한다. 영국 민요풍의 신비로움이 있는데다가 종달새의 움직임을 직접 선율로 표현했기에 귀로 들으면서도 실제로는 종달새가 눈앞에서 날아다니고 노래하는 모습이 생생히 그려진다.

한편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1년 12개월을 피아노곡으로 작곡한 '사계'에서 3월에 종달새 노래를 배치했다. 이 곡은 피아노협주곡 1번을 완성하고 유명한 발레 '백조의 호수'를 작곡하는 과정에서 마치 쉬어가듯이 간결한 음악으로 만들어졌다. 러시아의 자연으로 등장한 종달새는 봄이 호흡하는 음악 사이 장식적인 트릴로 앙증맞게 등장한다.

이렇듯 종달새는 봄이 오는 전령이자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선물이다. 봄이 선사한, 봄을 부르는 클래식음악을 이 찬란한 봄에 마음껏 누려보자! /오지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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