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유명세(有名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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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유명세(有名稅)

양성광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 승인 2024-07-15 13:41
  • 신문게재 2024-07-16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양성광 원장
양성광 원장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1997년 8월 31일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 사고는 집요하게 따라붙는 파파라치를 피하려다 발생한 비극적인 사고였다. 한편,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는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아온 배우 이선균이 2023년 12월 27일 차량 내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한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귀족 가문 출신의 다이애나는 1981년 찰스 왕세자와 결혼 후 뛰어난 미모와 패션 감각으로 일약 '왕실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그녀는 찰스 왕세자가 불륜을 저질러 이혼한 후 봉사와 자선활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지만, 사생활이 파파라치와 황색언론의 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며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이선균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후 단역을 전전하다가 드라마 하얀거탑과 커피프린스 1호점, 파스타 등이 성공하면서 입지를 굳혔다. 그는 딱딱한 정극부터 로맨틱 코미디까지 넓은 영역에서 안정된 스타일을 보여주는 연기자로 사랑을 받았다. 이선균은 2020년 한국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출연해 최고 전성기를 맞았던 터라 갑작스러운 죽음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다.

다이애나의 사고 당일 파파라치들이 집요하게 따라붙은 이유는 '돈'이었다. 대중의 관심거리인 다이애나의 사진은 비싼 값에 거래됐는데, 그녀가 이집트 출신 억만장자 알 파예드와 포옹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은 한화 약 38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사고 시 다이애나는 함께 차에 탄 파예드의 아이를 임신 중이어서 영국 정보기관이 사고를 위장해 이들을 암살했다는 음모론이 대두되기도 했으나, 후에 임신도, 암살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유흥업소 실장 A씨의 자택에서 여러 마약을 투약한 혐의를 받은 이선균은 사망 직전 수차례에 걸친 마약 정밀검사에서 모두 음성이 나왔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투약 자체는 인정하지만, 수면제인 줄 알고 투약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당시 이선균은 A실장과 그녀의 친한 이웃 B씨로부터 협박을 당해 각각 3억 원과 5000만원을 갈취당했다고 고소한 상황이었다. 전문가들은 "경찰이 이선균과 A실장의 관계를 암시할 수 있는 힌트를 계속 외부에 흘리면서 압박했다"고 지적했다.

다이애나 비와 배우 이선균처럼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서 당하는 불편이나 곤욕을 '유명세(有名稅)'라고 한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나단 스위프트는 "비난은 사람이 유명하게 되었을 때 대중에게 바치는 세금이다"라고 말했다. 모든 수입에 세금이 붙는 것처럼 유명인은 유명세를 치른다. 그런데, 유명세는 돈을 내는 대신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해 줘야 한다. 대중의 관심을 좋아하는 유형들은 유명세를 부담 없이 즐기기도 하나, 많은 이들은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요즘은 때로 유명인의 가족들이 대신 유명세를 치르기도 한다. 축구선수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이 아동 학대 혐의로 피소된 가운데, 피해 중학생 A군의 부친은 수억 원의 합의금을 요구하며 "손흥민 선수가 세계적인 선수이고 광고며 이적료며 이미지 마케팅하는 비용이 얼만데, 돈이 아깝나"고 말했다 한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가 아니더라도 유튜브 같은 SNS로 유명인이 되는 세상이다. 2024년 교육부가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을 조사한 결과, 1위는 6년 연속 운동선수가 차지했으며, 크리에이터가 4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유명해져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유명세와 같은 리스크도 생긴다는 것을 알기는 할까. 최근 천만 먹방 유튜버 '쯔양'이 4년에 걸친 악몽 같은 폭행과 착취, 가스라이팅과 협박이 뒤섞인 교제 폭력 피해 사실을 고백했는데, 적극적 대처를 주저하게 된 데는 얼굴이 알려진 유명세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남자 친구는 이별을 통보받자, 몰래 찍은 동영상을 거론하며 협박했다고 한다.

이러한 유명세를 보면서 '유명한 것이 과연 좋은 것이기만 할까?'라고 자문해 본다. 우리 아이들이 불빛으로 달려드는 불나방이 되지 않고, 지금 꾸고 있는 예쁜 꿈처럼 유명인이 되고 유명세도 없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양성광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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