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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택 삼남제약 대표 |
민주당의 패인으로 DEI를 지목한 사람들의 얘기는 지나친 다양성 인정, 지나치게 공정만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 그리고 지나친 소통이 특히 젊은이들에게 피로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먹고 사는 것이 힘든 미국의 중산층에게는 약자를 보호하고, 세상은 공정해야 한다는 식의 민주당이 제시하는 공자님 말씀보다는 '내가 먹고 살게 해줄께' 라고 얘기하는 트럼프 후보의 단순명료한 메시지가 통했다는 것이다.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아동학대 이제 그만'이라는 플래카드를 길에서 보았다. 아동폭력, 학대에 동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지만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 아동폭력은 자행되고 있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다. 그렇지만 훈육도 필요 없을까?
나무를 심어 놓고 잘 자라도록 하려면 가꾸어야 한다. 내가 바라는 모양으로만 자라게 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손을 대는 '분재'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나무마다 갖고 있는 스스로의 장점을 살리고 잘 자라게 하려면 돌봄이 필요하다.
공자님이 충효를 강조한 이유는 충과 효를 스스로 깨우치는 사람은 드물기에 <가르쳐야 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충효가 과거의 패러다임이라면 매너, 에티켓, 배려 등의 단어로 사용되는 상대방과의 관계 설정에서 중요한 행동방식은 교육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반복적인 교육을 통해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어느 선생님에게서 들은 얘기이다. 인사하는 아이가 아무도 없기에 보는 아이들마다 '선생님을 만나면 이사하는 것이란다'고 얘기를 해주었더니 그제서야 모두들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더란다.
자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인사하는 것조차 가르쳐야 배우는 것이 아이들이다.
지나친 훈육도 문제지만 자유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지나친 방임은 그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사회 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많은 시련을 줄 수도 있다.
지금은 서른 넘은 아들이 10여 년 전에 대학에 입학하고 기숙사로 들어가게 되어 학교를 방문했을 때, 마주치는 학생들이 나에게 고개 숙이고 인사하는 모습에 감동받은 적이 있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눈 마주치면 인사를 했다. 그 학교 분위기는 교수님을 넘어서서 학교를 방문한 선생님과 같은 느낌이 있는 어른에게는 모두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아들을 이 학교에 맡겨도 좋겠다'는 기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한다. DEI가 의미하는 훌륭한 명제가 왜 도마에 올랐을까? 지나쳤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성이 지나쳐 본래의 중심이 흔들린다든가 공정이 지나쳐 유연성을 잃는다든가, 소통이 지나쳐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한다고 느끼면 역풍이 불 수 있다. 옛말에 그른 말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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