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이글스도 퍼레이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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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이글스도 퍼레이드 하자

신기용 법무법인 윈 대표변호사

  • 승인 2024-07-01 10:01
  • 신문게재 2024-07-02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신기용
신기용 변호사
내가 어떻게 이글스 팬이 되었는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다. 기억의 가장 먼 곳 어딘가에서도 온 동네 아이들과 야구를 하고 있었고 그때도 나는 이글스의 팬이었다. 야구방망이도 필요 없었다. 그저 주먹으로 야구하던 시절, 시커먼 테니스공 하나만 있어도 신나게 치고 달렸다. 아웃이니 세잎이니 편을 갈라 우기고 싸우는 시간이 절반은 되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 이글스의 팬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시절의 이글스는 참 잘했으니 말이다. 사명이 빙그레이던 때 이글스는 매년 우승을 다투곤 했다. 적어도 기억만큼은 야구를 볼 때면 항상 이기는 기분이었다. 지고 있어도 어느 순간 불꽃 같은 안타와 홈런으로 역전할 것만 같은 기대감 넘치는 긴장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1999년, 사명이 한화로 바뀐 이글스는 드디어 우승팀이 되었다. 하필이면 고3 수험생이었던 해다. 한국시리즈를 하기 전에 수능이 미리 끝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능을 코앞에 두었던 가을, 경기가 벌어지는 날에는 야간자습 시간마다 라디오로라도 중계를 들으려는 학생들과 단속하려는 선생님들의 대결도 팽팽했다. 그 덕분인지 조마조마한 마음에 더 흥미진진하게 중계를 들었던 기분이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미래를 걱정했지만 이글스의 우승이 목전인데 수능이 대수일까. 그렇게 철없던 아이들은 우승의 순간, 적막이 가득했던 야자시간의 교실에서 박차고 일어나 승리의 기쁨을 나누었다. 25년이 지난 아직까지 다시는 우승을 하지 못한 이글스의 미래를 알았더라면 그때 선생님들도 우리의 미래만큼이나 이글스가 걱정되셨을 텐데.



한동안 미국 보스턴에 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NBA 농구팀 셀틱스를 응원하게 된다. 오랫동안 이글스만 바라보던 몸인지라 셀틱스의 경기는 도무지 적응하기 어려웠다. 일단 너무 많이 이긴다. 큰 점수 차이로 일찌감치 승부를 내버리고 후보들을 내보내 설렁설렁 이기는 경기도 많았는데 솔직히 재미가 없을 정도였다. 10점 차로 이기고 있어도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글스의 독한 맛에 중독된 탓이다.

정규시즌 80%의, 한창때 이글스와는 정반대의 승률로 전 구단 1위를 차지한 셀틱스는 포스트시즌에서는 86%의 더 높은 승률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전마저도 별다른 위기감이 들지 않다 보니 재미를 위해 한 경기쯤 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편안해 보였지만 셀틱스의 우승도 16년 만이었다. 강팀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번번이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했던 셀틱스 선수들은 마지막 경기 승리가 확정되자 끝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셀틱스 선수들은 보스턴 중심가를 누비며 당당하게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팬이었나 싶을 정도로 유니폼을 챙겨 입고 나온 수많은 인파가 열렬히 환호하며 선수들을 맞이했다. 퍼레이드를 위해 시내 한가운데의 차량통행이 완전히 차단되었고 셀틱스의 상징인 녹색의 종이 꽃가루가 끝도 없이 날려댔다. 화려한 행렬의 한가운데에서 기쁨을 누린 것은 선수들도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감격의 순간에 기쁘다기보다는 부러운 마음이 더 크다는 걸 느끼면서 다시 한번 어쩔 수 없는 이글스의 팬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셀틱스를 응원할 수는 있어도 기쁨과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는 팬이 될 수는 없었나 보다. 그냥 이글스 팬 그만하고, 너무 쉽게 이겨서 재미없는 팀 팬이 되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심지어 종목이 다른데도 말이다. 징글징글하다.

어디 나뿐일까. 아직도 이글스 파크를 가득 메우고 있는 팬들이 모두 꼭 팬이 되고 싶어서 되었으랴. 알지 못하는 사이 스며든 추억들이 고스란히 우리 팀을 아끼는 마음으로 번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제 벗어나지도 못한 채 원망을 억누르며 오늘 또 지더라도 내일은 이길 수 있는 이글스를 응원한다.

이쯤 되면 팬들에게 미안하지 않은가. 이글스는 다른 방법이 없다. 우승으로 보답하라. 주황색 물결로 대전 시내가 일렁이는 카퍼레이드, 이번 생에 꼭 보고 싶다.

/신기용 법무법인 윈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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