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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홍 전 이천시 공무원 |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쌀과 도자기, 온천의 고장이었던 작은 도시가 자랑스런 글로벌 그룹 SK 하이닉스가 자리를 잡으면서 지역 경제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2024년 SK 하이닉스는 매출 66조 원, 영업이익 23조 원이라는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경신하며 대한민국 경제의 기둥이 되어 세계 반도체 매출 4위, D램 부문 세계 1위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현재 SK하이닉스 이천 단지는 협력사를 포함해 3만여 명의 가족이 터전을 잡으며, 9년(2016년~2024년)간 이천시에 납부한 지방세는 1조 4천억 원 이다.
이런 과정에 법규의 벽 앞에서 '안된다'고 말하는 대신, '어떻게든 길을 찾아보자'고 마음먹었던 어느 계장과 말단 공무원의 긍정적인 생각이 이천의 미래,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을 거슬러 이천 군청의 최하위직이 공장 인허가 담당자였던 1993년 9월 현대전자산업(주)의 총무과장이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왔다. 그는 "공장을 더 지어야 하는데, 허가된 건축면적이 너무 작다며 증설할 방법이 없느냐고 문의했다.
하지만 당시 시행된 수도권정비계획법과 공업배치법은 이천과 같은 수도권 자연보전권역 내 공장 증설을 철저히 규제되어 있었다. 현대전자는 법 시행 전 이미 법적 상한을 훨씬 초과하는 면적을 허가 받아 '단 1평'의 부지나 건축면적도 늘릴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당시 법의 테두리 내에서 공무원으로서 할 수 있는 대답은 "불가능합니다" 뿐이었다. 하지만 담당 계장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법이 부지면적과 공장건축면적을 묶었지만 허가된 부지 안에서 공장건물 면적만 늘리는 건 어떨까?'. 그것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한 줄기 빛과 같은 역발상을 현대전자에 전달해 건설부에 직접 질의를 제안할 것을 주문했다.
이후 회사측은 1994년 1월 상기된 얼굴로 다시 군청을 찾아와 건설부로부터 '가능 하다'고 명시된 회신문을 들고 왔다. 당시 이천 공업지역의 용적률 은 300%까지 가능하여 필요한 건축 면적 설계 계획서를 가져 와라고 전했다.
회사는 기존 공장 건축면적 (517,187㎡(15만6천여 평)의 1.5배가 넘는 788,693㎡(23만8천여 평)의 건축면적을 추가 승인을 요청해 검토한 이후 총 1,305,880㎡(39만5천여평)확보했다. 이 결정이 30년 후 대한민국 반도체 신화의 운명이 될 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
만약 담당 공무원이 법령만 내세워 '불가'라는 답변만 반복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훗날 SK가 하이닉스 인수를 검토할 때, 약 40만㎡의 M14 공장과 약 50만㎡의 M16 공장을 지을 수 있는 '건축면적'이 없었다면 투자는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 2006년 하이닉스는 구리 성분 규제라는 또 다른 벽에 막혀 증설이 좌절될 뻔했고, 이천시민 1만여 명이 궐기대회를 열고 하루에 관광버스 100여대에 3,000여명의 시민들이 동참하여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와 과천종합청사에서 정부를 상대로 시위를 하고, 시민 1천여 명이 삭발시위를 하며 3년간 눈물로 저항한 끝에 승낙을 받아 냈다.
이런 시민의 노력으로 하이닉스가 매물로 나왔을 때, 인수를 검토하던 SK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마지막 확인을 위해 이천시청을 찾아왔다. 20년 전, 말단 주무관 시절 해결했던 희망 씨앗이 떠올라 자신 있게 대답했다.
돌이켜 보면 지역의 발전과 국가의 미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닌, 일선 공직자들의 마음가짐의 업무가 글로벌 회사로 성장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 오늘날 지역 경제 발전에 초석이 되었다.
한편 말단 공무원은 "현재 이천시 간부 공직자들도 더 많은 기업을 유치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 민원처리를 적극 처리하는 동료들을 격려하며, 소신 있는 민원처리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후배들을 응원했다. 이천=이인국 기자 kuk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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