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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
최근 이재명 정부가 지방 거점 국립대 3곳을 선정해 연간 1000 억원씩 집중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의 첫 실행이다. 필자는 이 정책이 과거의 대학 통폐합이나 현재의 글로컬대학 사업과는 출발점이 다른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은데, 독자들은 어떠실지. 접근의 단초는 통폐합해서 효율성을 올리겠다가 아니라, 지역대학을 세계수준으로 키워 지역 균형 발전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정책 방향이 다르니 평가의 잣대도 달라져야 될텐데, 우리 대학정책 관계자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지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대학 정책의 변천사를 보면, 1980년대 전두환 정부는 국립대 설립을 전국으로 확대했고, 이후 저출산과 재정 현실화로 이명박 정부에서는 난립한 국립대 통폐합을 통해 효율화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 당시의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글로컬대학 사업으로 통폐합 효율화를 위한 재정지원을 약속했고, 이 사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 사업에서 평가지표에서 지역산업과의 혁신 연계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계속된다.
확대-통합-혁신이라는 순환 구조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영국도 전후 산업화 수요를 위해 대학을 대거 설립했다가 1980년 마거릿 대처 수상 주도로 구조조정을 거쳤다. 현재는 지역 혁신 클러스터의 핵심으로 대학의 역할을 재정의하였다. 미국 역시 전후 GI Bill법안 실행 이후 급팽창한 대학 체계를 주(州)차원에서 주립대 조정·통폐합하고, 최근에는 대학의 역할을 지역산업의 앵커 기관(Anchor Institution)으로 활용하는 흐름을 밟아 왔다. 우리의 궤적과 닮아 있는 듯하다. 그러나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신라는 차치하고도 고려-조선 1000년 이상의 중앙집권을 유지해 온 나라다. 지금도 부동산·소득·의료·교육 인프라에 이르기까지 서울과 지방 사이의 격차는 OECD 국가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현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에 일부 공감되는 면도 있다. 거기에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이라는 뿌리 깊은 집단적 욕망은, 단순한 재정·인구 문제를 넘어 사회 구조적 문제로 심화되어 있다. 사교육비 지출 규모는 이런 구조적 불안을 반영하는 대표적 지표다. 더 많은 사교육은 더 큰 수도권 집중으로 이어지고, 이런 고착된 악순환은 쉽게 끊어질 기미가 안 보인다. 더 불편한 진실은 국가 균형발전을 외치는 위정자들의 부동산 투기, 자녀 위장전입, 입시 특혜 의혹은 반복적으로 불거져 왔다. 공적 언어와 사적 행동이 충돌하는 이 장면은, 아무리 정교한 정책도 그것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의 철학이 개인적 이익에 머문다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을 여실히 시사한다.
뽀롱이는 조급한 판단에 희생되었다. 위협이라고 단정한 순간, 가능성은 닫혔다. 반면 늑구는 기다림과 절제, 그리고 살려내겠다는 의지 덕에 돌아왔다. 지역균형이나 지방대학도 마찬가지다. 조바심에 자녀를 수도권으로 밀어 올리고, 단기 성과에 쫓겨 예산을 흩뿌리고, 내 자식·내 지역구·내 자산만 챙기는 선택들이 쌓일 때, 지역은 소리 없이 무너진다. 대학은 지역의 미래를 담는 그릇이다. 하지만 그 그릇이 제 역할을 하려면 제도보다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이 있다. 뽀롱이를 죽인 것도 늑구를 살려낸 것도 사람의 마음가짐이며 태도였다.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대학문제도 다르지 않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든 우리가 어떤 철학과 태도를 취하느냐가 결과를 바꾼다.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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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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