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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문용 부구청장 |
아카데미상 시상식장의 풍경에서도 그 위력을 엿볼 수 있었다. 케데헌을 연출한 감독이 객석에 앉아 한국산 라면을 봉지째 들고 먹는 모습이 포착됐다. 감독의 배우자가 사회관계망(SNS)에 올리며 퍼져 나간 사진을 보면, 감독은 봉지를 뜯어 나무젓가락으로 생라면을 집어 올리고 있었다. 끓이지 않은 한국산 생라면을 과자처럼 먹는 것도 일종의 '밈'이 된 것이다. 크리스 아펠한스 감독의 아내 마렌 구는 한국인 화가이자 유명한 작가이다. 이들 부부는 한국 문화에 깊은 애정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대한민국의 소프트파워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게 아니다. 엄혹했던 식민지 시절에도 우리의 선조들이 꿈꾸었던 나라는 문화가 강한 나라였다. 그런 나라를 얘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문장이 있다. 독립운동가인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에 남긴 말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이다." 그런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은 심지어 3·1 독립선언서에도 담겨 있다. "풍부한 독창성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세계에 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꽃피울 것이다."
이러한 문장은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니다. 실제로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니라 문화의 힘으로 존경받는 나라를 꿈꾸었다. 독립을 선언하면서도 증오와 폭력의 길이 아니라 문명과 문화의 품격을 강조했다. 이런 생각은 시대를 넘어 이어졌다. 역대 대통령들은 '문화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라며 문화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격상했다. '문화는 국경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며 국가 이미지와 영향력이 소프트파워로 좌우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 선언들은 하나둘 현실이 됐다. 한국 영화는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고, K-팝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도 오스카를 거머쥐었다. 봉준호 감독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며 한국적 이야기가 세계적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지난 주말 광화문에서 열린 BTS 컴백 공연에는 전 세계 아미들이 몰리고 관심이 집중됐다. 독립운동가들이 소망했던 나라, 정치 지도자들이 강조했던 국가 비전, 그리고 우리가 쌓아온 창의적 에너지가 축적된 결과다.
급변하는 시대이자 불안의 시대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이기도 하다. 중동발 전쟁 소식은 하루가 아니라 시시각각 바뀐 내용으로 타전된다. AI(인공지능)로 대표되는 첨단기술의 발전 속도도 따라잡기 힘들 정도다. 어제의 AI 관련 기술이 오늘 벌써 구식이 되곤 한다. 절대 불변이라고 믿었던 국제질서가 무너지는 장면도 자주 목격한다. 힘을 앞세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심화되고 있다. 극단적 가치와 주장에 힘이 실리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불안하고, 불확실하고, 불분명한 시대지만, 그럴수록 지켜주고 싶은 무언가가 우리 마음속에 있었던 모양이다. 극단적 가치와 폭력이 아니라 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는 진리를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관객 수 1,400만 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 흥행 돌풍을 이러한 현상과 연결하는 분석에 동의한다. K-컬처가 세계인의 공감을 얻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케더헌과 BTS, 왕사남을 보며 위로를 얻는다. 대한민국의 소프트파워가 세계질서의 모범이 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박문용 대전 유성구 부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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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익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