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비관적 디스토피아와 자기 동일성의 파괴 '클레이 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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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비관적 디스토피아와 자기 동일성의 파괴 '클레이 페이스'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 승인 2026-10-28 17:07
  • 신문게재 2026-10-29 18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클레이 페이스
클레이 페이스 홍보 포스터
이 영화는 극한의 잔인함을 보여 줍니다. 관객의 심리적 추이나 준비를 압도합니다. 충분한 서사적 축적 없이 잔혹한 장면이 이어집니다. 충격적 잔혹함 사이의 서사적 공백을 관객들이 상상력으로 채워가야 하는 형국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오늘날의 현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심리적으로, 혹은 인과 관계의 납득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비극적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국내외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맷 헤이건은 오랜 가난과 무명의 시간을 청산하고 막 스타가 되려는 배우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닥쳐온 사건은 시련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합니다. 하룻밤 실수의 대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합니다. 배우로서의 생명이라 할 얼굴을 잃고, 이를 복구하기 위한 수차례의 수술과 가해자에 대한 소송으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나락에 떨어집니다. 순식간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처지로 전락합니다. 데뷔 이전의 무명 시절에는 꿈이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마저도 불가능합니다.

맷 헤이건에게 남은 것은 복수에 대한 뒤틀린 욕망입니다. 데뷔 전 꿈이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향한 열정이었다면 복수의 욕망은 디스토피아로 이어집니다. 믿었던 이들의 배신과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폭력의 구조가 이를 말해 줍니다. 차례차례 해치워 나가는 복수에도 세상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배트맨> 시리즈를 만든 DC 코믹스의 액션물인 이 작품의 배경도 타락한 도시 고담입니다. 성경 속 소돔과 고모라에서 따온 이 도시는 미국의 뉴욕을 연상하게 합니다. 폭력 조직의 보스 한 명을 처단한 것으로 거대 도시의 악이 사라질 리 만무합니다.

맷 헤이건이 처참한 위기 끝자락에 붙든 첨단 나노 기술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납니다. 검증되지 않은 기술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극한의 흥분과 과도한 욕망으로 허용치를 훨씬 넘은 약물을 복용하고 그는 괴물이 됩니다. 이제 그는 자기 자신도 스스로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그는 배우로서의 복귀뿐 아니라 일상을 영위하는 생활인으로서의 가능성도 상실합니다.

영화는 어느 누구도 희망을 갖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 줍니다. 물론 비난의 화살은 맷 헤이건을 배신한 친구 코리, 변호사, 의료진, 유혹한 뒤 발뺌한 미아와 폭력 조직 보스 자보에게 향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거대 악의 소굴인 고담시에서 맷 헤이건과 케이틀린, 그리고 그녀의 경찰 애인 역시 파국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영화가 바라보는 현실과 세계는 극도로 비관적입니다.

가장 비극적인 사람은 맷 헤이건입니다. 그는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오려 했지만 끝내 실패에 이르고 맙니다. 그리고 모든 과정 속에서 자기 동일성이 파괴됩니다. 나머지 인물들은 나름의 일관성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맷 헤이건이 복수의 과정에서 자기 얼굴을 잃고 처지하려는 사람의 얼굴이 될 때 우리는 폭력과 피흘림의 잔혹함에 비견할 만한 비극을 목도하게 됩니다. 영화 같은 현실 속에서 갖가지 배역에 휘둘리는 배우의 얼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아프고 인상적인 엔딩 장면. 맷 헤이건은 줄곧 자신의 옆에서 함께 하며 희망을 붙들어 준 케이틀린에게 애정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과다 복용한 나노셀 약물이 그녀에게로 옮겨가면서 그들은 형체를 잃고 찰흙으로 변합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성경 속 아담과 하와의 결말을 보는 듯합니다. 무겁고 잔혹한 액션 영화입니다.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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