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오래된 시간을 지키는 일, 21세기 소방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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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래된 시간을 지키는 일, 21세기 소방의 역할

대전동부소방서 안정미 서장

  • 승인 2026-05-20 17:13
  • 수정 2026-05-21 08:31
  • 신문게재 2026-05-21 18면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대전동부소방서장 안정미
안정미 대전동부소방서장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지면 전통사찰에는 연등이 하나둘 걸리기 시작한다. 소방 역시 이맘때가 되면 전통사찰과 목조문화재 현장을 찾아 화재 위험요인을 확인하고, 소방시설을 점검하며, 관계자들과 함께 초기 대응 훈련을 진행한다. 매년 반복하는 일이지만 현장을 마주할 때마다 오래된 건축물을 지킨다는 일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전통사찰과 문화재에는 단순한 건물 이상의 시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전통사찰과 문화재는 단순한 관광 자원이 아니다. 오랜 시간 지역의 역사와 공동체의 기억이 이어져 온 삶의 공간이자, 미래 세대에게 전해져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렇기에 전통사찰과 문화재에서 발생하는 화재는 일반 건축물의 화재와는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단순히 건물 하나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이어져 온 공동체의 기억과 문화적 가치까지 함께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5년간 전국 사찰에서는 179건의 화재가 발생했고 17명의 인명피해가 있었다. 전통사찰은 대부분 목조건축물로 이루어져 있어 작은 불씨도 큰 피해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목재 구조 특성상 화재 발생 시 연소 확산 속도가 빠르고, 초기 진화가 늦어질 경우 피해 규모도 급격히 커질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숭례문 화재와 최근 경북 의성 산불로 인한 고운사 피해를 통해 문화재 화재가 얼마나 큰 상처로 남는지 경험해 왔다.

문화재 화재와 산불 위험이 커지면서 오늘날 소방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화재 발생 이후 신속하게 대응하는 역할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위험을 미리 예측하고 피해를 줄이는 예방 중심 대응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전통사찰과 목조문화재를 대상으로 한 현장점검과 합동훈련뿐 아니라, 드론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화재 감지 체계, 산불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수막설비 등 첨단 예방 기술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특히 산림과 인접한 전통사찰의 경우 산불로 인한 연소 확대 위험이 큰 만큼, 초기 대응체계와 주변 환경 관리의 중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불을 끄는 역할을 넘어, 지켜야 할 가치를 보다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21세기 소방의 변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의 관심과 준비다. 관계자의 작은 점검 하나와 주변을 살피는 관심 하나가 결국 오래된 시간을 지켜내는 시작이 된다.

문화유산은 특별한 누군가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공동의 자산이다. 오래된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다음 세대까지 안전하게 이어가는 일과도 닿아 있다.

오늘도 소방이 현장을 살피고 준비하는 이유 역시, 결국은 사라지지 않아야 할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오래된 나무와 조용한 산사,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시간들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제자리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안정미 대전동부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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