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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진 교수. |
배가 아프면 아버지는 어디서 꺼내왔는지 정체 모를 마른 나뭇가지를 달여 내게 먹였다. 또 외양간 일소가 탈이 나기라도 하면 그것을 쇠죽에 넣어 끓여 주셨다. 그러면 아픈 배는 신통하게도 금방 평온을 되찾고, 주저앉았던 소는 기운을 되찾았다. 한참 뒤 알고 보니 그것은 놀랍게도 말린 양귀비 가지였다. 또 아버지는 해마다 대마를 길러 어머니는 삼을 삼고 겨울밤 내내 베틀에 앉아 베를 짰다. 베를 짜 궁벽한 형편에 가용할 돈을 마련하던 당신은 당신이 짠 삼베옷을 입고 이승을 뜨셨다. 지금 같으면 마약법에 걸리고도 남을 아찔한 일들이다.
대마는 인류가 재배한 가장 오래된 식물 중 하나다. 삼베의 재료이기도 한 대마의 줄기는 돛, 밧줄, 옷감 등 직물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부터 대마로 종이를 만들었는데 내구성이 양피나 파피루스보다도 훨씬 강하다고 한다. 대마의 씨앗은 물론 식용 기름의 원료로 사용되었다. 기억에 의하면 대마 껍질을 벗기기 위해 끓는 물에 쪄내기 전 잎과 꽃은 쳐내곤 불태워버렸다. 이 잎과 꽃에서 환각성 약성이 나온다 한다. 대마는 20세기 초 불법화되기 전까지 약용, 식용, 기호품으로 사용되었다.
이장희, 윤형주, 신중현, 김세환, 김정호, 김추자, 장현, 조용필 등등 이루 헤아리기 벅찬 전설적인 가수들이 줄줄이 대마초 흡연으로 잡혀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까닭인지 대마초를 피우지 않는 가수는 가수도 아니라는 말까지 떠돌았다. 또 이때 대마초를 악마화하는 홍보영상이 제작되기도 했다. 영상은 환각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육체와 영혼을 병들게 만들어 폐가망신하고 목숨을 잃는 종류의 것이었다. 대마초는 박멸해야 할 뿔 달린 공산당과 동급이다. 대마초 흡연을 국가를 망치는 반사회적 범죄로 여긴 박정희 정권은 대마 관련 범죄를 사형이나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하는 대마초관리법을 제정하기 한다.
유현의 〈대마를 위한 변명〉에 따르면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미국은 대마 관련 산업이 번창한 나라였다. 그런 미국이 대마 박멸에 앞장선 이유는 화학섬유 회사 듀퐁과 목재펄프 사업에 뛰어든 신문 재벌이 대마 직물과 펄프 산업을 퇴치해야 했기 때문이다. 거대 자본의 로비로 제정된 마리화나 세금법의 목표는 재배금지는 물론이고 마리화나를 불법화하는 데 있었다. 보수정치인과 거대 자본권력은 마리화나를 인종주의적 악습과 매카시즘으로 덧칠해 박해의 명분을 삼았다.
박정희 정권의 대마초 불법화 정책은 대한민국을 병영국가로 만들겠다는 발상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의 거대 자본이 주도한 대마 불법정책 영향력 탓이 컸다. 첨언하자면 예술가나 연예인이 대마초나 알코올 같은 환각성 물질에 탐닉하는 이유는 믿거나 말거나 엑스터시 상태가 감각을 예민하게 하고 디오니소스적 사태에서 창조적 상상력의 나래가 비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적 창조력과 엑스터시의 관련성에 대해 실험한 발터 벤야민은 해시시에 도취된 상태에서 애드가 앨런 포를 더 잘 이해했다고 보고한다. 암튼 6월의 옛날 그때라면 지금쯤 너른 밭에는 창기병처럼 도열한 키 큰 대마가 푸른 물결처럼 군무를 출 것이다.
김홍진 한남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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