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올벼의 지혜, 2세대 빠르미로 이어지다

  • 오피니언
  • 목요광장

[목요광장] 올벼의 지혜, 2세대 빠르미로 이어지다

김영 충남농업기술원장

  • 승인 2025-06-18 09:50
  • 신문게재 2025-06-19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목요광장)김영 충남농업기술원장
김영 충남농업기술원장
쌀은 고구려 안악 3호 고분 벽화 속 시루에 밥을 짓는 모습을 통해 그 오랜 역사를 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화폐로 쓰이면서,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고, 백성들의 배고픔을 달래준 소중한 생명의 원천이었다. 조선왕조실록 등 옛 문헌에는 기근과 흉년으로 쌀이 부족해 고통받던 백성들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지금은 농업기술의 발전으로 대다수 사람이 맛있는 쌀밥을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쌀은 오랜 세월 우리 곁을 지켜온 든든한 동반자였다.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소중한 쌀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넉넉히 얻기 위해 '올벼'라는 조생종 벼를 재배했다. 추수 전에 일찍 익는 벼를 베어 밥을 짓거나, 제사상에 올리거나, 흉년과 기근에 대비해 올벼를 심었던 것이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중부지방에서는 5월 초에 심어 8월 말에서 9월 초에 수확한다. 벼의 이삭의 80~85%가 익었을 때 수확해 가마솥에 찌고 말려 도정한 올벼는 일반 쌀보다 알이 단단하고 완전미율이 높으며, 찌는 과정에서 쌀겨 영양소가 쌀알 속으로 스며들어 건강식으로도 각광받았다. 올벼 첫 수확은 한 해 풍요를 기원하는 농촌의 큰 행사였고, 올벼는 단순한 조기 수확 작물을 넘어 농업인에게 희망의 상징이었다.



빠른 수확과 풍요를 바랐던 옛 농부들의 지혜는 오늘날 첨단 농업기술과 만나 새로운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육종 기술의 발전으로 '빠르미'와 '2세대 빠르미' 같은 초조생종 벼 품종이 개발된 것이다. 충남농업기술원이 2018년 개발한 빠르미는 이름 그대로 '빠르게 여무는 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보통 벼는 생육 기간이 130일이지만 빠르미는 약 80여 일로 매우 짧아 봄에 심으면 여름에, 여름에 심으면 가을에 수확할 수 있다. 따라서 장마와 태풍을 피해 수확할 수 있고, 원예작물과 이모작·삼모작도 가능해 시설하우스에서 수박, 빠르미, 오이까지 연달아 재배하는 삼모작 성공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빠르미 장점은 빠른 수확 시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후속 품종인 '2세대 빠르미'는 누룽지 향이 나는 '빠르미 향'과 '빠르미2'를 포괄하는 이름으로, 기존 빠르미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밥맛과 재배 안정성을 한층 높였다. 아밀로스 함량이 11.6%로 낮아 밥이 찰지고 맛이 뛰어나며, 도열병에 강하다. 또한 생육 기간이 짧아 농업용수 사용량을 50% 이상, 질소비료 사용량은 10% 이상 줄일 수 있어 생산비와 농약 사용을 절감하고, 친환경 농업 실현에도 크게 기여한다. 7월 하순이면 수확이 가능해 기존 조생종보다 한 달 이상 빠른 햅쌀 출하가 가능하다.



2세대 빠르미의 친환경 가치와 기후위기 대응 효과는 환경부에서도 인정받았다. 2024년 전국 8,655개 사례 중 단 4건 선정된 '기후위기 적응 대책 지자체 우수사례'에 2세대 빠르미가 포함된 것이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온난화 지수가 28배나 높아 농업 분야 온실가스 감축이 시급한데, 2세대 빠르미는 생육 기간 단축과 물 절약을 통해 메탄 발생을 36% 이상 줄이는 효과가 입증됐다.

2세대 빠르미가 이끄는 한국 쌀 농업의 미래는 과거와는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여름에 하루 놀면 겨울에 열흘 굶는다'는 속담처럼, 부지런함이 곧 생존이었다. 이제는 빠르미와 같은 혁신 품종 덕분에 일반 벼보다 한 달 일찍 수확해도 겨울 내내 든든한 쌀밥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예로부터 '쌀독에서 인심난다', '밥이 보약이다'라는 말이 있다. 쌀이 넉넉해야 마음의 여유와 따뜻한 정이 생기고, 든든한 밥 한 끼가 건강의 바탕이 된다는 뜻이다. 2세대 빠르미와 같은 혁신 품종은 농업인의 땀과 정성이 더해질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쌀독에서 인심이 넘치고, 건강한 밥상이 이어질 때 우리 사회도 더욱 따뜻해진다. 올해도 2세대 빠르미와 함께 풍요와 희망이 무르익기를 기대한다./김영 충남농업기술원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법원, 정차 차량 들이받고 도주한 40대 여성 '징역 1년 6월'
  2. 천안시의회 박종갑 의원, 경로당 안마기기 구매 과정 점검 필요성 제기
  3. 천안시의회 노종관 의원 대표발의, '천안시 지역생산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본회의 통과
  4. 국립한밭대 교수 연구팀, 데이터센터 설비인프라 연구 성과 입증
  5. 행복청, 2026년 4월 중앙동 전진 배치...행정수도청 시동
  1. 충남콘텐츠진흥원 지원기업, 데이터 창업대회 대통령상 쾌거
  2. 대전·충남 행정통합 탄력받나… 李대통령 "모범적 통합" 언급
  3. 백석대 상담대학원, 서울보호관찰소와 교류협력을 위한 업무협약 체결
  4. 교실 CCTV 설치 근거 생길까… 법사위 심의 앞두고 교원단체 반발
  5. 연암대 연합팀 '7DO', 충청·강원권 공유·협업 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 대상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탄력받나… 李대통령 "모범적 통합" 언급

대전·충남 행정통합 탄력받나… 李대통령 "모범적 통합" 언급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하면서다. 김태흠 충남지사와 이장우 대전시장은 이 대통령의 긍정적 반응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며 행정통합 법안 처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5일 충남 천안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첨단산업의 심장, 충남의 미래를 설계하다'라는 주제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5극 3특' 체제를 거론하며 "지역 연합이 나름대로 조금씩 진척되는 것 같다"면서도 "협의하고 협조하는 수준이 아니라 대규모로 통합하는 게 좋다고 생..

충남도, 당진에 2조 원 규모 `AI데이터센터` 유치
충남도, 당진에 2조 원 규모 'AI데이터센터' 유치

충남도가 2조 원 규모 AI데이터센터를 유치했다. 김태흠 지사는 4일 도청 대회의실에서 오성환 당진시장, 안병철 지엔씨에너지 대표이사, 정영훈 디씨코리아 대표이사와 당진 AI데이터센터 건립을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르면, 지엔씨에너지는 당진 석문국가산업단지 내 3만 3673㎡(1만 평) 부지에 건축연면적 7만 2885㎡ 규모로 AI데이터센터를 건립한다. 이를 위해 지엔씨에너지는 디씨코리아 등과 특수목적법인(SPC)을 구성하고, 2031년까지 2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지엔씨에너지는 이와 함께 200여 명의 신규 고용..

11월 전국 민간아파트 평당 분양가 2797만 원 달해
11월 전국 민간아파트 평당 분양가 2797만 원 달해

전국 민간아파트 ㎡당 평균 분양가가 사상 처음으로 800만원을 넘어섰다. 평당(3.3㎡) 분양가로 환산하면 2797만 원에 달했다. 5일 리얼하우스가 청약홈 자료를 분석한 결과, 11월 전국 민간아파트 ㎡당 평균 분양가격은 827만 원이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고치로 1년 새 6.85% 올랐다. 전국 ㎡ 당 분양가는 지난 2021년 530만 원에서 2023년 660만 원으로 오른 데 이어 2024년에는 750만 원까지 치솟았다. 올해 들어 상승 흐름은 더 빨라져 9월 778만 원, 10월 798만 원, 11월 827만 원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 ‘추울 땐 족욕이 딱’ ‘추울 땐 족욕이 딱’

  •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