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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광 원장 |
중국이 더욱 무서운 것은 기술력뿐만 아니라 연구 역량도 탁월하다는 것이다. 글로벌 과학 연구 역량을 평가하는 '네이처 인덱스 2025' 순위에서 중국 대학·연구기관은 중국과학원 1위를 포함해 상위 10위 안에 8곳이 오른 것이 이를 방증한다. 중국의 과학 굴기는 공교롭게도 한국에서는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바둑 대국에서 4승 1패로 이겨 AI 신드롬이 일던 2016년 이후 본격 궤도에 올랐다.
도대체 지난 10년간 중국과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중국의 과학 정책은 R&D 투자 대폭 확대, 반도체·AI·로봇·양자기술 등 핵심 산업 및 전략기술 집중 육성, 기초과학 투자 확대 등 외견상으로 우리의 정책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와 비슷해 보이는 정책이 다른 효과를 낼 수 있던 것은 중국은 공산당 1당 지배 체제로 정책을 오랫동안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6년 이후 10년간 4번째 정부가 들어설 만큼 정치가 불안하여 정책이 지속되기 어렵다.
양국 과학 정책의 효과가 차이 나는 또 다른, 어쩌면 근본 원인은 과학 영재를 대하는 사회적 시각차와 한국 학생들의 의대 진학 선호 경향이다. 우리나라도 한때 과학자가 가장 선망의 대상이던, 서울대 물리학과의 합격점이 가장 높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국 각지의 의과대학이 서울대 공대보다 먼저 정원을 채우는 의대 쏠림 현상이 있을 정도다. 최상위권 학생이 공대를 선택하면 주위에서 이상하게 볼 정도이니 지적 호기심이 높은 과학 영재마저도 적성과 무관하게 의대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자연 계열을 졸업해 박사, 포스닥 후에도 취업을 못 하는 청년이 지천인 세상이다. 요행히 30줄에 대기업에 취업한다 해도 50대 중반에 얼마의 명퇴금을 받고 내쫓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에 의사는 의대 입학 정원 문제로 수급이 어려워 거의 100% 취업하고, 정년이 따로 없으며 연봉도 훨씬 많다. 나라도 자식의 성적이 되면 의대에 진학하라고 하지 않겠는가.
중국과 한국의 과학 인재 육성 정책의 가장 큰 차이는 엘리트 교육의 수용성 여부이다. 천재는 타고 난다는 말이 있는데, 중국은 이를 철저히 과학 인재 양성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중국은 12~15세의 수학·과학 영재를 조기에 발굴하여 명문대에서 대학 수준으로 집중교육을 시킨다. 잘하면 고등학교를 거치지 않고 대학에 조기 입학할 수도 있다.
한국도 영재학급과 영재교육원을 운영하고 있으나, 학교 내 수학·과학 심화학습 또는 주말·방학 수업이라 한계가 있다. 과학고등학교, 과학영재학교도 운영하고 있으나, 일반 입시 과정을 거쳐야 대학에 진학하므로 과학 영재 특화 교육이 어렵고, 결국 의대에 진학하는 루트로 많이 활용된다.
20여 년 된 이 낡은 정책으로는 AI 시대, 14억 인구와 강력한 정책으로 과학 천재를 찍어내는 중국을 이기기 어렵다. 중국의 국제올림피아드 입상자는 고교를 건너뛰고 바로 대학 입학 자격을 부여받는데, 우리나라는 2010년 이후 스펙 쌓기 방지 명분 아래 수상 실적을 대학입시에 반영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중국 과학 영재 육성 정책의 백미는 대학에 조기 입학한 학생들이 사회적·심리적 부적응 문제를 겪지 않도록 또래 영재끼리의 집단 학습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한국도 과거 소년 과학 천재가 대학 조기 입학을 시도했으나 제도적 한계로 좌절한 적이 있는데, 그 이후 새로운 과학 영재 정책은 찾아볼 수가 없다.
미국과 중국은 지금 AI,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치열한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두 거인 사이에서 경쟁해 살아남아야 하는 작은 나라, 대한민국의 미래는 과학 영재에 달려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들을 육성하는 새판, 새 틀을 짜야 한다./양성광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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