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 낡은 지도가 품은 보물 '원도심 골목길'

  • 오피니언
  • 전문인칼럼

[전문인칼럼] 낡은 지도가 품은 보물 '원도심 골목길'

이상호 대전사회혁신센터장

  • 승인 2025-10-12 11:03
  • 박병주 기자박병주 기자
이상호 대전사회혁신센터장
이상호 대전사회혁신센터장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는 늘 동무들과 뛰어놀던 골목길이 있다. 좁고 구불구불한 그 길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이웃 간의 소소한 정이 오가던 따뜻한 공동체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시의 현대화로 인한 팽창과 재개발 속에서 수많은 원도심 골목길은 사라지거나 잊혀졌다. 효율과 속도만이 미덕이 된 시대에 골목길은 '낙후된 공간'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단언컨대, 원도심 골목길이야말로 현대 도시가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고 공동체 문화를 담아내며,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중요한 열쇠라고 믿는다. 특히 도시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응축된 원도심 골목길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품은 보물창고와도 같다.

최근 대전사회혁신센터가 추진하는 '도시산책' 프로젝트는 이러한 원도심 골목길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대전시민과 함께 도시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매우 고무적인 시도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물리적 환경 개선에만 초점을 맞추는 기존의 도시재생 방식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이야기'와 '사람'을 중심으로 골목길의 가치를 재정의하는 데 있다. 오래된 건물 하나, 낡은 간판 하나에도 세월 흔적의 역사가 깃들어 있고, 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도시산책'은 바로 이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하고, 스토리텔링을 통해 원도심 골목길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성공적인 원도심 골목상권 활성화의 출발점은 그 공간이 지닌 고유의 가치를 찾아내고, 그것을 매력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데 있다. 센터의 '도시산책' 프로젝트는 본질적 맥락을 명확히 식별하고 단순히 오래된 골목을 걷는 행위를 넘어, 그곳에 얽힌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건축물의 비밀, 혹은 수십 년째 한자리를 지키는 노포의 애환 같은 무형의 가치들을 콘텐츠화한다. 이는 원도심 골목길을 공간과 공간을 잇는 단순한 통로가 아닌, 이야기가 있는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방문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재방문을 유도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일례로 특정 골목길에 숨겨진 예술가들의 작업실이나 갤러리를 묶어 '예술가의 길'이라는 테마를 부여하거나 대를 이어온 맛집들을 연결해 '미식 투어' 코스를 개발하는 식이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 아날로그 감성을 찾아 떠나는 '출사 여행', 원도심의 다양한 감성 공간을 담아낸 '원도심 골목길 가이드북' 제작 아이디어는 모두 이러한 스토리텔링 기반의 접근법을 보여준다. 이는 방문객이 골목길을 단순한 소비 공간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특별한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도시산책'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시민이 주체가 되는 참여형 재생'을 프로젝트의 핵심 동력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가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원도심 골목길의 가치를 발굴하고, 이를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도록 지원한다. 이는 시민을 도시 변화의 단순한 수혜자가 아닌 능동적인 '주체'로 성장시키는 중요한 과정이다.

상상해 보라. 스마트폰 대신 직접 지도를 들고 친구들과 함께 원도심 골목길의 숨은 벽화나 오래된 간판을 찾아다니는 모습. 혹은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함께 옛이야기를 들으며 인생 선배들의 삶의 지혜를 공감하는 모습을 이러한 경험은 개인의 추억을 넘어, 도시 전체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여기에 시민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해지면서 원도심 골목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이 담긴 '이야기 공간'으로 끊임없이 진화한다. 실제로 GPS를 연동한 '스마트 골목여행 앱'이나 노포의 역사를 담은 책자 제작은 시민들의 아이디어가 구체적인 결과물로 이어진 훌륭한 사례이다. 이처럼 시민의 참여는 원도심 골목길에 활력을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궁극적으로 도시산책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가치는 단순한 관광 활성화를 넘어 빠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느림의 미학'과 '아날로그적 감성',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관계'를 원도심 골목길에서 되찾고자 하는 것이다. 골목길은 사람들의 삶이 녹아들어 공동체가 형성되고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는 복합적인 공간이다.

물론 원도심 골목상권 활성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본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대규모 상업 공간에 맞서려면 골목길만의 독특한 매력과 진정성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도시산책과 같은 프로젝트는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시민들의 꾸준한 관심과 참여를 바탕으로 골목길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확산되는 '커뮤니티 기반의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대전사회혁신센터의 '도시산책'은 바로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혁신적 시도이다. 원도심의 잠재력을 깨우고, 시민과 함께 도시의 미래를 그려나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대전의 원도심 골목길이 다시금 생명력 넘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그곳에서 우리 모두가 잃어버렸던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낡은 지도 속에 펼쳐진 우리들의 기억 속 원도심 골목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리고 그 골목길을 따라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담고 싶을까? /이상호 대전사회혁신센터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맛있는 여행] 116-연꽃이 아름다운 관곡지(官谷池)의 건강한 밥상
  2. 대전시 국방 과학수도 날개단다
  3. [편집국에서]대한민국 축구와 민선9기 대전시
  4. 청사·예산 논란 커지는데… 중수청 준비단 '소통 부재' 도마 위
  5. 충남대·국립공주대 통합 평행선… 지도부 결단 리더십 필요
  1. 통합 국군사관학교 창설되는 대전 국방반도체 육성도 탄력
  2. "논쟁 휘둘려 기회 놓치면 안돼"…연내 특별법 제정 역량결집 시급
  3. [현장취재]크리스천리더스클럽, 제주헤리티지로 비전트립 다녀오다
  4. 정부 공공기관 이전 앞두고 민선 9기 대전시 역량 시험대
  5. [르포] 반납 대신 방치... 대전 곳곳 타슈 이용질서 무너졌다

헤드라인 뉴스


개최 1년 앞둔 충청 하계 U대회 `사중고` 휩싸이나

개최 1년 앞둔 충청 하계 U대회 '사중고' 휩싸이나

충청 하계 세계대학경기대회(U대회)가 2027년 8월 1일 개막을 앞두고 사중고에 휩싸이고 있다. 주관 방송사인 JTBC의 경영 위기에서 비롯한 리스크부터 차갑게 식은 지구촌 스포츠 열기와 흥행 물음표, 충청권 4개 광역자치단체 예산 부담 가중, 수뇌부 사퇴 공식화 등이 줄을 잇고 있다. 충청권 4개 시 ·도가 2022년 U대회 개최지로 확정되는 순간부터 부각된 우려는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중앙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확대되지 않을 경우, 성과 없는 폐막이란 후유증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U대회 조직위는 지난 3월 189억..

한화, 불펜 흔들리고 중심타선 공백…후반기 전력 어쩌나
한화, 불펜 흔들리고 중심타선 공백…후반기 전력 어쩌나

후반기 반등을 노리는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전력에 경고등이 켜졌다. 불펜이 흔들리며 마운드 운영에 부담이 커진 가운데 새 외국인 투수를 영입해 선발진 재정비에 나섰지만, 중심타선마저 부상 악재를 맞으며 전력 운용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화가 후반기 첫 과제로 떠오른 숙제는 불펜이다. 키움 히어로즈와의 후반기 첫 4연전에서 리드를 지키지 못하는 장면을 반복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19일 경기에서는 8-1로 앞서던 승부를 지키지 못한 채 연장 11회 9-9 무승부로 마무리했다. 류현진의 한·미 통산 2500탈삼진이라는 대기록과..

충남문화관광재단 대표 인선 논란 증폭…박수현 지사 인사 잡음 잇따라
충남문화관광재단 대표 인선 논란 증폭…박수현 지사 인사 잡음 잇따라

박수현 충남지사의 취임 이후 인선을 둘러싼 잡음이 잇따르고 있다. 정무부지사 임명을 둘러싼 논란과 민선 9기 도정 첫 조직개편에 대한 비판에 이어 이번에는 충남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임용 절차를 놓고 노동조합이 특정 자격 미달 인사를 위한 '맞춤형 규정 개정' 의혹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면서다. 지역 시민사회에 이어 공직사회와 산하기관 노동조합까지 잇따라 인사와 조직 운영을 둘러싼 문제를 제기하면서 박 지사의 첫 인선 기조가 연이어 시험대에 오르는 모습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충남문화관광재단지회는 20일 성명을 통해 "충남도와 재단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함께 지킨 자유, 영원한 감사’ ‘함께 지킨 자유, 영원한 감사’

  • 전통시장에 바람이 솔솔…‘시원하게 장보세요’ 전통시장에 바람이 솔솔…‘시원하게 장보세요’

  • 장마 주춤한 사이 활짝 핀 개망초 장마 주춤한 사이 활짝 핀 개망초

  • 무더위 피해 서점에서 북캉스 무더위 피해 서점에서 북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