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여행] 76-한여름 뜨거운 열기 식힐 진주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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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여행] 76-한여름 뜨거운 열기 식힐 진주냉면

김영복 식생활연구가

  • 승인 2025-06-16 16:51
  • 신문게재 2025-06-17 10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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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진주 장날. (사진= 김영복 연구가)
초여름에 접어들어 한낮 기온 30도를 오르내리면 생각나는 음식은 뭐니 뭐니해도 시원한 냉면이다.

여름이면 전국의 냉면집들이 서로 맛 자랑을 하고 있지만 예로부터 조선의 대표적인 냉면은 북평양냉면 남진주 냉면이었다. 북한 평양의 과학사전종합출판사에서 1994년 12월 25일 출간한 『조선의 민속전통』에 '랭면 중 제일로 여기는 것은 평양랭면과 진주랭면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다.

진주의 관영이나 함안현 관아 등지에서는 관찰사나 군수들이 관주(官廚)에서 만든 냉면을 즐겨 먹었다.

-오횡묵(吳宖默 : 1834~1906)의 『경상도함안군총쇄록』-1800년대 후반 진주목 관영(官營의 관주(官廚)에 근무하던 주노(廚奴 : 지방관영의 숙수) 가옥복동 개울가 초가집에 간판도 없이 솥을 걸고 나무 '면자'로 냉면을 뽑아 팔면서 진주냉면의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진주시 상봉동 거주 강대백(1999년 취재 당시83세, 강수영90세)

그다음에 개업한 집이 필자가 1999년에 만나 취재에 응한 강수영(당시 90세)씨의 어머니 안장금 할머니가 딸의 이름을 따 '수영이네 집'이라는 진주냉면집이다. '수영이네 집'은 나중에 '수영식당'으로 상호를 변경했다고 한다.

이어서 수정식당, 평화식당, 은하식당 등 일곱 집 정도의 냉면집들이 냉면을 배달하는 머슴을 5~6명 씩 두면서 장사를 했다고 한다.

이 당시 진주냉면은 지체 높은 관리나 돈 많은 부잣집에서나 먹는 고급 진 음식이었고 일반서민들은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당시 진주냉면은 진주 뿐만아니라 한양까지 알려 진 진주향토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오죽하면 1925년 3월14일자 '동아일보에'진주 광선야학경비를 위해 면려청년 주최로 음악연주대회를 열었는데, 남찬양대가 냉면이라는 노래 제목으로 합창을 불렀다고 기사화 할 정도 였다.

이 시기에 진주는 냉면도 비빔밥도 조그만 담아 주는 세련된 미식의 고도라고 회고 했다. 그렇다 진주냉면은 메밀면과 해물육수도 중요하지만 육전은 물론 전복, 해삼, 석이버섯 등 최고의 고명이 올려진 고급진 냉면으로 값도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음식이었다.

그리고 비빔밥이나 냉면이 모두 양이 아니라 질을 중시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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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연구가가 재현한 진주 냉면. (사진= 김영복 연구가)
조선에서 기생의 명산지로는 두 군데를 꼽을 수 있으니 북으로는 평양, 남으로는 진주이다. 어떤 이는 진주기생이 평양파리보다 두 마리가 적다 하고 혹설에는 평양파리가 평양기생보다 겨우 두 마리가 많다 하니 평양과 진주의 그 기생 수효의 차가 여하한지 수학천재의 답안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 기생적 지반과 세력으로는 진주가 평양에 차(差)함이 수등(數等)이라 한다.

진주권번에서는 반드시 기예기생만이 놀음을 나갈 수 있었다. 기생이 놀음을 나갈 때에는 권번장을 비롯한 한두 명을 딸려 보내 기생들이 놀음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맡겼다. 기생들이 놀음과정에서 권번에서 정해놓은 규정이나 법도를 어긴 경우에는 즉시 보고되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별도의 책임과 추궁까지 뒤따르는 등 매우 엄격한 면모를 보였다.

이러한 냉면집들은 해방 이후 1965년까지 성업을 이루었었다. 그러나 1966년 2월6일 밤 9시쯤 진주 시내 중앙공설시장 4구 일광상회와 대동지업사 부근에서 원인불명의 화재가 발생하여 순식간에 수백 점포가 맹렬한 불길 속에 휩싸여 버렸다. 약 3시간에 걸쳐 때마침 불어오는 강한 서북풍과 동북풍으로 47동 447개의 점포가 전소된다.

진주냉면은 1966년 이후 진주 지역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1978년 4월 27일자 '조선일보'에 소설가 이병주(李炳注)는 '문화재(文化財)지정 받는 경토(卿土)음식' 진주비빔밥에 대한 글을 쓰면서 "진주의 음식이라고 하면우선 유명한 것이 두가지가 있었다.비빔밥과 냉면.그런데「있었다」라고 과거형(過去形)으로 썼던 까닭이 있다.

그 가운데「진주냉면」은 어느덧 자취를 감추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냉면은 30대 이전의 사람에겐 끈질긴 추억처럼 남아있다.지면이 모자라 그 추도사(追悼詞)를 쓸 수 없는 것이 유감이지만, 냉면의 풍미(風味)로선「진주냉면」을 덮을 것이 없을상 한데, 원산냉면 함훙냉면 평양냉면등의 그양적공세(量的攻勢)에 못이겨 그레샴의법칙 그대로 이 지상에서추방되고 말았다.'라며 진주냉면이 사라진 것에 대한 추도사(追悼詞)를 쓰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나타 냈다.

필자가 1998년도 중국의 도문 지역을 여행하다 북한에서 넘어온 북한에서 펴낸, 『조선의 민속전통』1식생활풍습편을 보게 됐다. 식생활문화를 연구하는 필자로서 반가운 김에 책을읽어 보다 눈에 띄는 내용이 있었다. 바로 랭면 가운데서 제일로 일러주는 것이 평양랭면과 진주랭면이였다.' 라는 구절이다. 식생활문화를 연구하는 필자로서는 큰 수확이었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진주를 향했다. 진주 냉면집들을 한 집 한 집 다니며 우선 진주냉면을 아는지 물어 보고 하루 다섯 그릇 씩 냉면을 먹어가며 조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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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 양념이 들어간 진주 냉면. (사진= 김영복 연구가)
아쉽지만 한 집도 진주냉면을 하는 집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주냉면의 정체도 몰랐다. 심지어 사천의 재건냉면 까지 찾아 갔으나 그곳에서도 진주냉면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경노당에서 노인들을 만나면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혹시 진주냉면을 아시는지요?""당신이 그걸 우째 아오?""북한 책에..." "별일이네 북한 책에 진주냉면이 나오다니 중앙시장 나무전거리에 제일 마지막으로 하던 평화식당이라고 진주냉면집이 있었는데, 예전에 우리는 비싸서 맛도 못보고 고관대작이나 돈 많은 지주들이 먹던 음식이오. 한 때는 한양에서 자가용을 끌고 진주냉면 맛보러 왔다 카던데...."

필자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중앙시장 평화식당 자리로 가서 그곳 토지대장과 가옥대장을 뒤져 그 시기 집 주인을 찾았다.

마침 평화식당 주인의 아들이 중앙파출소 소장을 하고 있었다.

"혹시 진주냉면 아십니까?""네 제가 중학교 때까지 우리 집에서 했어요"

"그렇다면 냉면집 주방에서 일하던 종업원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네 저 앞에 꼬막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 있죠? 저 분입니다." 드디어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필자는 당시 '밀면을 아십니까?'다큐를 제작하고 있는 부산방송(현 KNN)에 연락하여 진주냉면을 하자고 제안 하였다.

중앙시장 나무전거리 '평화식당(당시 냉면집)'에서 마지막으로 일했던 김점순(당시 61세)을 만난다. 사라진 진주냉면을 찾는다는 소문이 나면서 1928년부터 자기의 어머니가 진주냉면 집을 했다는 상봉동 거주 김양훈(당시 81세) 할머니, 수정식당 주방에서 일했던 정태호(당시71세)씨 등을 만나게 된다.

당시 부산방송(현 KNN)과 함께 평화식당의 김점순 아주머니·강수영 할머니·정태호 할아버지를 모시고 각자가 아'는 진주냉면'을 만들어 보라고 부탁한 후 공통점을 정리해 사라진 '진주냉면'을 재현해 냈다.

평양냉면이 동치미국물을 사용했다면 진주냉면은 동치미국물 대신 거제, 남해, 사천 등지에서 잡히는 죽방멸치를 이용한 '멸치장국'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이한 것은 멸치 장국을 끓일 때, 멸치의 잡내를 없애기 위해 동이나 무쇠를 불에 벌겋게 달궜다가 끓는 장국에 넣었다. 순간적으로 높은 온도로 가열하여 멸치의 잡내를 없애는 '순간가열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멸치장국을 기본으로 하여 각 집마다 첨가하는 재료와 육수의 맛이 조금씩 달랐다.

예를 들어 평화식당 계열의 김점순은 멸치장국을 만들 때 멸치, 개발(바지락), 건홍합, 마른명태, 표고버섯 등을 넣고, 재래식 간장으로 간을 맞추며 만들었다. 수영식당 계열인 정태호는 멸치와 재래식 간장을, 1928년부터 자기의 어머니가 진주냉면을 했다는 상봉동 거주 김양훈은 멸치와 양파를 넣고 재래식 간장으로 간을 했다.

그런데 여기서 김점순·정태호는 쇠고기 덩어리 살을 넣어 삶는데, 김양훈은 쇠고기를 잘게 편육으로 하여 마늘을 빻아 재래식 간장으로 양념한 후 쇠고기 편육을 무쳐 두었다가 이것을 삶아 육수를 만들었다. 김점순은 꾸미로 김장배추김치를 그대로 잘게 썰어 얹고 배·오이를 채 썰어 얹고, 계란 황백 지단과 깨소금을 얹어 내놓았다.

필자는 여기서 진주냉면의 공통된 특징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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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전을 고명으로 한 진주 냉면. (사진= 김영복 연구가)
첫째 순 메밀에 고구마 전분을 물에 개어 이 전분 물로 메밀 반죽을 하여 면발을 뽑는다는것이다. 둘째 쇠고기 육수에 멸치장국으로 육수의 빛깔과 맛을 낸다는 것이다. 셋째 김장배추김치를 채 썰어 꾸미로 얹는다는 것이다. 넷째 진주지방의 제사음식으로 만들어 먹던 쇠고기 육전이 꾸미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복·해삼·석이버섯을 데쳐 채를 썰어 냉면 꾸미로 올렸다고도 한다.

이러한 다섯 가지의 특징이 진주냉면의 원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형이 훼손된 냉면은 진주냉면이라 할 수가 없으며, 이 원형을 중심으로 맛이나 모양을 내기 위해추가되어 조리된 냉면은 모두 진주냉면이라 할 수가 있다.

필자는 진주냉면을 재현하기 위해 지난 그 흔적을 찾기 위해 진주는 물론 의령. 함안 까지 취재를 다녔다.

의령에는 진주기생을 하셨던 분이 여인숙을 운영하고 있어서 진주냉면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필자는 이 내용을 가지고 2000년 6월쯤 신안동에 있는 갑을가든에서 진주냉면 마지막 조리사 3명과 진주냉면 맛을 보았다고 하는 진주의 원로들을 모시고 진주냉면을 재현했고 이사실이 KBS 뉴스에 보도되었다.

이 후 전국의 각 언론매체에 진주냉면이 기사화 했지만 진주에서 진주냉면을 맛 볼 수 없어 필자에게 문의를 거듭했지만 특별한 대안이 없어 2005년 서부시장에서 친정어머니 황덕이씨를 모시고 부산냉면을 하던 '부산식육식당'주인인 하연옥 여사를 찾아가 진주냉면을 할것을 권하고 만약 진주냉면을 하면 레시피를 줄테니 간판도 변경하라고 하여 이 때부터 진주냉면집을 하게 되었다.

필자는 약15일간 육수 뽑는 것은 물론 냉면 이미지까지 지도를 해 진주냉면 장사를 하게 되었고, 당시 필자는 방송활동을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KBS, MBC, SBS 등 각 매체에 진주냉면을 알리는 데 홍보까지 앞장서게 되어 오늘날의 진주냉면이 전국에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것이다.

지금 진주에서는 여러 냉면 집들이 자신들이 원조인양 내세우고 교방 음식 등을 주장하며 근거 없는 상업적 주장을 하는데, 이는 오히려 진주 음식을 왜곡시키는 잘못된 일이라 하겠다.

김영복 식생활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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