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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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승인 2015-11-11 13:53
  • 신문게재 2015-11-12 23면
  •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슈퍼맨 꽃이 피었습니다, 할매꽃이 피었습니다,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어릴 때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을 놀이다. 술래가 등을 돌리고 '무궁화 꽃이… ' 문장을 외우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몰래 술래에게 다가가는데, 술래가 문장을 마치고 얼굴을 돌리면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추어야 한다. 이 때 제대로 멈추지 못하고 움직이다가 들킨 사람은 술래에게 잡혀가 줄줄이 손을 잡고 서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다가가 손을 풀어줄 때까지 기다리게 된다. 그 동안 빨리 구해달라고 애원하기도 하고, 멈춰선 순간의 모습들이 우스워서 깔깔거리기도 하는 즐거운 놀이다. 물론 술래가 자기 역할에서 벗어나기 위해 때로 빠르게 혹은 느리게 말투를 바꿔가며 사람들을 잡으려 하는 훼이크도 놀이의 재미를 더한다. 여기에다가 단순히 무궁화 꽃만이 아니라 갖가지 다른 단어를 넣어서 우스꽝스러운 제스처를 유도할 수 있게끔 놀이는 진화하고 있었다.

필자는 최근 지역의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정신과적 장애나 문제를 가진 부모의 자녀들을 돕는 프로그램에 관여하고 있는데, '무궁화꽃…'은 여기에서 아동들이 가장 원하는 놀이다. 이 프로그램은 부모-자녀 상호작용이나 의사소통에서 어려움을 가질 수 있는 아동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대처행동을 익히게 돕는 건강증진 프로그램이다.

부모가 질병으로 인해 자녀를 충분히 보살펴주지 못하더라도 아동은 이 어려움을 견디면서 성장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의 근력이라고 칭하는 회복탄력성을 키워야 한다. 이 회복탄력성의 핵심에는 긍정적인 마음과 자기조절력, 그리고 대인관계 역량이 포함된다. 다시 말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충동을 조절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는 사람이 역경에 처했을 때 더 잘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어려움을 잘 이겨내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훌륭해질 수도 있다.

사실 부모-자녀간의 상호작용은 별다른 일이 없는 대부분의 가정에서도 만만치 않은 해결 과제다. 그런데 부모가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 받는 상황이라면 그 가정의 어려움은 다른 가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더욱이 부모가 자녀의 어려움을 견디는 게 아니라 어린 자녀들이 오히려 부모를 이해하면서 생활하는 것은, 어느 한 가정의 문제로만 내버려둘 수 없고 함께 진지하게 생각하고 거들어주어야 할 사회적 과제라고 본다.

부모의 과보호가 마치 정상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요즈음, 자녀가 부모를 이해하고 거들면서 성장해야 하는 부담을 한번 생각해보자. 결코 쉽지 않은 환경이라는 점에 쉽게 공감할 것이다. 성인이 된 정신장애인의 자녀들이 털어놓는 성장과정의 혼란스러움과 부담감, 그리고 소외감 등은 듣는 이로 하여금 미안하다는 느낌마저 갖게 한다. 미리 알았더라면 그 어려움을 들어주기라도 할 걸 하는 마음 때문에 말이다.

여하간 사람은 환경에 따라 적응하고 단련되는 것인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동들도 어리지만 나름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장점과 고칠 점을 발표하는 시간에 공통으로 말하는 이야기는 어머니를 혹은 아버지를 도와준 경험이었다. 당연히 자랑스러운 점이다. 그래서 바란다. 이처럼 부모를 도와가며 사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경험을 자랑스러워하며, 이 경험을 통해 앞으로 잘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생활 역량을 키울 수 있기를.

이런 점에서 아동들은 즐거움도 함께 경험해야 한다. 어려운 성장 환경이지만 균형 잡힌 인성으로 발달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이고 유쾌한 경험도 해야 한다. 함께 이야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놀이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 속 어려움을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하고, 힘들 때 누군가를 찾아가거나 전화 걸어 위로받을 수 있는 지지 자원도 필요하다.

도화지에 하나 가득 자기표현을 쏟아놓은 아이들이 또 '무궁화꽃…' 놀이를 하자고 조른다. 그래 또 한바탕 뛰어보자. 무궁화꽃을 피워보자, 웃음꽃도 피워보자, 너희들의 소망 꽃도 피워보자꾸나.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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