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 공시제'도 현실성은 없어
특정인 겨냥한 발언이면 삼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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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용 논설위원 |
하지만 정당 이력제가 시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아직 정당제 자체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툭하면 헤쳐 모이고 간판을 바꾸는 게 우리나라 정당들이다. 사실은 같은 당파이면서도 정치적 목적으로 쪼개고 합치곤 한다.
이런 경우 사실 당을 바꾼 것은 아닌 데도 정당 이력은 누더기가 되기 십상이다. 정치 경력깨나 있는 민주당 정치인들에겐 더 불리한 제도다. 정치인 자신이 아니라 정치판이 바뀌어 생기는 누더기 기록까지 당사자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민주당에선 정당 이력제에 대해 턱도 없는 소리로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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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효 최고위원의 제안은 내심 이런 인물들을 겨냥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나라에서 민주당(열린우리당)으로 옮겼다가 다시 선진당으로 들어온 염홍철 시장도 주요 타깃에 들어 있을 것이다.
정당 이력제는 정당의 ‘역사’가 가장 긴 편인 한나라당한테는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또 박성효 최고위원처럼 정계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되는 정치 신인들에겐 불리할 게 없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불리한 다른 당과 대부분의 기성 정치인들은 결사적으로 반대할 것이다.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의 범죄 전과(前科) 공개 기준을 확대하자는 내용의 전과 공시제는 정당 이력제보다 더 긴요한 제도다. 수천, 수억원의 뇌물을 받아먹었다 벌금을 물고도 사면을 받아 버젓이 또 출마하는 게 우리나라 정치인들이다. 또 그런 사람들이 꽤 많이 당선되곤 한다.
만약 선거공보물에 후보자가 뇌물 먹고 감옥살이를 한 사실은 물론 벌금을 문 전력까지 상세하게 담도록 의무화하면 그것 때문에라도 출마를 꺼리는 정치인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철면피 정치인이라도 자기 사진 옆에 자기 선거공약과 함께 뇌물 받아먹은 내용까지 포함된 선거벽보를 내걸고, 승산도 분명치 않은 선거에 함부로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좀더 깨끗한 국회의원, 시도지사들이 뽑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전과 공시제 역시 현실성은 없다. 이 제도에 찬성할 국회의원이 거의 없을 것이다. 기성 정치인 스스로가 대부분 전과자들인데 누가 찬성하겠는가? 전과자들한테 선거 때 자기 자신이 전과자임을 공표하는 법을 만들라는 꼴이니 해보나마나한 얘기다.
정치철학도 소신도 없이 정치판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용케 벼슬자리 하나 얻으면 뒤로 부정한 돈 챙겨 그 돈으로 조직관리 하고 선거운동해서 자리를 지키는 '쓰레기 정치인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정당 이력제와 전과 공시제는 이런 '불량품들'을 걸러낼 수 있는 방법이긴 한데 현실로 옮기기는 지극히 어렵다.
그런데도 박성효 최고위원이 이런 얘기를 또 꺼낸 것은 염홍철 시장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박 최고위원은 작년 지방선거 때도 염 시장을 ‘정치철새’로 비판하면서, 염 시장의 ‘전과’를 자신의 선거공보물에 넣어 논란을 빚었다.
박 최고위원의 제안이 우리 정치풍토를 바꿀 만한 아이디어지만 특정인을 겨냥해서 나왔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혹 “내가 시장 시절 당한 대로 되갚아주겠다”는 정치적 의도라면 더욱 그렇다. 과학벨트 사수라는 중대한 지역현안을 놓고 전·후임 시장이 다투는 모습은 보기 안 좋다. /김학용·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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