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 혈연에서 책임으로

  • 오피니언
  • 전문인칼럼

[전문인칼럼] 혈연에서 책임으로

법무법인 김이지 파트너스 대표

  • 승인 2026-08-30 11:38
  • 신문게재 2026-08-31 18면
  • 박병주 기자박병주 기자
변호사김이지사진
법무법인 김이지 파트너스 대표
올해 2월, 상속법의 오래된 원칙 하나가 크게 바뀌었다. 헌법재판소가 2024년에 유류분 조항을 손보라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지 2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은 부모를 학대하거나 나 몰라라 한 자식도,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류분을 똑같이 챙겨갈 수 있다는 점이 계속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바뀐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부모를 오랫동안 특별히 부양했거나 재산을 지키고 불리는 데 특별히 기여한 대가로 받은 증여나 유산은, 이제 유류분을 계산할 때 셈에서 빼준다. 둘째, 유류분이 부족해서 돌려줘야 할 때 그동안은 재산 자체(부동산 지분 등)로 돌려주는 게 원칙이었는데, 이제는 현금으로 돌려주는 게 원칙이 됐다. 예전에는 얼마나 부모를 모셨든, 재산을 얼마나 지켜냈든 상관없이 법에 정해진 비율만 채우면 누구나 똑같이 자기 몫을 주장할 수 있었고, 그 몫도 재산 자체로 떼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개정은 이 부분을 손봐서, 상속받을 자격을 '핏줄'이 아니라 '무엇을 했는가', 즉 '혈연'이라는 사실관계에서 '책임'이라는 행위로 옮겨놓았다는 점에서 뜻깊다.

필자가 몇 해 전 맡았던 사건 하나가 이 개정의 필요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의뢰인 갑은 사 남매 중 유일한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노후를 함께한 갑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다. 딸 셋 중 두 명은 아버지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나머지 한 명인 을만은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을 걸어왔다. 갑은 남매 사이의 정을 생각해 상당한 금전을 지급하는 선에서 원만히 마무리하고 싶어 했지만, 을은 돈이 아니라 부동산 지분 자체를 요구했다. 갑이 물려받아 직접 농사짓던 그 땅의 가격이 앞으로 오를 거라 기대했기 때문으로 보였다. 실낱같은 우애가 남아 있는 형제간보다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형제의 배우자가 개입되어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몇 차례 조정을 시도했지만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결국 정식 재판으로 넘어갔다.

당시 법으로는 원물반환이 원칙이었다. 갑이 가액으로 반환하는 게 마땅하다는 사정을 여러 차례 주장했음에도, 재판부는 "원물반환이 불가능하다고 볼 사정은 없다"는 이유로 상속분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분을 을에게 이전하라고 판결했다. 아버지를 모신 세월도, 그 땅에서 함께 일궈온 생업도 판결문 어디에도 담기지 않았다. 서면을 쓰던 나조차, 법리상 틀린 데가 없는 이 결론이 정말 온당한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지금 이 사건을 다시 심리한다면 결론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갑이 부친을 특별히 부양한 대가로 재산을 받은 것으로 인정된다면 그 부분은 애초에 유류분 계산에서 빠질 수 있고, 설령 유류분이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이제는 현금으로 지급하면 그만이니 땅을 굳이 내줄 필요가 없다. 평생 부모를 모신 사람이 오히려 땅을 나눠주고,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이 절반을 가져가는 구조가 이제는 바뀐 셈이다.

사회는 점점 복잡해지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과거의 단순한 가치관과 판단 기준만으로는,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불합리한 결과를 제대로 풀어낼 수 없는 순간이 온다. 법은 사회의 변화를 앞서 이끌기보다는 뒤따라가는 경우가 훨씬 많아서, 그 사이에는 언제나 시간차가 생긴다. 이 사건의 갑도 그 시간차 안에서 억울한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런 모순이 하나둘 쌓이고 쌓여, 더는 법적 결론이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지점에 이르면 결국 법은 바뀌게 마련이다. 상속의 자격을 혈연에서 책임으로 옮겨놓은 이번 개정 역시, 오늘날 우리 사회의 달라진 가족의 모습을 뒤늦게라도 담아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때의 갑을 다시 만난다면, 이제는 조금 다른 답을 들려드릴 수 있게 됐다. /법무법인 김이지 파트너스 대표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을 재촉하는 비
  2. 중장년층 새로운 일자리 '산림복지'에서 찾다
  3. 나노종합기술원, 나노전문인력양성 8년간 인재 710명 배출 '취업률 92%'
  4. [인터뷰]양지혜 1세대 블로거, 생성형 AI <이누마(INUMA)와 함꼐한 AI 생존기> 출간
  5. 과학기술인력개발원, '디지털 배지' 활용해 학습자 성장 북돋는다
  1. 현대특수강(주),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에 후원금 500만 원 전달
  2. 서산 동문동 도시재생, '주민이 운영하는 주차장' 첫걸음, 선진지 견학 운영 역량 제고
  3. 대전청과와 함께하는 무료 짜장면 나눔
  4. 대덕구노인종합복지관 노인맞춤돌봄서비스 행복 두 배 파티쉐
  5. 대전사랑메세나, YWCA 가족쉼터에 '8월의 크리스마스' 따뜻한 나눔

헤드라인 뉴스


`행복청`, 행정수도 추진 한계… 총리실 소속 격상해야

'행복청', 행정수도 추진 한계… 총리실 소속 격상해야

국토교통부 소속 행정수도건설청이란 차관급 위상으로 '행정수도' 대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2007년 행정중심복합도시 착공 이후 행정수도의 현실과 이상이 큰 간극을 보여왔던 만큼, 이제는 국무총리 소속 행정수도 추진 전담기구로 격상 설치해야 한다는 제언이 이어지고 있다. 행복청이 국토부에서 총리실 소속 기관으로 옮겨가는 대안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반쪽 행정수도의 단면은 확인 가능하다. 대통령 집무실은 대통령실, 국회 세종의사당은 국회 사무처 주도로 설계 공모 당선작을 각각 내보였고, 이 과정에서 중간에 낀 행복청의 주도적 역할엔 한..

황운하 의원 ,전국 경찰서 범죄분석관 의무 배치법 대표 발의
황운하 의원 ,전국 경찰서 범죄분석관 의무 배치법 대표 발의

제주 실종 사건을 계기로 전국 경찰서에 범죄분석관을 의무 배치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비례)이 30일 대표 발의한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다. 핵심은 실종·강력범죄 초기 단계에서 전문적인 위험도 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전국 261개 경찰서에 범죄분석관을 1명 이상 의무 배치하는 것이다. 범죄분석관은 범죄자의 행동·심리와 범행동기, 범행수법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범죄의 위험성, 재범과 피해자에 대한 위해 가능성 등을 분석하는 전문가로, 전국에 35명밖에 없다..

세계 패러글라이딩 강자 단양 집결…단양강 하늘서 `진검승부`
세계 패러글라이딩 강자 단양 집결…단양강 하늘서 '진검승부'

세계 각국의 패러글라이딩 강자들이 단양에 모인다. 산과 남한강을 품은 단양의 하늘이 일주일 동안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비행 무대로 펼쳐진다. 단양군은 31일부터 9월 6일까지 두산·양방산 활공장 일원에서 '2026 제1회 단양 코리아 오픈 패러글라이딩 국제대회'를 개최한다. '제25회 대한패러글라이딩협회장배 전국 패러글라이딩대회'도 함께 열린다. 올해 처음 열리는 단양 코리아 오픈은 국제항공연맹(FAI) Category 2 국제공인대회다. 세계랭킹 1위 양첸을 비롯해 약 20개국에서 2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해 장거리와 정밀착륙 두..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제17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여자부 8강 제17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여자부 8강

  • 제17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초등 3~4학년부 4강전 제17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초등 3~4학년부 4강전

  • 제17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초등 5~6학년부 예선 제17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초등 5~6학년부 예선

  • 가을을 재촉하는 비 가을을 재촉하는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