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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영 사회과학부 차장 |
네 살 아이가 유명 영어학원이나 사교육 기관에 들어가기 위해 치르는 시험을 일컫는 말이다.
대학 입시를 뜻하는 '고시'라는 단어가 네 살 아이에게 붙었다는 것 자체가 낯설지만, 이제는 낯설다고만 하기 어려운 현실이 됐다.
아이들은 아직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문장으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나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때부터 영어 실력을 평가받고, 누군가는 유명 영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고, 시험을 보기 위해 또 다른 사교육을 받기도 한다. 아이가 경쟁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부모가 경쟁에 뛰어든 셈이다.
현장에서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너도 나도 마음은 비슷하다.
꼭 선행교육을 시키고 싶어서가 아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 하는데 우리 아이만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아닐까'라는 불안 때문이다. 한 학부모가 학원에 보내면 주변 학부모들도 알아보기 시작하고, 어느새 안 하는 것이 오히려 불안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한 아이가 앞서가기 위해 시작한 교육이 어느 순간 모두가 하지 않으면 불안한 경쟁이 된 것이다. 학원 입학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또 다른 학원을 찾고,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수업을 받고, 더 좋은 반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평가를 받는다. 아이들은 그렇게 학원과 시험을 오가는 사교육의 굴레 속에서 쳇바퀴 돌 듯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조차도 가끔은 고민한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교육을 이어가고 있는 것인지 경계가 흐려질 때가 있다.
정부가 10월 1일부터 유아를 대상으로 모집하거나 수준별 배정을 하기 위한 시험과 평가를 금지하기로 한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시험 자체를 없애는 것은 분명한 변화다. 하지만 시험을 금지한다고 해서 경쟁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험이 사라진 자리에 상담이나 관찰, 과제, 사전 프로그램 등 다른 방식으로 이름만 달라질 뿐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결국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시험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만은 아니다. 왜 네 살 아이에게까지 경쟁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됐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학부모에게 선택의 책임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 개인의 선택만으로 해결하기에는 구조적인 문제도 크다.
좋은 교육을 받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다. 내 아이가 뒤처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 역시 부모라면 당연할 수 있다.
시험을 없애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이가 경쟁에서 뒤처질까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까지 조금은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드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진짜 '4세 고시'를 멈추는 방법이지 않을까. / 박수영 사회과학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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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