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긍심의 원천은 남보다 우위에 있거나 우리가 소망하는 것들이다. 탁월한 도덕성, 부, 명예, 능력, 위치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염되거나 타락한 것이면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 비난의 대상이 된다. 오만, 과신, 자아도취 등도 남을 불편하게 한다. 자아중심주의는 유아기 특성중 하나이다. 본인이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한다. 자타구분도 하지 못하고 자신과 다른 시각이 있음을 인정 또는 이해하지 못한다. 독불장군으로 타인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양면성으로 선악의 경계가 애매한 것들이 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성찰,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골목대장도 안 될 성품 또는 능력으로 큰일을 도모한다고 나서서 설치는 모습이 안쓰럽다.
역대 대통령이 그때그때 상황에 부합하는 적절한 사람으로 선출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대대로 불행했다고 인구에 회자되는 것도 사실이다. 왜 불행했을까? 원인 중 하나가 비전 없는 과도한 욕심은 아니었을까?
지난 5월 13일 서거한 우루과이 40대 대통령 호세 무히카(Jos? Alberto Mujica Cordano, 1935~2025)의 언행에서 찾아보자. 책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과 각종 보도 자료에서 발췌 정리했다.
그는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렸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가난했지만, 퇴임 후에도 변함없이 가난했다. 봉급의 90%를 사회 각종 기금으로 기부했기 때문이다. 대통령궁은 노숙자 편의 시설로 제공하고 별장은 난민의 숙소로 사용했다. 늘 노타이에 낡은 통바지, 싸구려 운동화, 헝클어진 머리칼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파란색 폭스바겐 비틀 소형차로 출퇴근 했다. 물론 자가운전이다. 퇴임 후에도 변함없이 변두리에 있는 슬레이트 지붕 오두막에 살았다.
가난에 대한 질문이 많았던 탓인지, 그에 대한 답변이 많다. 울림이 있다. "사람들이 저보고 가난한 대통령이라지만, 아니요, 전 가난한 대통령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은 더 많은 걸 원하고, 아무리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가난이란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지만 나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거의 없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살아온 방식이자 국민 대부분이 사는 방식대로 살고 있다" "삶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으니 나는 가난하지 않다." "나는 가난한 것이 아니라 절제하는 것일 뿐이다." "동반자가 있으면 우리는 가난하지 않다."
국가원수에 대한 생각도 참 소탈하다. "장님 중에 가장 나쁜 장님은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다." "국가원수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명령을 받는 사람이다." "권력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며, 단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도 촌철살인이다. 마지막 인터뷰라고 전한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쉽지만, 민주주의의 기본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다." 14년간의 수감생활 후에도 "나는 그대들에게 분노로 대응하지 않는다. 분노는 건설적이지 않다." 했으며, 현실주의, 실용주의 정치철학으로 일관했다. "억압과 복수로는 사회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며 큰 정치야말로 최상급의 복수라고 말한다.
환경에 대해서도 빠트리지 않는다. "개발이 행복을 가로 막아서는 안 됩니다. 개발은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진짜 숲을 파괴하고 익명의 콘크리트 숲을 만들고 있다." "우리 세대의 좌절을 다음 세대에 넘기지 말아야 한다."
미래가 없는 권력 만끽, 재산 불리기에 열중하고, 국민의 행복이 아닌 자신의 행복만 챙기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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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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