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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용 교수 |
1970~80년대는 주어진 지시를 성실히 수행하는 '숙련형 인재'의 시대였다. 핵심 질문은 '어떻게(How) 효율적으로 만들까'였다. 이어지는 1990~2000년대는 정해진 지식을 정교하게 다루는 '전문가형 인재'의 시대였다. 자격증과 스펙, 정량화된 전문 지식이 곧 경쟁력이었다.
그런데 생성형 AI가 일상이 된 지금은 다르다. 기술을 도구 삼아 진짜 문제를 발굴하고 방향을 설계하는 사람, 여러 도구와 역량을 지휘하는 '기획형 인재'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 핵심 질문도 바꼈다. '어떻게'가 아니라 '무엇을, 왜(Why & What) 만들어야 하는가'다.
이 전환의 이유는 명확하다. 어떻게는 이제 AI가 상당 부분 대신할 수 있다. 코드를 짜는 것도, 보고서 초안을 쓰는 것도, 디자인 시안을 뽑는 것도 AI에게 맡기면 된다. 디지털 전환(DX)을 넘어 AI 전환(AX)이 일어나는 시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무엇을 만들 것인가', '왜 그것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는 AI가 답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현장의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가 왜 중요한지 설득력 있게 정의하는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이것이 바로 기획력이다.
기획력을 훈련하는 방법으로 널리 알려진 사례가 있다. 글로벌기업 아마존은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기 전에 제품부터 개발하지 않고, 대신 그 제품이 출시되었을 때 세상에 배포할 1장짜리 보도자료와 예상 질문답변(FAQ)을 가장 먼저 작성하는 방법인 이른바 'Working Backwards' 방식을 쓰기도 한다.
여기에 담기는 핵심 질문은 네 가지다. 이 서비스는 누구의 문제에 집중하는가. 그 사람이 겪고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불편함은 무엇인가. 이 제품이 그 문제를 어떻게 명확하게 해결하는가. 그리고 이 제품을 써본 사람은 어떤 말을 남길 것인가. 즉 제품을 만들기 전에, 제품이 성공했을 때의 모습을 먼저 언어로 그려보는 것이다.
이 방식이 주는 의미는 간단하다. 좋은 기획은 해결책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반대로 움직인다. '이런 걸 만들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먼저 떠오르고, '이게 정말 필요한 문제인가'는 나중에, 혹은 아예 묻지 않는다. 아마존의 방식이 강조하는 것은 순서를 뒤집으라는 것이다. 문제를 먼저 정의하고, 그 문제가 왜 중요한지 한 문단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비로소 해결책을 고민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거창한 창업이나 신제품 기획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직장에서 새로운 업무를 제안할 때도, 소상공인이 신메뉴를 구상할 때도, 학생이 공모전 아이디어를 낼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먼저 '이 지역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를 정의하고, 그 다음에 기술이나 콘텐츠라는 해결책을 고민한다. 순서가 바뀐다면 결과물은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획력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몇 가지 실천할 수 있는 습관이 있다. 첫째, 무언가를 만들거나 제안하기 전에 '이것은 누구의 어떤 불편함을 해결하는가'를 한 문장으로 써보는 것이다.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못한다면, 아직 아이디어가 아니라 막연한 바람일 가능성이 크다. 둘째,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부터 남에게 설명해보는 것이다. '이런 서비스를 만들었어요'보다 '이런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라고 먼저 말해보면, 상대의 반응에서 그 문제가 진짜인지 아닌지가 드러난다. 셋째, 머릿속으로 끝내지 말고 현장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가장 작은 형태로라도 실제로 시도해보고 반응을 살피는 과정이 있어야, 기획은 비로소 탁상공론을 벗어난다.
다행히 대전의 여러 대학과 지역 기관들이 이런 방식의 교육, 즉 교실 안 이론보다 현장의 진짜 문제를 다루는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을 점점 더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정답을 암기하는 훈련이 아니라 질문을 설계하는 훈련이다. 이런 변화가 반가운 이유는, 앞으로 필요한 역량이 특정 전공이나 기술 보유 여부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전공했든 이공계를 전공했든, 현장의 문제를 정확히 포착하고 왜 그것이 중요한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지휘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
AI 시대에 인재상은 정답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 좋은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할 문제를 정확하게 설계하는 사람이다. 오늘 하루, 일이든 공부든 사업 구상이든, 해결책을 떠올리기 전에 '이것은 누구의 어떤 문제인가'부터 한 문장 적어보길 권한다. 그 한 문장이 기획력의 첫걸음이다./박정용 한남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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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