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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기술사업화실장 |
21세기 우주는 탐구, 안보를 넘어 이제 하나의 경제 분야로 성장해 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은 우주를 미래의 신산업 중심지로 보고 천문학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으며, 수많은 민간 기업과 스타트업이 우주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이 같은 전환의 핵심에는 바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는 강력한 혁신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창조적 파괴는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가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기술과 구조가 그 자리를 대체함으로써 경제가 성장한다고 설명한다. 슘페터는 이를 자본주의 발전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최근 관련 이론은 더욱 정교하게 발전하고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 필리프 아기옹은 창조적 파괴는 생산성과 고용을 동시에 증가시키며, 혁신의 지속성이 장기 성장의 관건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의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개념은 기존 기업이 고가·고수익 시장에 집중하는 사이, 새로운 기업이 저비용·저사양 전략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해 기존 시장을 대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최근 우주산업에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의 SpaceX다. 과거 로켓은 일회용이었고 발사 비용은 수천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SpaceX는 팰컨9 발사체에 재사용 기술을 도입하며 발사 서비스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췄고, 이는 전통적 우주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SpaceX는 '스타십'(Starship)이라는 초대형 완전 재사용 로켓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스타십은 발사체 전체를 재사용하며, 한 번에 최대 100t 이상의 화물을 실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출 것으로 기대된다. 스타십이 최종적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되면, 발사 서비스 시장에 또 다른 차원의 창조적 파괴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사례는 소형 및 초소형 위성 기술의 발전이다. 과거 수천억 원이 들던 대형 위성과 달리 최근의 소형 및 초소형 위성은 적은 비용으로 제작이 가능하다. 또 단독이 아닌 군집 형태로 운영되어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발전하고 있다. 통신, 지구관측, 기상, 해양 감시 등 각기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소형 위성들이 수십~수천 기 단위로 동시에 궤도에 진입하면서, 기존의 단일 위성 중심 구조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이는 저비용·고효율이라는 파괴적 혁신의 전형이며 위성 제조, 발사, 운영의 전반적인 구조를 혁신하고 있다. 상업 우주정거장 및 우주제조, AI 기반 위성운영 및 활용, 저궤도 우주관광 등도 기존 우주경제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 우주분야에서도 창조적 파괴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누리호의 성공적인 발사, 소형 위성 기술의 진보, 민간 우주 스타트업들의 등장 등은 긍정적인 신호다. 그러나 창조적 파괴를 통한 진정한 혁신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필요한 부분들이 있다. 우선, 재사용 발사체를 포함한 혁신적이고 경쟁력 있는 다양한 발사체 확보가 필요하다. 이는 우주경제 혁신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에 해당한다. 이를 위해 정부의 R&D 투자뿐 아니라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가 유도되어야 한다. 또한 소형 및 초소형 위성 개발을 위한 생태계가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 공공 및 민간에서 기업, 대학, 연구기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압도적인 수요 창출이 필요하다. 한편, 벤처 투자 등 다양한 투자 확대와 전문 인력 양성,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 조성 등을 통해 혁신 활동을 활성화해야 한다.
창조적 파괴는 단기적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 체제를 흔드는 불편한 과정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지속 가능한 우주경제는 가능하지 않다. 필리프 아기옹은 "창조적 파괴 없는 경제 성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이 우주경제 선도국으로 도약하려면, 창조적 혁신이 활발하게 작동하는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박정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기술사업화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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