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가상과 현실의 경계 - 성진의 꿈과 디지털 페르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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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가상과 현실의 경계 - 성진의 꿈과 디지털 페르소나

노수승 대전문총회장/시인

  • 승인 2026-02-04 16:49
  • 신문게재 2026-02-05 19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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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승 대전문총회장/시인
지난 1월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 최대 IT 전시회인 'CES 2026'이 막을 올렸다. 임베디드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핵심 화두였다고 한다. 우리는 어느덧 가상이 현실이 되어가는 세계를 마주하며 살고 있다. 인공지능과 메타버스가 구축한 디지털 공간은 우리를 새로운 삶의 영역으로 유혹하고, 스마트폰 액정 속 세상은 이제 또 다른 자아의 거처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이름을 얻고 소통한다. 이러한 현상은 17세기 서포 김만중이 그려낸 『구운몽』의 세계관,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노래한 『한여름 밤의 꿈』과 묘하게 닮아 있어 놀랍다.

성진이 하룻밤 꿈속에서 양소유가 되어 누린 부귀영화는 셰익스피어의 연인들이 숲속 요정의 마법에 걸려 겪는 환상적 변주와 궤를 같이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꿈'은 인간의 억눌린 욕망이 투사되는 가상 공간의 시초였다. 현대인 또한 SNS라는 디지털 숲에서 현실과 달리 필터를 입힌 '부캐릭터'로 살아간다. 타인에게 노출하고 싶은 단면만을 골라 가상 공간을 장식하는 행위는, 성진이 팔선녀를 만나 세속의 번뇌에 빠져들고 셰익스피어의 주인공들이 환영을 쫓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지금 육신이 머무는 현실과 영혼이 떠도는 가상 사이에서 꿈을 꾸듯 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성진이 꿈속의 영화가 한낱 구름임을 깨닫는 순간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듯, 숲에서 깨어난 아테네의 연인들도 환상 너머의 진실을 마주한다. 가상의 신기로움에 머물기보다 우리가 호흡하는 실제 삶의 소박한 가치들을 돌볼 때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서포가 이 거대한 서사를 '우리 글'로 기록했다는 주체적인 문학 정신이다. 그는 "남의 나라 말을 흉내 내는 것은 앵무새의 짓"이라며 자국어로 된 진정성 있는 자기표현을 강조했다. 디지털 공간에서 다양한 페르소나로 활동하는 우리는 지금 진심 어린 자신의 언어로 소통하고 있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기술이 제공하는 화려한 외피에 가려 내면의 목소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포가 한글 소설을 통해 당대의 권위주의에 맞섰듯 우리도 디지털 권력 앞에 자주적이어야 한다. 진정한 문화적 가치는 기술적 구현보다 그 속에 담긴 인간다운 정체성에서 비롯된다. 생성형 AI가 인간의 상상을 대신해 서사를 써주는 시대지만, 성진이 양소유로 살았던 세월이 한 호흡의 꿈이었음을 깨닫는 장면은 여전히 우리에게 성취의 욕망에 대한 성찰을 주문한다.

디지털 공간의 '좋아요'가 현실의 갈증을 해결할 수는 없다. 서포는 육관대사의 입을 빌려 "꿈과 현실이 무엇이 다르냐"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가상 세계는 실은 현실보다 우리의 욕구가 더 솔직하게 드러나는 거울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페르소나로 노출되느냐가 아니라 그 뒤에 숨은 본연의 모습이다. 우리는 디지털이라는 풍요 속에 살아갈지라도 삶의 온기를 잃지 않아야 한다. 문학이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이유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서포의 문학 정신은 화려한 서사 속에서도 결국 인간다운 도리와 마음의 평안을 강조한다. 서포 문학의 본향인 대전에서 '서포문학축전'이 올해로 3년째 열린다. 시의적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상현실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되 그것이 내 삶의 주인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신적 빈곤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고전이 주는 울림에 귀를 기울여 봄직하다. 꿈에서 깬 성진의 미소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문화적 처방전이 아닐까.

노수승 대전문총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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