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망명을 요청한 동구권 축소기술 전문 과학자 베니쉬 박사가 테러범 공격으로 뇌사상태에 빠진다. 머릿속에 외과 수술로 절대 제거할 수 없는 혈전이 있다. 미국 정부는 잠수함을 미생물크기로 축소하여 인체 내로 들여보내 뇌 혈전을 제거하기로 한다. 함장, 조종사, 특수요원, 외과의와 조수 등을 참수함에 태워 인체 내부로 투입한다. 여러 가지 위기에 봉착하지만, 극복하며 임무를 수행한다. 죽음을 무릅쓴 모험의 인체 여행이다.
놀라운 상상이어서 인상적 부분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가슴의 윗부분에 주사되어 혈관을 타고 인체내부로 들어간다. 적혈구나 항체 등을 만나 싸우기도 한다. 귀 부분의 혈관을 지날 때 수술기구가 떨어져 울림이 발생해 좌초되기도 한다. 환부에 도착, 레이저 발사기 같은 것으로 응혈을 제거한다. 임무 완수 후 눈의 혈관을 통하여 눈물에 섞여 몸에서 이탈한다. 스멀스멀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촌뜨기에겐 미술, 특수효과, 음향, 촬영 등 모두가 환상 그 자체였다. 엄청난 충격으로 상상력의 실체에 대해 일깨워준 것이다. 학교에서 단체 관람 시켜줘, 보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누구나 익히 아는 것처럼 상상력이 우리 삶을 바꾸어 놓는다. 중요 고비, 결단, 도약, 행동, 역사와 사상에 상상력이 작용한다. 문득, 얼마나 의미 있는 상상을 하였는지 생각해 본다. 특히 내 몸에 대해서는 어떠했나? 거의 없지 않은가? 사춘기에 위와 같은 경험이 있었음에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적용하지 않았다.
허정아 박사는 <몸, 멈출 수 없는 상상의 유혹>에서 "인간의 몸은 문명의 시작과 함께 끊임없이 상상의 대상이 되어왔고, 또한 상상력의 원동력 자체였다. 몸이 있어야 상상할 수 있고, 상상하기 위해서는 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라며 상상의 부재를 일깨워 준다. "몸은 상상력의 통로이자 상상력의 창고이며, 상상력의 원천이자 질료이다." "몸은 인류의 모든 모험과 열정, 역사, 문화, 정치, 과학 등이 상호 교차하는 교차로다."
우리는 몸 안에 갇혀 산다. 숙명이다. 숙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상상한다. 몸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시절, 어떻게 만들어지고 작동하는지 상상했다. 살아있는 몸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엑스선, MRI, CT 등의 등장으로 상상력이 더욱 확장 되었다. 물리적 제약에서 벗어난 몸에 대한 상상, 21세기는 새로운 몸을 얻어가는 과정에 이르고 있다. 가상현실, 사이버공간, 분신 등 새로운 형태의 몸에 대한 상상, 남성과 여성, 안과 밖, 현실과 가상, 인간과 기계, 육체와 정신 같은 여러 경계선 상에 서 있는 몸을 둘러싼 상상도 대두된다. 곧, 몸에 대한 상상, 몸 밖으로서의 상상, 몸이라는 경계 자체에 대한 상상이다.
몸과 기계의 융합, 슈퍼휴먼의 탄생 등 상상을 상상한다. 동양에서는 우리 몸을 우주로 보았다. 몸속 미시의 세계도 경이롭다. 또 다른 밖의 몸도 있다. 고정적이지 않다. 형체도 사라진다. 그런가 하면 부족한 것이 너무 많다. 사람의 생각과 기계 지능을 융합하려는 강력한 움직임도 있다. 트랜스휴먼, 포스트휴먼의 상상이다. 기술이 인류 생존과 진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주목하고, 미래 인류의 운명 역시 기술 진화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다. 인간 진화의 결과물인 기술이 이제 역으로 인간 진화를 결정한다. 기존 인간보다 컴퓨터 소프트웨어적 인간이 대세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는 이런 상상도 한다. "〈마이크로 결사대〉에 등장하는 잠수함처럼 생긴 나노로봇들이 자율적으로 동맥을 순찰하면서 각종 질병들을 사전에 치료할 것이며, 암으로 진전될 수 있는 결장폴립을 제거하고, 바이러스와 암세포들을 찾아내고 종양 덩어리들을 스스로 제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부단히 상상에 배가 고프다. 예술과 과학은 물론, 모든 분야에 걸쳐 보다 진지한 상상이 필요하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 |
양동길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