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내용이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영상위주였다. 그때까지 발명된 과학기술, 현미경이나 망원경으로 잡은 그림이었다. 가시적인 것 밖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우리는 너무 작은 것, 너무 크거나 원거리에 있는 것은 볼 수 없지 않은가? 영상 하나하나가 놀랍고 환상적이었다. 심지어 예술의 창작이란, 창작이 아니라 신이 이미 다 창조해 놓은 것에서 발굴해 내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심리적으로 몹시 위축되었던 것이다.
지난세월 열악한 환경이라 자조 하며 살았다. 돌이켜 보면, 나름 많은 혜택이 주어졌음을 깨닫게 된다. 그때그때 받아들이지 못하고,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안경, 돋보기, 현미경, 망원경 등은 이미 체험한 것들이다. 감탄만 했지, 호기심도 갖지 못하고 상상도 하지 않았다.
광학기기가 발견되기 훨씬 전에 사람은 '천리안'을 상상했다. 천리 밖의 사물도 볼 수 있는 시력이란 뜻이다. 그런 시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의 의미로도 사용한다. 고사성어집에 의하면, 양일이란 사람이 29세에 지방 현감으로 부임했다. 향리들 부정부패가 만연한데 모른 척 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었다. 곳곳에 몰래 첩보원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정보가 확인되자, 탐관오리를 모두 잡아들여 처벌한다. 이에 사람들이 "현감 어른은 천리안이다. 방 안에서 천 리 밖을 내다보는 사람이다"라 말했다 한다. 그 이전에 천리안이란 말이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상상과 꿈이 각종 광학기기의 발명으로 실현된 것이다.
필자는 감흥으로 아무런 상상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추상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 ~ 1944)는 달랐다. 허정아 저 <몸, 멈출 수 없는 상상의 유혹>에 의하면, 1935년 〈콘크레이션〉지에 다음과 같이 극미세계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쓰고 있다.
"육안이나 현미경 또는 망원경을 통해 보여지는 모든 사물 속에 내재된 숨겨진 영혼을 경험하는 것이 소위 '내면적인 눈'이다. 이러한 눈은 딱딱한 표면, 외부 형태를 침투해 사물 안으로 깊이 들어가 우리로 하여금 모든 감각을 통해 내면의 맥박소리를 느끼게 한다."
정신적 내면세계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련만, 안을 들여다보며 실제 내면의 세계에 대하여 느낀 놀라움의 소산이리라.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란 깨달음이다. 실제 모습보다는 형태와 선, 색채만의 표현을 연구한다. 음악, 철학, 미술이론을 심도 있게 탐구하여 추상예술의 이론 정립에 큰 역할을 한다. 김영은 저 <미술사를 움직인 100인>에 의하면, 추상회화가 주는 감동을 음악에 비유해 표현하기도 한다. "색채는 건반, 눈은 공이, 영혼은 현이 있는 피아노이다. 예술가는 영혼의 울림을 만들어 내기 위해 건반 하나하나를 누르는 손이다."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려면 여느 성공 비결과 다르지 않다. 자신, 사람, 자연과 사물, 매사에서 화두를 이끌어내야 한다. 해답을 얻거나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요령이 있을 수 없다. 선승처럼 용맹정진 하진 않더라도 간절히 참구해야 한다. 목표설정이라 할 수도 있다. 예측 가능하고 명확해야 한다. 환경, 관계 등 무수한 조건이 있겠지만 생략하자. 다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열정, 집념, 끈기(꾸준함, 지속성)로 추구하고 실천해야 한다.
몰라서 못사는 사람 없듯이, 알지 못해 창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자강불식(自强不息)이다. 스스로 강하게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쉬지 말자 다짐한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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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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