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을의 끝자락에 피는 백화, 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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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을의 끝자락에 피는 백화, 서리

이미선 기상청장

  • 승인 2026-10-28 17:14
  • 이혜린 기자이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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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기상청장
우리는 서리에 대해 표현할 때 '서리가 내린다'라고 한다. 비나 눈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내린다'고 표현하는 것은, 예로부터 서리를 하늘에서 내려보낸 계절의 엄중한 기운으로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시린 공기로 가득 찬 세상에 서리가 백화(白花)처럼 하얗게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10월 하순의 절기 가운데 하나인 '상강(霜降)' 역시 그 한자의 풀이가 '서리가 내린다'이다.

서리는 늦가을부터 이듬해 봄 사이에 흔히 만날 수 있는 현상이지만, 그 발생 과정에는 여러 기상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맑고 바람이 잔잔한 밤에는 낮 동안 데워졌던 지표면의 열을 하늘로 빠르게 돌려보내는 '복사냉각'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지표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면, 공기 중의 수증기는 물방울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얼음 결정으로 바뀌어 풀잎과 흙 위에 내려앉게 되는데 이것이 서리이다.

흥미로운 점은 기온이 영상이더라도 서리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보에 사용되는 기온은 지상 1.5미터 높이에서 측정한 값이지만, 지면이나 식물 표면의 온도는 복사냉각으로 인해 이보다 훨씬 더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찬 공기는 상대적으로 무거워 낮은 지대로 흘러 내려가므로, 분지나 계곡처럼 찬 공기가 정체되기 쉬운 지형에서는 주변보다 서리가 훨씬 짙게 내린다.

낮에는 아직 따뜻한 햇볕이 남아 있지만 밤공기는 부쩍 차가운 시기, 이른 아침 들판과 풀잎에는 하얀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한다. 이를 보고 누군가는 '겨울이 다가오는구나'하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차 유리에 달라붙은 서리를 본 어떤 이는 '아침에 조심히 운전해야겠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농부는 배추나 무, 고추 같은 작물이 상하지는 않았을지를 가장 먼저 걱정한다.

이처럼 같은 서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겨울을 알리는 풍경이고,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불편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한 해 농사의 결실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특히 서리는 한 해 농사의 명운을 가르는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는데, 식물 조직 속의 수분이 얼면 세포가 손상돼 어린잎이나 꽃, 열매가 갈변하거나 생육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 봄철 늦서리는 새싹이 돋은 과수와 꽃에 치명적이고, 가을철 첫서리는 수확을 앞둔 채소와 밭작물의 품질과 생산량을 떨어뜨린다.

문제는 기후변화로 서리 예측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평균기온이 상승하면서 식물의 개화와 생육 시기는 점점 빨라지는데, 그 이후 일시적으로 찬 공기가 유입되면 이미 자란 새순이나 꽃이 저온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계절은 따뜻해지는데 서리의 위험은 오히려 커지는 역설이 발생하는 셈이다. 따라서 서리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평균적인 기온 변화뿐 아니라 단기간의 급격한 기온 하강과 지역별 미세한 기상 특성까지 함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기상청은 기온뿐만 아니라 습도와 바람, 지표의 냉각 정도 등 서리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기상요소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서리를 예측하고, 이를 기상기후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기상청 날씨마루'에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누구나 읍·면·동 단위로 그글피까지의 서리 발생 가능성을 확률값으로 확인할 수 있다.

농가에서는 이를 통해 최신의 서리 예측정보와 함께 예상되는 최저기온을 수시로 확인해, 작물의 종류와 생육 단계에 따라 보온 덮개 설치나 송풍기 가동 등 적절한 예방조치를 할 수 있다. 운전자와 보행자 역시 서리 예측정보를 미리 확인해, 도로나 교량 위에 내려앉은 서리가 결빙으로 이어지는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가능하다.

가을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서리에는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대기와 지표가 주고받는 복잡한 기상의 원리가 담겨 있다. 한 해 농사와 도로 위 안전을 위협하는 서리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기상청은 앞으로도 서리 관측과 예측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기후변화 시대, 자연이 보내는 작은 변화의 신호를 세심하게 살핌으로써, 서리를 비롯한 다양한 기상재해로부터 국민의 안전과 일상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이미선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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