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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무관때부터 백제문화권 특정지역 종합개발 업무를 7년간 수행하였다. 사진=김용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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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용 교 전 충남도정책기회관 전 아산시 부 시 장 |
1997년 10월, 김대중·김종필 양당 총재는 그해 12월 대선을 앞두고 DJP 연대를 이루었다. DJ가 대통령 후보가 되고 JP가 밀어주기로 한 연대였다.
DJ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DJ와 JP는 공동정부를 구성하고 JP가 장관 50% 추천권을 가지며 내각제 개헌도 공동 추진키로 합의하였다. 밀실이 아닌 공개 합의였다.
DJP 연대에 힘입어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1998년 2월 26일 취임하였다. 곧이어 3월 3일에는 JP를 국무총리로 지명하였고, JP는 공동정부 구성 합의대로 자민련계 장관 50% 추천권을 행사하였다.
3월 중순 경, 국무총리실 의전과장이 충남도청 정책실을 방문하였다. 그 당시 나는 정책실 일반정책 심의관으로 재직 중이었다.
"총리님께서 빠른 시일 내 「백제문화권 개발사업」 기공식을 거행하라는 분부가 계셨다"면서 잠정적으로 4월 21일로 날을 잡아 놓았다고 알려주었다.
총리취임 한 달 반 만에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자, 정치적 터전인 부여에서 수십 년 동안 공주·부여군민의 숙원이었고, 200만 충남도민들의 염원이 담긴 백제권 개발 기공식을 맨 먼저 갖겠다는 JP의 의지가 우리들 가슴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심대평 지사께 보고드리자 "기공식 행사는 IMF 등 경제 상황과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여 검소하면서도 품격있게 준비하고 진행하라"고 당부하셨다.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백제 역사 재현단지 조성 예정지에서 기공식 행사를 갖기로 하고, 관계 장관·국회의원·기관장·주민 등 2천여 명을 초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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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토록 고대하던 백제문화권 종합개발사업이 1998.4.21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사진=김용교 제공 |
기공식의 의례적 프로그램인 발파의 경우도 3천만 원이나 소요되어 시삽으로 대체하였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외빈들을 연단에 모시느냐, 연단 아래 주민들과 같은 모양의 의자에 나란히 함께 앉느냐를 놓고 토론과 검토를 거듭하였다.
모두 함께 연단 아래에 앉기로 하고 식사(式辭)를 하게 될 심대평 지사, 축사를 하게 될 김종필 총리 두 분만 단하에 앉아 계시다가 역할을 할 때 연단에 오르도록 하였다.
국무총리께 누가 브리핑을 하느냐?에 대해서도 논의를 하였다. 총리실 의전과장은 "총리님 지방에 가시면 광역시장, 도지사께서 보고하는 것이 관행이고, 때로는 부지사께서 보고하는 경우도 있다”며 “추가 논의할 사항이 아니라"고 일축하였다.
나는 '지사님은 식사(式辭)가 예정돼 있으니 백제권 개발 사업소장직을 겸직하고 있는 이명수 정책실장이 브리핑하도록' 제안하였다. 민선 심대평 지사와 실세 김종필 총리의 의전상 예우와 위상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의전과장은 총리실 상층부와 상의 후, 충남도의 제안을 수용하여 이명수 정책실장이 국무총리께 백제문화권 개발사업 전반에 걸친 핵심내용을 보고하였다. 시·도의 실국장급이 국무총리께 직접 보고하는 선례가 되었다.
식사(式辭)를 하기 위해 심대평 지사는 상기된 표정으로 연단에 올랐다. 세계가 공유하는 위대한 문화유산에 방점을 두고 연설은 시작되었다.
그 일부를 발췌 수록해 본다.
"우리는 지난 1990년부터 원대한 민족문화 창달사업인 백제문화권 종합개발사업을 추진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사업의 시계 바늘은 기본계획이 수립된 지 8년이 지나도록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가 느끼는 감회는 정말 남다릅니다. 오늘 기공하는 백제역사 재현단지를 시작으로 5개 분야 48개 사업에 이르는 백제권 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는 데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중략)
백제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잊기에는 우리의 긍지가 너무 크고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습니다. 지난 1971년 발굴된 무령왕릉과 1993년 발굴된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가 천년의 긴 잠에서 깨어났음을 알리는 역사적 선언이었습니다.
고장의 뿌리를 찾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200만 도민의 정성에 역사가 화답한 것입니다. 그동안 이 사업을 적극 지원해 주시고 앞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실 김종필 국무총리님과 정부 관계자들을 비롯한 지역주민들과 도민들께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로 연설을 마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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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필 전 총리와 심대평 전 지사께서 각각 축하의 말씀을 하였다. 사진=김용교 제공 |
이어서 김종필 국무총리의 축사가 이어졌다.
먼저 고향 어른들께 인사 말씀을 올렸다. 미리 준비된 원고는 펴지도 않은 채, 그동안 맺힌 한을 풀듯, 감정의 응어리를 토해내듯 다소 흥분된 어조였다.
"어르신들께서 '김종필이, 종필이가 부여에 해놓은 게 뭐 있냐?'고 걱정들을 많이 하고 계신데 총리를 두 번째 하고 있지만 국사(國事)라는 것이 나라 전체를 살펴나가야지 「부여」 에만 신경 쓸 자리가 아닙니다. 부여~규암 간 백마강을 수십, 수백 년간 「배」로 건너다니다가 1968년도에 우선 2차선으로 백제 대교를 건설했는데 그때 국민소득이 170불, 수출이 5억 불 정도였습니다. 가난했던 나라 재정에도 800여 미터 장대 교량을 큰 결단으로 착수하게 된 것입니다. 1994년도에는 백제 대교 추가 2차선 확장공사를 착수하여 지난해 4차선으로 준공하였잖습니까?
그리고, 부여 남면 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남면평야는 홍수가 나면 백마강물이 넘쳐서 뜰 전체가 물에 잠겨 벼가 말라져서 수확을 못 하였습니다. 연례행사였고 10년간 모내기를 하면 한 해 정도 수확하는 실정이었습니다. 이러던 것을 홍수가 나면 남면평야에 잠긴 물을 백마강으로 퍼 올리고 가뭄이 들면 백마강물을 남면평야로 공급해서 수백만 헥타아르를 전천후(全天候) 농법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옥답으로 만들어 놓았고, 1966년도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이 사업을 준공하였습니다. 오늘 착공하는 백제문화권 개발사업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국책사업입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사업이 중단될 수 없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확실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보충해 나가면서 착실하게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대략 이같은 요지로 연설한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참석자 모두는 열띤 큰 박수로 화답하였다.
실세 국무총리가 되어 고향 주민들 앞에서 사업착수를 당당하게 선언하게 되니 얼마나 가슴이 벅찼을까?
1963년 부여에서 첫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며 부여에서 수 대에 걸쳐 국회의원에 출마하였고 그때마다 당선시켜준 고향 주민들께 감사와 보답의 심경을 밝히는 것 같았다.
행사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헬기는 창문을 열고 행사장 상공을 한 바퀴 선회하였고, 참석자들은 손을 흔들어 화답하였다. 김종필 총리, 심대평 지사, 공주·부여 군민들에게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김용교 (전 충남도정책기획관. 전 아산시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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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