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세력의 부정부패, 경제정책 실패에 따른 고실업과 인플레이션, 극심한 빈부격차 등에 그동안 숨죽여왔던 시민들이 분노를 터트리기 시작했고 그 뜨거운 불길이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으로 확산됐다. 그 시발점이 된 게 재스민 혁명이다.
재스민(jasmine)은 페르시아어로 '신의 선물'을 뜻하는 꽃이다. 재스민 혁명은 민초들이 들고 일어난 튀니지 혁명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민초들을 들판 여기저기서 피어나는 재스민에 빗댄 것이다. 이 재스민이 이젠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 사막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의미의 '혁명'에 꽃 이름을 붙인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2003년 그루지아 시민들이 세바르드나제 대통령 일가와 정부의 부정부패에 항의해 벌인 대통령 퇴진운동은 장미 혁명으로 명명됐다. 한 손에 장미를 들고 벌인 무혈혁명이다. 2005년 키르기스스탄 반정부운동이었던 '튤립 혁명'은 북부 산악지역에서 자생하는 야생 튤립을 혁명의 상징으로 내걸었다.
이번 리비아 혁명에서는 또 다른 꽃도 피고 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쓸고 있는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여성들의 외침이 그것이다.
40대 여자 변호사인 살와 부게기스는 리비아 시민 혁명 확산의 발원지가 된 벵가지에서 변호사와 판사들의 연좌농성을 이끌었다. 동료들과 시위대 전략을 짜는 등 그의 거침없는 활약은 벵가지의 다른 많은 여성을 시위 현장으로 불러냈다. 여성들은 시위대에게 물과 음식을 가져다주고 포스터를 써서 붙이기도 한다.
이는 이슬람의 가부장 중심 가족제도에서 여성의 사회진출과 정치적 활동을 쉽게 생각할 수 없으며, 전통적으로 소극적인 성역할을 강요받고 있는 리비아 여성들의 '반란'이란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앞서 민주화 혁명으로 기존 정권을 축출한 이집트와 튀니지에서도 여성들이 그들의 지위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시위를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때마침 오늘(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1857년 '빵(노동권)과 장미(생존권)를 원한다'는 뉴욕시의 여성노동자 1만5000명의 목소리에서 비롯돼 올해로 103주년을 맞았다.
백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오면서 억압과 착취의 대상이었던 여성들은 이제 독립된 인격체로 굳건히 섰다. 그러나 지구 한켠에서는 아직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억압과 부당함을 견뎌야 하는 이들이 있다.
아무리 꽁꽁 언 땅이더라도 한줄기 봄바람을 이기진 못한다. 이 봄과 함께 지구 저편에도 '여성 인권'의 꽃이 활짝 피기를 기대한다. /김은주·자료조사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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