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칼럼] 21세기의 풍속화는 거리에서 태어난다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 칼럼] 21세기의 풍속화는 거리에서 태어난다

최정민 미술평론가

  • 승인 2025-05-07 16:56
  • 신문게재 2025-05-08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2025032601001967400079671
최정민 미술평론가
SNS에 올라온 한 장의 이미지, 광장에 들린 손팻말 하나가 시대를 대변한다. 정제된 말보다 날것의 그림이 감정을 빠르게 전파하고, 집단의 정서를 형성한다. 이미지의 언어는 오늘날 정치와 사회, 문화 속에서 강력한 소통 수단이 되었고, 이는 과거로부터 이어진 민중의 시각문화와 맞닿아 있다.

조선시대의 역사는 오랫동안 궁궐과 왕, 관료와 양반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왔다. 조선의 미술 역시 왕실과 관청을 위한 궁중화가 주류를 이루었고, 정제된 양식미와 상징체계로 엘리트의 세계를 재현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름 없는 수많은 민중들의 삶이 흐르고 있었고, 그들은 공식 기록이 아닌 생활 속 예술로 존재를 남겼다. 민중은 글 대신 붓을 들었고, 민화와 풍속화, 자수와 공예는 그들의 비공식 기록으로 남겨졌다.



풍속화는 특정 인물이나 신화를 그린 것이 아니라, 민중의 일상과 감정을 화폭에 담은 장르 회화다. 조선 후기의 풍속화는 단순한 일상 풍경이 아닌, 민중의 집단 자화상이자 시각적 정서의 기록물이다. 김홍도의 <서당>은 아이의 장난과 훈장의 표정에서 교육의 권위와 유머가 교차하고, <씨름>에서는 민중 사이의 에너지와 긴장감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신윤복의 <단오풍정>이나 <연소답청>은 단순한 유흥의 재현이 아니라 억압된 감정의 일탈과 젠더 역전의 상징으로도 읽힌다. 조선시대의 민화는 또 다른 방식으로 민중의 욕망과 감정을 시각화했다. <까치호랑이> 그림 속 호랑이는 권력을 풍자하고, <책가도>는 책과 문방구, 학문을 상징하는 사물들을 병풍 형식으로 그려 배움과 입신양명의 꿈을 표현했다. 이처럼 민화는 고급 미술이 아닌, 누구나 그릴 수 있는 이미지 언어였으며 민중의 감정과 욕망을 담아내는 도구이자, 해학을 통한 전복의 수단이었다.

이러한 비공식적 시각문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SNS, 밈, 그래피티, 디지털 아트와 드로잉 앱 등은 현대의 붓이 되었고, 개인은 자신의 감정과 메시지를 이미지로 발산한다. 조선의 상징들이 시각적 기호였듯, 오늘날엔 캐릭터, 일러스트, 자기계발 콘텐츠가 욕망의 언어가 되었다.

2016년과 2017년의 촛불 시위는 그 시각문화의 정점을 보여준다. 수많은 시민이 모인 광장에는 텍스트보다 이미지가 먼저 도착했다. 손으로 그린 팻말, 웹툰 형식의 풍자 그림, 상징과 유머가 결합된 조형물은 항의 수단을 넘어 자발적으로 생산되고 유통된 디지털 민화였다. 이는 현실을 해학적으로 비틀고 상징적으로 직조했던 과거 민화의 전략과 닿아 있다.

최근 벌어진 탄핵 촉구 시위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검찰독재 타도", "민생파괴 중단"과 같은 문구는 강렬한 색채와 시각 상징으로 표현되었고, 대통령을 풍자한 캐리커처와 일러스트는 빠르게 SNS를 타고 확산되었다. 시민들은 시위 현장을 또 하나의 전시장으로 만들었고, 정제된 정치 언어 대신 감정의 언어로 저항의 메시지를 확산시켰다. 이는 단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분노와 유머, 저항과 희망이 뒤섞인 집단 시각언어였으며, 조선시대 민화 속 호랑이가 권력의 위엄을 조롱했듯 오늘날의 시위 이미지는 권력의 얼굴을 해체하고 비판의 은유로 바꾸었다.

민중은 언제나 말보다 그림으로 시대를 기록해 왔다. 조선시대의 민화가 그러했고, 오늘날의 시위 이미지와 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과거를 말할 때 권력의 기록만이 아니라, 그 곁에서 스스로를 그려낸 수많은 얼굴들을 함께 보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을 기록할 때에도 거리와 휴대폰 속, 벽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이미지들을 통해 민중의 시선을 읽어야 한다. 진정한 기록은 권력의 손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피어난다./ 최정민 미술평론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월요논단] CTX(충청권 광역급행철도) 출발역을 서대전역으로
  2. "검증된 실력 원팀 결집" VS "결선 토론회 수용해야"
  3. 지방선거에 대전미래 비전 담아야
  4. 與 지방선거 충청경선 수퍼위크…뜨거워지는 금강벨트
  5. 대전 동구, 신흥문화·신대소공원 재조성…주민설명회 개최
  1. 대전도시공사, 대덕구 평촌지구 철도건널목 안전캠페인
  2. 대전시 3년 연속 메이커스페이스 공모 선정
  3. 대전 서구, ‘아트스프링’ 10일 개막…탄방동 로데오거리서 개최
  4. 코레일, 의왕 철도박물관 설계공모 ‘T Museum’ 선정
  5. [기고]세계 물 전문가, 물 위기 해법 대전서 찾는다.

헤드라인 뉴스


중동사태로 공사비↑사업성↓… 대전 재개발·재건축 사업 제동

중동사태로 공사비↑사업성↓… 대전 재개발·재건축 사업 제동

대전 재개발·재건축 현장 곳곳에서 시공사를 구하지 못해 사업에 제동이 걸리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부동산 침체로 미분양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중동 사태로 공사비까지 급등하자 사업성을 우려한 건설사들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6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대전 중구의 한 재개발 조합은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난항을 겪고 있다. 입찰에 나섰던 시공사가 중동 사태를 이유로 서류 제출을 미루면서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해당 구역은 이달 중 총회를 열어 시공사 선정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일정이 미뤄졌다. 해당 조합 관계..

대전, 이스포츠 수도 입지…`이터널 리턴`과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유치
대전, 이스포츠 수도 입지…'이터널 리턴'과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유치

대전시가 국내·외 대형 이스포츠 대회와 프로 리그를 연이어 유치하며 '이스포츠 수도'로서 입지를 공고히 다지고 있다. 6일 대전시에 따르면 시와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은 '2026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이하 MSI)' 국제 대회 유치에 이어, '이터널 리턴'과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2026년 프로 정규시즌 유치까지 성공했다. 이에 따라 올해 '이터널 리턴 마스터즈 파이널 대회'와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프로시리즈(이하 PMPS)' 모두 대전에서 열린다. 두 종목 모두 한국에서 빠르게 성장 중인 인기 게임으로, '이터널 리턴'은 20..

민주당 대전시장 후보 결선에 쏠린 눈… `허태정 vs 장철민` 본격화
민주당 대전시장 후보 결선에 쏠린 눈… '허태정 vs 장철민' 본격화

6·3 지방선거 더불어민주당 대전시장 후보 선출을 위한 결선투표를 앞두고 장철민 국회의원과 허태정 전 대전시장 간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장 의원이 1차 경선에서 탈락한 장종태 의원과의 '장장 연대'를 고리로 기세를 올리는 반면 허 전 시장은 풍부한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대전형 정책공약을 띄워 맞불을 놨다. 먼저 장철민 의원은 6일 장종태 의원과 함께 대전시의회 기자실을 찾아 '원팀 정책연대'를 공식 선언했다. 이날 기자실 방문과 기자회견은 두 의원의 '장장 연대'를 대외적으로 공식화하는 자리였다. 연대에 따라 장철민 의원은 장종..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중동전쟁 장기화에 요소비료 수급 불안 중동전쟁 장기화에 요소비료 수급 불안

  • 꿈돌이 선거택시 대전 도심 달린다 꿈돌이 선거택시 대전 도심 달린다

  • ‘용접은 내가 최고’ ‘용접은 내가 최고’

  • 벚꽃 활짝…대전에 봄 왔네 벚꽃 활짝…대전에 봄 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