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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헌 변호사 |
1심과 항소심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는데, 재판부의 마음을 움직인 결정적 근거 중 하나는 뜻밖에도 피고인과 아버지가 나눈 '카카오톡 대화'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새로운 일을 '신박한 마케팅'이라며 대견해했고, 아들은 자신이 조사한 아파트 단지의 특이사항과 직장에 대한 기대를 숨김없이 공유했다. 범죄의 그림자는커녕, 서로를 깊이 신뢰하는 부자(父子)의 투명한 일상만이 가득했다. 만약 청년이 조금이라도 불법적인 일임을 직감했다면,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에게 이토록 상세하게 일과를 말씀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법원은 이 건강한 관계를 근거로 아들이 범죄임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유교의 오륜(五倫) 중 하나인 '부자유친(父子有親)'이 현대 법정에서 무죄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 셈이다.
오륜 중 가정생활의 핵심은 부자유친과 부부유별(夫婦有別)이다. 이를 인간의 본성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 비추어 보면 부자유친은 '인(仁 사랑)'에, 부부유별은 '지(智 지혜)'에 뿌리를 둔다.
젊은 시절의 나는 부자 사이엔 엄격함이, 부부 사이에는 사랑이 최고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가장으로서 수많은 세월을 헤쳐가다 보니 내 믿음이 틀렸음을 깨닫게 되었다. 부부 사이에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갈등을 조율하는 '지혜'가, 부자 사이에는 양육과 봉양을 지탱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핵심이었다. 가정이 사회의 기본 단위라면, 그 가정을 지탱하는 기둥은 결국 부모와 자식 사이의 건강한 사랑과 지혜로운 부부관계일 것이다.
부자유친에서 '친(親)'자를 나누어 보면 나무(木)가 제대로 자랄(立)수 있도록 보살피는(見) 것이라고 한다. 나무가 바르게 자라려면 거름(仁)만이 아니라 때로는 아픔을 수반하는 가지치기(義)도 잘 해 주어야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이 균형이 무너진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많은 부모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녀의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거나 과도한 간섭으로 자녀의 독립성을 침해한다. 그러나 가지치기 없는 나무는 재목이 될 수 없다. 자녀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사회적 정의를 가르치는 엄격함, 그리고 이를 적절히 안배하는 부모의 지혜가 함께할 때 진정한 '친(親)'이 완성될 것이다. 적절한 가지치기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훗날 학교폭력이나 사회 부적응이라는 가혹한 시련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건강한 부자 관계의 토대는 다시 부부 사이의 지혜로 귀결된다. 부부는 인생의 수많은 풍랑을 함께 헤쳐가는 동지다. 갈등이 있더라도 자녀 앞에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헐뜯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부모에 대한 부정은 곧 자신의 뿌리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고, 이는 자존감을 낮추며 부자유친을 무너뜨린다. 부모가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존중하는 모습은 자녀에게 '너의 뿌리는 훌륭하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 자녀는 자신의 뿌리를 긍정할 때 비로소 자존감이 높아지고 타인을 존중하며 정의를 중시하는 당당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혹여 부모와 소원한 이들이 있다면, '오죽했으면 그러셨겠나'라는 마음으로 당시 부모의 서툴렀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길 권한다. 부모가 이미 세상을 떠났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부모는 나를 있게 한 뿌리이며, 뿌리를 긍정하고 뿌리와 화해할 때 나의 자존감과 행복감도 함께 높아질 것이다.
결국 부부 사이의 지혜로 가정의 평화를 지키고, 그 안에서 자녀와 사랑을 나누는 '부자유친'의 실천이야말로 정의롭고 신뢰받는 사회를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이다.
정연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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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