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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개막하는 전시 '채색화, 힘트래디션' 포스터./사진=대전문화재단 제공 |
오는 5월 24일부터 7월 13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근대문화유산과 한국 채색화, 전통 목가구가 어우러지는 실험의 장이다.
근대문화유산의 공간에 한국 채색화와 전통 목가구가 어우러지며 전통을 세련되게 계승한 '힙트래디션'이라는 새로운 감각을 제시한다. 고전의 재해석, 전통의 재발견 그리고 시대를 잇는 예술적 감수성이 테미오래의 골목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피어난다.
전시 제목에 담긴 '힙트래디션'은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촌스럽지 않고 세련된 감각으로 즐기는 방식을 뜻하는 신조어다.
'힙(hip)'과 '트래디션(tradition)'의 조합은 단순한 유행의 혼합이 아닌 과거의 가치를 현재에 복권시키고 미래로 확장하는 창조적 실천을 의미한다. 전통은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을 깨고 세대를 넘어 공감할 수 있는 동시대 문화유산으로서의 잠재력을 되묻는 시도다.
테미오래는 그런 질문에 가장 적합한 공간이다. 시대의 공기를 머금은 근대건축물 속에서 전통의 색채가 오늘의 빛깔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번 기획전이 열리는 테미오래는 1930년대 조성된 관사촌을 복원한 대전의 대표적 근대문화유산이다.
그중 전시가 열리는 6호 관사 '테미갤러리'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과거와 오늘의 대화를 통해 온전한 '나'를 마주하게 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관사였던 집, 누군가의 삶이 오갔던 공간, 시대의 격변을 지나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건축이기에 이곳의 전시는 단순한 미술 감상이 아니라, 공간과 기억의 공명을 동반한 체험이 된다.
'채색화, 힙트래디션' 전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이곳은 과거를 현재적 시선으로 사유하고 전통을 동시대 언어로 해석하는 실험장이 된다. 김은희의 회화와 설치, 방대근의 가구와 조형, 테미오래의 공간성과 시간이 중첩되며, 관람객은 그 안에서 예술적 감각뿐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과 시간의 깊이를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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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부터 7월 13일까지 테미오래 6호관사에서 '채색화, 힙트래디션' 전시가 열린다./사진=최화진 기자 |
본격적인 작품 감상은 실내 방 공간에서 이뤄진다.
방1은 '화개(花開), 춤추다'를 주제로 채색화와 설치작품이 어우러지며, 방2에는 '유수(流水), 흐르다'를 표현한 프로젝트 영상이 설치된다. 방3은 전시의 핵심작 중 하나인 '백제왕비 납시오'가 전시되는 공간으로, 백제 역사와 전통을 동시대의 시선으로 되살린다.
속복도에는 '순환(巡還), 만나다'를 주제로 작가 노트와 평론 등이 전시되어 관람의 여운을 남긴다.
전시 작품으로는 김은희 작가의 회화와 영상 작품 25점이 소개되며, 대표작으로는 '백제왕비 납시오', '일월오봉도', '무령왕비 두침 정면' 등이 포함된다. 석채, 분채, 순금분을 활용한 정교한 채색화부터 디지털 아크릴 설치까지 다양한 매체가 공존한다.
방대근 소목장은 '삼층장', '이층농', '문갑반닫이', '책장' 등 총 7점의 목가구를 선보인다. 전통 소목기법으로 제작된 이 작품들은 느티나무, 오동나무 등 국내 자재로 제작됐으며, 조형미와 실용성을 동시에 갖춘 유물 수준의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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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작가. |
김은희 작가는 전통 채색화의 미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지속해온 한국화가이다. 오방정과 간색을 이용한 정밀한 채색 기법으로 한국적 자연의 미를 표현하는 동시에, 역사적 인물을 화폭에 담아내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감성적 서사를 구축해왔다. 특히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을 기반으로 백제 왕비의 초상을 복원한 작품은 고고학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도전으로 평가받는다. 최근에는 디지털 매체와의 융합을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확장하며, 장르적 경계를 허무는 실험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그녀의 작업은 한지에 스며든 석채의 중첩된 레이어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의 태도로 백제 유물의 재해석, 전통 오브제의 현대적 조형화 등을 시도하며 과거의 미감을 지금-여기의 감성으로 끌어온다.
특히 1971년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과 백제 왕비의 초상, 두침(머리받침), 족좌(발고정틀) 등을 채색화로 재현한 작품은 고고학과 미술사, 복식학이 교차하는 다층적 맥락 위에서 한국적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된다. ▲1부 '화개(花開), 춤추다' ▲2부 '유수(流水), 흐르다' ▲3부 '귀환(歸還), 빛나다' ▲4부 '순환(巡還), 만나다' 존재의 흐름과 문화의 계승, 시간의 순환이 응축된 구성이다.
그 안에는 존재의 순환, 문화의 계승, 시간의 흐름이 응축되어 있으며, 과거의 최고 미감을 대중적 감성으로 끌어올리는 김은희 작가 특유의 시선이 녹아 있다. 모란, 연꽃, 매화, 금동대향로의 박산(博山), 오봉도(五峯圖) 등의 소재는 전통을 계승함과 동시에 그 재료가 지닌 역사적 서사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내는 실험이다.
또한 채색화는 평면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는 아크릴 설치, 영상 등의 현대 매체를 병행하며 한국화의 확장 가능성을 전시라는 공간적 실험 안에서 펼쳐낸다. 이러한 시도는 채색화라는 전통 화법에 동시대적 시선을 더해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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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근 선생 |
방대근 소목장은 전통 목가구 제작의 맥을 온전히 잇고 있는 국내 대표 소목장 중 한 명이다. 1968년 스승 권세병 문하에 입문해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가구 한 점 한 점에 혼을 담아왔다. 못을 쓰지 않고 짜맞춤 기법만으로 제작하는 그의 가구는 단단한 구조와 자연스러운 곡선미로 선비문화의 단정한 미감을 구현해낸다. 운현궁, 경복궁, 무령왕릉 등 국가유산 복원에도 참여했으며, 수많은 제자와 함께 전통 기술의 현대화를 실천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전전통나래관 등에서 소목장 강의도 병행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통 목공예의 맥을 잇는 방 소목장은 무늬가 있는 나무의 자연미를 살려 못을 사용하지 않고 짜임과 이음만으로 가구를 제작한다. 그의 가구는 도구 제작부터 조립까지 전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며 견고함과 소박한 미감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자연스럽고 담백한 조형은 선비문화의 미학과 맞닿아 있으며 코로나 이후 '집'이라는 공간이 회복과 치유의 장소로 바뀐 시대적 흐름에도 잘 부합한다.
방대근 소목장은 사랑방 가구에 특히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경복궁 교태전 재현 가구(2005), 백제 무령왕릉 숭모전 가구 제작(2017) 등 역사적 복원 작업에도 참여하며 한국 전통 가구의 품격과 미감을 널리 알리고 있다.
이번 테미오래 전시에서는 그의 대표작들이 공간 곳곳에 배치돼 채색화 작품들과 미묘한 조화를 이룬다. 장인의 손끝에서 태어난 가구는 단순한 생활 도구를 넘어, 시대를 뛰어넘는 미적 오브제로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자연목에 대한 선호가 커지고 있는 최근의 디자인 트렌드 속에서, 방 소목장의 작품은 '오래된 것이 가장 새로운 것'임을 다시금 입증한다. 무형문화유산이자 살아 있는 동시대 공예로서 그의 가구는, 전통이 여전히 삶과 호흡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구체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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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부터 7월 13일까지 테미오래 6호관사에서 '채색화, 힙트래디션' 전시가 열린다./사진=최화진 기자 |
전통을 고정된 과거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감각으로 풀어내고 미래와 연결하는 문화적 실천. '모두를 향한 헤리티지'라는 전시 부제처럼 특정한 계층이나 세대가 아닌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전통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다.
전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 가능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자세한 사항은 테미오래 운영센터 또는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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