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새벽 산불, 그리고 무너진 나의 선입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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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새벽 산불, 그리고 무너진 나의 선입견

최성권 단양군 자치행정과장

  • 승인 2026-03-08 09:21
  • 이정학 기자이정학 기자

2026년 2월 23일 새벽 단양군 대강면에서 발생한 산불로 공무원 총동원령이 내려진 가운데, 민·관·군이 긴밀히 협력하여 약 6시간 만에 주불을 진화했습니다. 현장에서 체포된 치매 증상의 80대 노인 피의자를 경찰들이 따뜻한 차와 배려로 안심시키며 예우를 갖춰 대하는 모습은 현장 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번 사례는 차가운 법 집행 과정에서도 사람을 향한 온기가 전달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진정한 공권력의 가치는 책임감과 인간애에 있음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운전면허용 사진
최성권 단양군 자치행정과장
2026년 2월 23일 새벽 2시 37분. 요란한 재난안내문자가 잠을 깨웠다. 휴대전화의 진동과 경보음이 고요하던 새벽을 단숨에 깨뜨렸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부디 착오이기를.' 잠결에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곧이어 걸려온 전화는 냉정한 현실을 전했다. 대강면에서 산불이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상황실을 맡아달라는 요청이었다.

잠은 완전히 달아났다. 급히 옷을 갈아입고 군청으로 향했다. 아직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거리에는 차도 사람도 드물었다. 평소 같으면 고요했을 새벽이었지만 그날은 달랐다. 불길은 얼마나 번졌을지, 바람은 어떤지, 혹시 인명 피해는 없는지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군청 상황실에 도착해 CCTV 화면을 확인했을 때 불길은 예사롭지 않았다. 산 능선을 따라 번져가는 붉은 불빛이 화면 속에서 위협적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상황이 빠르게 공유됐고 새벽 3시 49분 전 공무원 총동원령이 내려졌다. 조용하던 군청은 순식간에 긴장의 공기로 가득 찼다.

면사무소와 파출소, 소방상황실이 꾸려진 경로당 주변 역시 새벽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소방차와 경찰차의 경광등이 어둠 속에서 번쩍였고 무전기 소리가 쉼 없이 이어졌다.

그날 새벽 현장에는 취재를 위해 달려온 중도일보 이정학 국장도 있었다. 누구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 상황을 살피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서로 짧은 인사를 나누며 현장의 상황을 공유했다. 재난의 현장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일 역시 또 다른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4시 20분경 파출소를 찾았다. 평소 알고 지내던 정장교 수사과장과 배현태 팀장, 송종길 경비안보과장을 비롯해 스무 명이 넘는 경찰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현장은 놀라울 만큼 질서 있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산불을 낸 사람이 체포됐고 자백도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쉽게 잊히지 않을 장면과 마주했다.

바지 일부가 불에 타 있었고 옷은 찢기고 젖어 있었다. 여기저기 흙이 묻어 있는 여든이 넘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치매 기가 있는 듯 횡설수설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상황만 놓고 보면 분명 산불을 낸 피의자였다.

그러나 경찰관들의 모습은 내가 막연히 떠올리던 '범인을 대하는 태도'와는 전혀 달랐다. 경찰관들은 번갈아 노인 곁에 앉아 그의 말을 차분히 들어주고 있었다. 따뜻한 차를 건네고 젖은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기도 했다. 노인이 더 놀라거나 불안해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모습이었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중도일보 이정학 국장 역시 잠시 취재수첩을 덮은 채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난 현장의 긴박함 속에서도 사람을 향한 따뜻한 배려가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던 듯했다.

새벽 5시가 넘어 긴급체포 사실을 알리는 순간이 되었다. 노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갑… 차야 하나요?"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돌아온 대답은 짧았지만 다정했다.

"아닙니다. 수갑 안 찹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 한마디에 노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이후 현장검증을 나설 때도 경찰관들은 노인 곁을 떠나지 않았다. 혹시라도 넘어질까 봐 팔을 붙잡아 부축했다.

그 순간 나는 오랫동안 품고 있던 경찰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씩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법은 차갑기만 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 새벽 나는 다른 모습을 보았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손길에 따라 법도 온기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편 산불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 끝에 약 6시간 만에 주불이 진화됐다. 소방대원과 공무원들, 그리고 인근 지역에서 긴급 지원에 나선 산림재난 대응 인력들까지 민·관·군이 함께 움직였다.

그날 새벽의 골든타임을 지켜낸 힘은 단순한 장비나 인력만이 아니었다. 서로를 향한 책임감과 믿음이었다.

불길보다 더 뜨거웠던 것은 사람을 향한 온기였다. 그리고 그 온기야말로 우리가 믿는 공권력의 가장 기본이 아닐까. 그날 새벽 나는 그 사실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최성권 단양군 자치행정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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