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신화읽기] 제19장-장동 산디마을 탑제, 산의 품에 올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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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신화읽기] 제19장-장동 산디마을 탑제, 산의 품에 올리는 기도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 승인 2026-07-08 10:15
  • 수정 2026-07-08 10:21
  • 신문게재 2026-07-09 8면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계족산 산디마을은 매년 산신제와 탑제를 거행하며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오래된 삶의 방식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마을 입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돌탑은 산의 신성한 기운을 마을로 잇는 통로이자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신앙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의식은 산을 생명의 근원으로 여기며 감사와 소망을 전해온 마을 공동체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자연 앞에 겸허했던 인류의 보편적인 경외심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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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디마을탑제는 매년 음력 정월 14일 밤 대전시 대덕구 장동 산디마을 입구에 위치한 두 개의 돌탑(할아버지탑·할머니탑)에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는 전통 제사이다. 1998년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됐다. 사진은 올해 치러진 장동 산디마을탑제 모습 . 사진=한소민 소장
지난 회(중도일보 7월 1일자 8면) 머들령에서는 경계를 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익숙한 세계를 떠나 낯선 세계로 나서는 길을 다루었지요. 이번 이야기는 계족산 자락에 자리한 대덕구 장동 산디마을 탑제에 대한 것입니다. 떠남이 아니라 한 자리를 오래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지요.

계족산 골짜기에 길게 자리한 마을 장동. 그중에서도 산의 뒤쪽에 있대서 이름 붙여진 산디마을에서는 해마다 두 번 마을 제사가 올려집니다. 가을걷이를 마친 시월에는 계족산 산신당에서 한 해의 결실에 감사하는 산신제가, 정월 대보름 전날에는 마을 어귀의 할아버지탑과 할머니탑 앞에서 다가온 한 해의 안녕을 비는 탑제가 올려지지요. 서로 다른 의식이지만 계족산을 향한 마음은 같았습니다. 산은 마을을 품어주는 터전이고, 돌탑은 그런 신성한 산의 기운을 마을로 이어주는 통로였으니까요.

인류는 오래 전부터 산을 경외시하며 섬겨 왔습니다. 높은 봉우리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이었고, 깊은 골짜기는 물을 흘려보내는 생명의 근원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중국에서는 태산을 하늘과 땅이 만나는 성산으로 여겨 황제들이 제를 올리며 나라의 평안을 기원했으며, 인도에서는 히말라야와 카일라스산을 신들이 머무는 곳으로 숭상하며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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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디마을 숲 속에 쌍탑이 있어 할아버지탑과 할머니탑으로 불린다. 동쪽에 있는 할아버지탑은 높이 약 2.3m, 서쪽으로 30m쯤 떨어져 있는 할머니탑은 높이 약 1.8m이다. 사진은 할아버지탑 사진=한소민 소장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야마노카미(山の神, 산의 신) 신화가 전해집니다. 긴 겨울 동안 깊은 산속에 머물던 신은 봄이 되어 모내기철이 다가오면 마을로 내려와 타노카미(田の神, 논의 신)가 되어 농사를 돌보지요. 사람들은 산기슭에 나가 신을 맞이하며 농사를 잘 도와 달라고 제를 지낸 후에 모내기를 시작했습니다. 가을이 되어 추수를 모두 마치면 사람들은 다시 제사를 올렸습니다. 이번에는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그동안 수고해 준 신을 다시 산으로 돌려보냈지요. 그렇게 신은 겨울에는 산의 신, 여름에는 논의 신이 되어 해마다 산과 마을을 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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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 산디마을의 할머니탑 사진=한소민 소장
이처럼 마을 공동체가 함께 모여 농사 시작과 끝을 신령한 존재에게 비는 문화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요. 장동 산디마을 역시 시월 산신제와 정월의 탑제를 통해 계족산에 의지하며 대자연의 힘을 빌렸습니다. 특히 마을 입구에 자리한 돌탑 앞에서 진행되는 탑제는 마을 주민 모두의 잔치이기도 했습니다. 제를 앞두고 주민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탑의 머리에 한지를 씌우고 두 탑을 금줄로 이어 놓습니다. 개울 양 쪽에 떨어져 있던 탑들은 제를 지내는 날만큼은 하나가 되어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게 되지요. 주민들은 할아버지 탑에서는 마을 밖에서 들어오는 병과 재앙을 없애 줄 것을 빌고, 할머니 탑 앞에서는 마을 안의 평안과 풍요와 더불어 주민들의 화합을 기원했습니다. 밖에서 해하려는 것을 막아내는 것과 안을 돌보는 것, 모두가 중요했으니까요. 그 소망을 품은 채 음식을 차려내고 풍물을 울리며 마을을 돌았습니다.

산을 바라보는 마음은 다 같았습니다. 인간은 산의 품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믿음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산을 향해 절을 올리고, 제를 지내며, 감사와 소망을 전했습니다. 산디마을 탑제 역시 그러한 오래된 약속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마을이 큰 피해 없이 안전할 수 있었던 것도 계족산의 보살핌이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해 정성스레 올린 산신제와 탑제 덕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요. 탑제를 정성껏 올리면 계족산에서 산울림이 들리고 그해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습니다. 계족산은 사람들의 믿음을 지켜 주었고, 그 믿음은 다시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힘이 되었지요.

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서 있는 산은 두려움과 경이로움의 대상이면서도 든든한 안식처였습니다. 해마다 산을 향해 절을 올리고, 두 돌탑 앞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은 자연 앞에 겸허했던 사람들의 오래된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산디마을 탑제는 단순히 한 해의 복을 비는 마을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산을 생명의 근원으로 여기고, 인간은 그 품 안에서 살아간다는 믿음을 이어온 마을 공동체의 살아있는 역사였지요. 계족산에서 시작된 생명의 기운은 돌탑을 지나 마을로 스며들고, 사람들은 다시 감사와 기도를 산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렇게 산과 사람은 서로를 지키며 오랜 시간 대를 이어가며 함께 해 왔습니다. 먼 훗날 하나의 신화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아름다운 이야기지요.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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